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스텔란티스에 쏠리고 있다. 2021년 PSA(푸조·시트로엥)와 FCA(피아트 크라이슬러)가 합병하며 탄생한 세계 4위 자동차 그룹 스텔란티스는, 최근 최고경영자(CEO) 교체라는 중대 분기점을 맞았다. 2021년부터 그룹을 이끌던 칼로스 타바레스 전 CEO가 임기 만료 전인 2024년 말 전격 사임했고, 이 자리는 피아트 출신의 안토니오 필로자(Antonio Filosa) 신임 CEO가 맡아 지난 6월 23일 공식 취임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필로자 CEO는 이름만 들으면 낯설 수 있지만, 남미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피아트 남미 사업을 이끌며 실적을 쌓았고, 스텔란티스 출범 후에는 남미·북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쳤다. 특히 북미에서의 경력이 길고, 2024년 말에는 북미·남미 양대 시장 COO까지 맡으며 중남미·북미 전략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이 인사는 ‘프랑스 출신’ 타바레스 전 CEO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타바레스 전 CEO는 PSA 출신으로 유럽 시장의 전통적 사고를 지녔던 인물이다. 이에 반해 필로자 CEO는 피아트 색이 강한 동시에 미국 시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무형’ 인사다.
이번 인사는 자연스레 “이제 스텔란티스는 FCA 색깔이 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이 인사의 배경에는 스텔란티스 회장 존 엘칸(John Elkann)의 강력한 존재감이 있다. 엘칸 회장은 피아트 창업 가문인 아녤리(Agnelli)가의 후계자다. 현재 스텔란티스 회장뿐 아니라 페라리 회장, 모기업인 투자회사 엑소르(Exor)의 CEO까지 겸임하고 있으며, 메타(구 페이스북) 이사회 멤버이자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엘칸 회장은 FCA 시절부터 피아트 중심의 전략을 꾸준히 밀어왔다. 실제로 타바레스 전 CEO의 갑작스러운 사임 역시 엘칸 회장과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스텔란티스는 지난해 말 타바레스 전 CEO의 사임 발표에서 “최근 몇 주간 이사회와 CEO 간 의견 차이가 부각됐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CEO 교체 과정을 보면, 타바레스 전 CEO가 물러난 후 엘칸 회장이 주도한 임시경영위원회가 그룹을 통솔했고, 결국 피아트 출신 피로자 CEO를 선임했다. 엘칸 회장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스텔란티스는 피아트 색이 짙은 경영체제로 넘어가고 있다. 피로자 CEO가 본격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룹을 정비하고 북미 시장 재건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스텔란티스의 당면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북미 시장 회복이다. 특히 미국 내 자동차 산업 환경은 미국 대통령의 친 내연기관 정책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필로자 CEO가 ‘북미통’으로서 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풀어낼지가 첫 번째 시험대다.
둘째, 스텔란티스의 브랜드 전략 재편이다. PSA·FCA 합병 후 산하에 무려 16개 브랜드가 포진한 스텔란티스는 이제 정리와 통폐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타바레스 전 CEO가 ‘모두 살리는 전략’을 택했다면, 피로자 CEO는 실리 중심의 선택과 집중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그룹 내 정치력이다. 피아트는 과거 숱한 위기에서도 특유의 정치적 수완으로 생존해왔다. 실제로 1970년대 오일쇼크·노사분규로 경영 위기를 겪던 피아트는 리비아 카다피 정권으로부터 무려 4억 달러를 융자받아 위기를 넘겼다. 이후 판다’와 우노(Uno)의 판매 증가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이처럼 ‘위기에서 살아남는 법’을 잘 아는 피아트 DNA는 필로자 CEO에게도 강하게 흐를 것이다. 엘칸 회장이라는 든든한 지원군까지 있는 만큼, 스텔란티스의 미래는 단순히 CEO 교체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인사는 “피아트적 생존 전략”의 부활이다. 자금·인맥·정치력이라는 피아트 특유의 무기를 활용해 스텔란티스가 다시 한 번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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