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닛산이 또다시 칼을 빼들었다. 일본 가나가와현의 옷파마(Oppama) 공장 폐쇄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멕시코 공장 두 곳의 운영 중단 가능성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하나는 모렐로스(Morelos)의 '시박(Civac)' 공장이고, 다른 하나는 아과스칼리엔테스(Aguascalientes)에 있는 'COMPAS' 공장이다.
두 공장 모두 닛산에게는 꽤 상징적인 존재다. 시박은 닛산의 첫 해외 공장이자 남미 전략의 핵심이었고, COMPAS는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잡고 ‘프리미엄의 꿈’을 꿨던 합작의 산물이다. 그런데 닛산은 이 둘을 모두 정리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사실상 'Re:Nissan'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이 구조조정은 생산 효율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리셋(reset)이다. 닛산은 2027년까지 전 세계 생산거점을 17개에서 10개로 줄이겠다고 공언했고, 이번 결정은 그 로드맵에 포함된 다음 수순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몇 개 공장을 닫느냐'가 아니다.
닛산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변화는 닛산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닛산의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주력 시장인 북미에서도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 여기에 고스란히 쌓인 고정비 부담, 낮은 생산효율, 불분명한 전동화 전략 등으로 인해 닛산은 글로벌 시장에서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2023년부터 본격 가동된 전략이 바로 'Re:Nissan'이다. 간단히 말하면, 전사적인 조직 개편과 생산구조 슬림화를 통해 닛산을 다시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세 가지다.
1. 생산기지 통합 및 비효율적 자산 정리
2. 모델 라인업 재구성 및 수익성 중심의 포트폴리오 구축
3. 전동화 및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이미 일본 내 옷파마 공장의 폐쇄가 결정됐고, 태국에서는 두 공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번 멕시코 공장 두 곳의 정리는 사실상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재편’의 핵심 구간에 해당한다.
닛산은 공식적으로 “아직 결론 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지 언론들과 공급망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내정된 수순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멕시코 시박 공장은 닛산이 1966년에 세운 첫 해외 공장이다. 당시만 해도 닛산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첫 도전의 상징이었고, 남미 지역에서의 생산허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NP300 프론티어 시리즈는 남미에서 굉장히 인기 있었고, 현지 조립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또, 멕시코 내수 전용 모델인 V-드라이브, 미국 시장에 판매되는 N18 버전의 버사(Versa)도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공장이 너무 낡았다는 점이다. 생산라인이 너무 오래됐고, 최신 전동화나 자동화 설비를 반영하려면 엄청난 투자비가 필요하다. 닛산 입장에서는 그 돈을 들여 이 공장을 살리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공장으로 옮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공장에 중국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BYD와 SAIC, 두 거대 중국 자동차 그룹이 북미 진출 교두보로 시박 공장을 인수하려 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닛산은 멕시코 시장에서의 자산을 정리하면서도 일정 부분 매각 이익까지 챙길 수 있다.

COMPAS는 2015년에 닛산과 메르세데스-벤츠가 합작으로 만든 공장이다. 당시 두 회사는 이 공장을 통해 새로운 프리미엄 콤팩트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했고, 실제로 인피니티 QX50(2017), QX55(2021), 메르세데스 GLB(2019)가 이곳에서 생산됐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인피니티는 브랜드 경쟁력이 약해지고 북미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해당 모델들의 판매량도 크게 떨어졌다. 결국 인피니티는 2025년 4월부터 QX50과 QX55의 신규 주문을 중단했고, 이 공장에서의 생산도 곧 종료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 역시 GLB의 차세대 모델을 미국 내에서 생산할 예정이며, 플랫폼 자체도 완전히 다른 MMA 플랫폼으로 전환된다. 결과적으로, COMPAS는 생산할 모델이 없는 ‘빈 공장’이 되어버렸고, 닛산 입장에서는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번 멕시코 공장 정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럼 지금 생산하던 차는 어디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시장에서도 팔리고 있는 버사(Verna), 프론티어 픽업트럭(NP300)은 현재 시박에서 조립되고 있다. 이 생산을 멈춘다면, 그 물량은 어디로 옮겨가는 걸까?
현재로선 유력한 시나리오는 닛산의 큐슈 공장(일본) 혹은 태국 내 공장으로 생산 이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미국 시장에서의 수입차 관세 문제와 물류비용 상승이라는 난제가 생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부과된 수입 관세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닛산으로서는 물량 이전 시 신중할 수밖에 없다.
혹은 닛산이 미국 현지 공장(스머나, 캔턴 등)에서 일부 소형차 생산을 유턴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이 역시 설비 개조 및 라인 통합이 필요해 단기간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

닛산이 이렇게 공장을 줄이고 구조조정을 단행한다고 해서, 바로 경쟁력이 생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비용 절감’이라는 단기 처방이 끝난 뒤, 닛산이 진짜로 보여줘야 할 건 '제품력'과 '브랜드 매력'이다.
그런 점에서 닛산이 준비 중인 전동화 전략은 앞으로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다. 닛산은 2030년까지 글로벌 차량 판매의 60%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고, 자사의 e-POWER 시스템 고도화, 자체 배터리 내재화 전략(전고체 배터리 포함), 그리고 미드사이즈 EV 플랫폼 개발 등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테슬라, 현대차그룹, BYD 등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속도와 확신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은 그 기반을 만드는 ‘마중물’일 뿐, 진짜 승부는 제품과 시장에서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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