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이렇게 추울 때는 집에서 OTT만 보게 되기가 쉽다. 하지만 등록된 콘텐츠가 많다고 볼 것도 많은 건 아니다. 그만큼 망작도 많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유명 감독, 예를 들면 천만 관객 돌파 이력을 지닌 감독들이 만든 작품은 은근히 신뢰감을 준다. 아무래도 전작이 전작이다 보니 '이번 작품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들고. 그러나 그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망작은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피해야 할 지뢰 같은 작품 6개를 소개한다.
*본문에 누적 관객 수는 KOBIS 발권 통계를 참고하였다. 일부 내용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 전 주의하길 바란다.
Worst 1.
제작비 280억 원은 달나라로
김용화 감독의 ‘더문 (2023)'
누적 관객 수 51만 명, 손익분기점 600만 명, 제작비 280억 원
전작 : 신과함께 - 죄와 벌 1,441만 명 / 신과함께 - 인과 연 1,227만 명
한줄평 이 정도로 내 눈물과 돈을 가져가려 했어요?
달 탐사를 위해 떠난 우리나라 대원이 사고로 달에 홀로 남겨지며 그를 살리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아낸 영화. 한국 영화 최초의 달 탐사 소재 장편 영화라는 점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나, 딱 거기까지다. 그놈의 ‘한국형’이 문제다. CG만 혁신적이지, 스토리라인은 신파 그 자체다. 한국형이 왜 신파로 직결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심지어 감동적이지도 않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를 두고 ‘이야기가 다가와야 기술도 보인다’라고 비평했는데, 그 말에 200% 공감한다.
겨울에 황리단길은 여름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눈이 살포시 쌓인 한옥마을은 감성 끝판왕 그 자체!
러닝타임은 129분으로 KTX를 타면 서울에서 경주도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갑자기 웬 경주냐고? 이상한 영화를 볼 바에는 경주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훨씬 의미 있지 않을까.
Worst 2.
외계인도 손절할 영화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2022)’
누적 관객 수 154만 명, 손익분기점 730만 명, 제작비 330억
전작 : 암살 1,270만 명, 도둑들 1,298만 명
한줄평 짬뽕도 레시피가 있는 법이다. 좋은 걸 전부 섞는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외계+인 1부’는 정말 외계인마저 등을 돌릴 작품이 아닐까? 인간의 몸에 가두어진 외계인 죄수를 쫓는 것부터 시작해 신검을 차지하려는 고려의 도사들까지 등장하는데, 문제는 캐릭터에 몰입할 시간을 안 주고 극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최동훈 감독이 앞서 도둑들에서 여러 명의 캐릭터를 등장시켰음에도 훌륭히 소화해 낸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 내용은 또 왜 이리 복잡한지 이런 쪽으로는 전문가인 놀란 감독이 봐도 머리 아파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CG와 스타 배우들이 멱살 잡고 끌어가지만 어쨌든 몰입이 잘되지 않는다.
필자가 실제로 제주도에서 먹은 흑돼지고기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심지어 러닝타임도 142분으로 길다. 2시간 22분이면 비행기 타고 김포에서 제주도까지 왕복도 가능하다. 무슨 말이냐고? 시간 제대로 날렸다는 얘기다. 저 시간에 제주도를 갔으면 흑돼지고기라도 먹었다.
Worst 3.
문제는 초능력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
연상호 감독의 ‘염력(2018)’
누적 관객 수 99만 명, 손익분기점 370만 명, 제작비 130억 원.
전작 : 부산행 1,156만 명
한줄평 불면증 있는 분들한테 추천합니다.
은행 경비원이 염력을 얻으며 재개발 구역에 거주하는 철거민들과 딸에게 히어로가 된다는 내용인데…이건 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심지어 분노하게 만든다. 사회고발이 담겨서? 아니, 유치해서. 이러한 관객의 매몰찬 반응을 보며 연상호 감독은 ‘관객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고 치를 떠는 이유가 무엇일까’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이후에 류승룡이 같은 초능력을 소재로 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을 통해 호평을 받은 걸 생각하면,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이 영화가 문제다.
귀여움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판다들
그래도 러닝타임이 101분으로 앞서 소개한 영화들에 비해 짧은 편이지만, 차라리 이 시간에 용인가서 에버랜드라도 다녀오자. 귀여운 푸바오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참고로 서울에서 용인까지 가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Worst 4.
이 영화 관람이야말로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드림(2023)’
누적 관객 수 112만 명, 총제작비 139억 원, 손익분기점 218만 명.
전작 : 극한직업 1,626만 명
한줄평 뻔한 신파인데 그마저도 감동적이지 않다
영화에서는 박서준이 선수 생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은 축구 선수로 표현되나, 정말 위기를 맞은 건 이 영화가 아닐까 싶다. 줄거리는 심플하다. 열정도, 의지도 없는 축구 선수(박서준)가 운동이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을 이끌어 월드컵 출전까지 한다는 내용. 이 과정에서 출세욕에 눈이 먼 PD(아이유)까지 합류, 그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는데…
사실 이러한 스토리 구조는 영화 말아톤이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충분히 접한 이미 사골처럼 우릴 대로 우린 소재다. 그럼에도 박서준과 아이유가 나온다는 점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조연을 적극 활용한 것까진 좋지만 살려도 너무 살렸다. 조연의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주연이 오히려 비중과 분량을 뺏겼다. 이럴 거면 아이유는 대체 왜 캐스팅한 건지 의문.
