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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수렵채집인이라는 관념은 허구다

2021.03.31. 10:15:45
조회 수
 361
과거의 인류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을지에 대해 널리 퍼진 통념이 있다. 이 통념에 따르면 과거의 수렵채집인들은 수십 명 정도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 단위로 생활했으며, 집단의 구성원들은 계급 차이 없이 평등했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얻은 식량은 공평하게 나누었고 사유 재산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식량을 찾아 계속 이동했다. 그러다가 약 1만 년 전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잉여생산물을 저장하게 되면서 비로소 집단의 크기가 훨씬 커지고 계급 차이가 나타나 사회 구조가 크게 변화했다.
 
정리하자면 수렵채집인들은 작은 집단에서 평등하게 살았으며, 계급이 분화된 복잡한 사회 구조는 농경 생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였다. 그런데 인류학 및 고고학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이런 통념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 근거는 기존의 연구 대상이던 현대 수렵채집 사회가 과거 수렵채집 사회와 다르다는 점과 수렵채집인들이 불평등하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루기도 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수렵채집 사회라고 다 같지 않다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기존 연구는 과거의 수렵채집 사회와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렵채집 사회의 구조가 같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졌다. 즉, 현재의 수렵채집인들이 모두 평등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을 구성하니, 과거의 수렵채집인들도 그랬으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수렵채집인들이 과거의 수렵채집인들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칼리하리 사막 주변의 수렵채집인들인 !쿵족은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작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그런데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쿵족도 과거의 생활 양식을 계속 보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쿵족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부터,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는 주변 종족들과 교류했다. 게다가 !쿵족 구성원 중의 일부는 목축에 종사하며,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한다. 이는 !쿵족이 과거에 계급 구조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사진 1. 아프리카 칼라하리의 대표적인 수렵채집 부족인 !쿵족의 모습. !쿵족은 수렵채집인의 평등성을 보여준다는 사례로 많이 인용됐지만 최근 연구 결과는 !쿵족이 과거에는 계급 구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출처: wikipedia)
 
다른 예로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의 시리오노족을 들 수 있다. 이들 역시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작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작은 집단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무렵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이전에 이들은 상당히 큰 집단을 이루었는데, 그 인구는 3000명에 달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집단 내에서 천연두, 인플루엔자 등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면서 고작 150명 정도만 생존했으며, 자연히 집단의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수렵채집인 집단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 구조의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현재 이들이 평등한 작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해서 농경 시작 이전의 수렵채집인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수립채집 사회도 불평등하고 사회 구조도 복잡했음을 알려주는 증거들
 
게다가 수렵채집인 집단이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뤘다는 좀 더 직접적인 증거도 있다.
 
대표적으로 북아메리카의 칼루사족은 주로 어업과 열매 채집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는 수렵채집인들이었지만, 여러 계급으로 이루어진 크고 복잡한 사회를 이루었다. 16세기 경에 이들의 인구는 1만 명을 넘었을 것으로 보이며, 왕, 장군, 고위 사제 등을 포함한 지배 계층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들은 어업 및 물자 운송의 편의를 위한 4km 길이의 운하를 파기도 했는데, 이는 수많은 인력을 체계적으로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조직화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칼루사족의 사례는 농경 사회가 아닌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계급이 분화된 복잡한 구조의 사회가 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의 아레네 칸디데에서 발견된 무덤은 농경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도 계급 사회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무덤은 지금으로부터 약 2만 3천 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데, 15세 정도의 소년이 매장되어 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소년의 유골 주변에 코뿔소 뼈, 조개껍데기, 매머드 상아로 된 인형 등 다양한 부장품들이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장품들은 당시에 얻기가 힘들었거나, 만드는 데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했던 것들이다. 따라서 이 무덤의 주인은 당시 집단 내에서 높은 신분이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사진 2.  이탈리아 아레네 칸디데에서 발견된 소년의 무덤. 부장품이 함께 묻어 있어 수렵채집인도 신분과 계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wikipedia)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과거의 수렵채집인들이 평등한 작은 집단 단위로 생활했다는 통념에 반하는 새로운 인류학적, 고고학적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기존의 통념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형성되었는데, 이들이 과거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칼루사족의 복잡한 사회 구조나 아레네 칸디데의 무덤은 수렵채집인들도 불평등하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루는 것이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글: 강규태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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