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상하이 모터쇼를 찾은 이들은 이례적인 조용함을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베이징 모터쇼의 요란한 흥분과 비교해 이번 행사는 확연히 톤이 달랐다. 무수한 브랜드들이 총출동하며 자율주행, 전동화, 수소차 등 다양한 키워드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던 그때와 달리, 이번 상하이의 현장은 일견 차분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중국 자동차 산업의 변곡점을 알리는 중요한 단서들이 숨어 있었다.

올해 상하이 모터쇼에는 한국, 프랑스, 미국의 주요 브랜드들이 대거 불참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물론 르노, 푸조, 그리고 테슬라까지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대대적인 발표를 했던 일부 브랜드는 이미 시장에서 철수했거나 존폐 위기에 놓였다. 지웨(Ji Yue)는 이미 퇴장했고, 네타(Neta)는 위태롭다. 샤오미의 SU7이 작년 행사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것과 달리, 올해 기대를 모았던 페라리 스타일 SUV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정중동'에 가까운 분위기였지만, 이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단계, '성장의 정제기'를 암시한다. 시장은 더 이상 신생 브랜드들의 난립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본도 수익 가능성이 불확실한 기업에는 더 이상 무한정 흘러가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매년 수십 개의 신차를 선보이며 폭발적 속도로 산업을 확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 상하이 모터쇼에서는 이러한 속도의 논리보다 '품질'과 '지속가능성'이 전면에 나섰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완전히 새로운 모델보다 기존 주력 제품들의 세련된 업그레이드에 집중했고, 중소 브랜드들은 조용히 사라지거나, 전략을 전환했다.

BYD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한때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이제 직관적인 UX/UI로 탈바꿈했고, 기이한 회전 디스플레이는 보다 실용적인 구성으로 대체됐다. 내장재 품질 역시 급격히 개선되었으며, 전반적인 조립 정밀도는 확연히 향상되었다. 기술적으로도 BYD는 5분 급속충전 기술을 완성하며 다시 한번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간 '그저 그런' 차량을 만드는 국영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체리는 올해 모터쇼에서 16종의 신차를 전면에 내세우며 반전을 시도했다. 특히 군용 지프에서 영감을 받은 iCar V23은 마치 중국식 포드 브롱코 혹은 메르세데스 G-바겐을 연상케 하는 외관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단순한 스타일 오마주에 그치지 않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품질로 "이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체리의 자신감을 대변했다.

샤오미 SUV처럼 공개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실차가 등장하지 않은 사례는 이번 모터쇼의 기조를 보여준다. 지커(Zeekr)의 플래그십 EREV 모델인 9X는 실내 없이 외관만 공개됐고, 니오의 온보(Onvo) 브랜드는 3열 전기 SUV인 L90의 대형 프렁크만 강조하며 디테일을 숨겼다. 이제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무조건 신차 공개'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전략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며 시장 반응을 살피는 '정책적 여유'를 택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외국 브랜드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브랜드는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한다. GM은 차세대 중국 전략 플랫폼 '샤오야오(Xiao Yao)'를 공개하며, BEV와 EREV를 동일 아키텍처 내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했다. 얼티움(Ultium) 플랫폼보다 중국에 특화된 접근이다. 닛산은 BYD를 연상케 하는 전기 세단 N7을 통해 가성비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마쓰다의 EZ-60 역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맥킨지의 2024년 중국 자동차 소비자 보고서에 따르면, 가격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브랜드는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크며, 시장은 더 이상 실험적인 모델을 양산할 여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이젠 브랜드와 모델 수의 확장보다, 정밀한 자원 배분과 제품 정제가 생존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하이 모터쇼는 과거처럼 폭죽 같은 신기술 쇼케이스는 아니었지만, 중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명확한 단서를 제공했다. 수많은 신생 브랜드가 퇴장하고, 기존 브랜드는 기술, 품질, 사용자 경험에서 더 깊은 고민을 담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축소나 침체가 아니라, 본질적 변화와 진화의 과정이다.
폭발적인 확장기를 지나 중국 자동차 산업은 이제 장기전의 체제로 전환했다. 기술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선 즉흥적인 '혁신'보다 전략적 '정제'가 필요하다. 단기적 쇼맨십은 줄어들겠지만, 그 대신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와 지속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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