필자가 실제로 춘천에 방문해 먹은 닭갈비. 생각보다 단맛이 덜했으나, 그게 매력이다.
러닝타임은 125분으로 서울에서 춘천까지 가고도 남는 시간. 춘천 가서 닭갈비 먹기 vs 집에서 망한 영화 보기 중 당신은 어느 것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가.
Worst 5.
애국심은 커녕 한국 영화가 싫어지는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2023)’
누적 관객 수 102만 명, 총제작 210억 원, 손익분기점 450만 명
전작 : 태극기 휘날리며 1,174만 명
한줄평 임시완이 멱살 잡고 끌고 가지만…이거 놓으세요, 시완 씨. 전 하차하렵니다.
실화 영화의 장점은 실화에 기반하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공감대 형성이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재미나 감동을 위해 과도한 설정, 각색을 더하면 거부감을 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 내용, 역사를 꿰고 있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건 왜곡이야!’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발견되면 엄청난 반발감을 불러일으킨다.
‘1947 보스톤’은 그러한 실화 영화의 단점이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다. 광복 이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마라토너들의 우여곡절을 담아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실제 역사가 왜곡된 일부 장면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애국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로서 각색했다는 건 알겠지만, 이건 뭐 재미도 감동도 없고 불편하기만 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나 할 법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다니 부끄럽다.
뻔한 여행에 질렸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
러닝타임은 104분으로 서울에서 가평도 갈 수 있는 시간. 아직 가평을 다녀와 본 적이 없다고? 수목원부터 쁘티프랑스까지 볼거리 천국이다. 이상한 영화 보면서 시간 날릴 바에는 가평 여행을 추천한다.
Worst 6.
원작은 잊고 보세요, 당신을 위해서.
추창민 감독의 ‘7년의 밤’ (2018)
누적 관객 수 52만 명, 손익분기점 290만 명, 총제작비 100억
전작 : 광해, 왕이 된 남자 1,231만
한줄평 자면서 볼 영화로도 추천 못 하는 게 한번씩 매우 시끄럽다.
추창민 감독의 ‘7년의 밤’은 무려 50만 부가 팔린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원작이 훌륭하다고 해서 2차 창작물도 뛰어난 건 아닌가 보다. 소설을 읽고 보면 원작이 떠올라 불만족스럽고, 소설을 읽지 않고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영화다. 일각에선 딸을 학대하던 아버지가 딸을 위해 복수한다는 내용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또, 장동건의 연기 또한 호불호 요소로 너무 과잉되어 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 저널리스트인 정시우는 이 영화를 보고 ‘7년의 피로감’이라는 제목과 함께 ‘원작이 지닌 무게감에 여러모로 짓눌린 결과물’이라고 비평을 남기기도 했다.
양평의 대표 관광지 용문사는 종교를 떠나서 누구나 가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러닝타임은 123분인데, 두 시간이면 앞서 말했듯이 양평에 다녀오는 게 낫다. 서울에서 양평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으로 왕복도 가능하다. 참고로 양평의 대표 관광지는 용문사인데,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도 있으니 꼭 구경하고 올 것.
BONUS
국내 영화 보고 놀란 가슴,
놀란 감독 영화 보고 더 놀랐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 (2020)
누적 관객 수 200만, 총제작비 2억 달러
전작 : 인터스텔라 1,027만
한줄평 두 번 봐야 이해가 된다는 건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국내에만 망작을 만든 천만 감독이 있다면 오산. 외국 거장들도 가끔은 실수한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만큼은 피하라고 말하고 싶은 작품이 하나 있으니,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다. 제작비만 무려 2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2,628억원에 달한다. 스케일이 이쯤 되니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 확실히 액션 같은 경우에는 눈에 띄게 화려해지고 힘을 준 티가 난다.
하지만 놀란 영화의 최대 장점인 탄탄한 스토리 구성은 이 때문에 신경을 덜 쓴 건지 중구난방이 됐다. 그래서 한 번만 봐선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참고로 국내 성적은 전작인 인터스텔라에 비하면 폭삭 망했다고 볼 수 있는 200만. 그 정도면 많은 게 아니냐고? 인셉션이 592만, 다크나이트 408만,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통해 639만 관객을 동원했던 감독인 걸 감안하면 ‘겨우 200만’이다.
참고로 대만에도 겨울은 있다.
러닝타임은 어찌나 긴지 150분. 2시간 30분이면 인천에서 대만도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추울수록 집에서 OTT만 보게 되는 건 알지만...”
사실 여기 소개한 영화 말고도 OTT에는 인생 최악의 영화가 될 작품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래도 추울 때 따순 방구석에서 OTT를 시청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나도 그렇다. 그대여, 나와 같다면~(김장훈 톤으로) 미안하지만, 살찐다. OTT 시청? 좋다. 하지만 가끔은 건강을 위해 운동도 좀 해주고 바깥공기도 좀 쐬주자. 내 몸이 ‘망작’이 되기 전에 말이다.
기획, 편집, 글 / 다나와 김주용 jyk@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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