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V5의 가격에 대해 말이 많다. 2천만원대부터 시작하는 중국 모델에 비하여 5천만 전후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중국산 모델과 내수 및 호주 등 선진국형 제품 사이의 차이를 보더라도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고, 아래 위 모델과의 가격 포지셔닝 관계를 보더라도 적절한 가격이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발 EV5 관련 뉴스가 국내에 적잖게 유통되었기 때문에 ‘EV5는 원래 3천만원짜리 차’라는 인식이 국내 출시 이전에 자리잡아버린 것이다.
이런 혼선이 발생한 이유는 EV5는 제3세계 모델에서 선진 시장용으로 진화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와 의구심이 교차하는 것이다. 기대하는 것은 가격이 저렴하거나 최소한 가성비가 좋을 것이라는 점인 반면, 미심쩍은 부분은 성능이나 마무리 등 만듦새에 부족한 부분은 없을까 하는 염려인 셈이다.
이런 기대와 염려가 시장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우리는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 EV5 이전에도 제3세계에서 선진국용 제품으로 진화했던 현대차그룹 모델이 두 개 있었던 것. 바로 기아 셀토스와 현대 베뉴다. 소형 SUV 세그먼트의 두 모델은 인도형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접근법은 다소 달랐는데 결과적으로 내수 시장에서의 성패가 바로 이 부분에서 좌우되었다. 그것은 바로 ‘대중적 상품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EV5의 내수 시장에서의 성패 역시 이 대중적 상품성에 의해 결판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EV5가 EV6처럼 고급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모델의 기본기를 흉내내는 것은 애당초 목적일 수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한 급 아래 모델이지만 선진국 시장을 위하여 처음부터 기획된 EV3와 EV4 수준의 기본기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EV3의 성공 요인은 외관보다 넓은 실내, 우수한 장비 수준이라는 보편적 기준도 있었지만 대단히 우수한 주행 질감이라는 수준 높은 기본기도 크게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셀토스는 차 자체로서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주행 품질이나 NVH 성능이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판매에서는 대성공이었다. 바로 대중적 관점의 상품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소형 SUV를 잊게 하는 존재감이 우수한 외관 디자인, 소형 SUV 최고 수준의 기능 및 사양, 그리고 매력적인 시작 가격이었다. 즉, 대중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를 잘 갖추었다는 점이 셀토스의 성공 포인트였던 것.
이에 비하여 베뉴는 인도 소형차 기준인 차체 길이 4m를 살짝 넘기는 차체 변형과 무난한 1.6리터 엔진와 IVT 무단 변속기의 채용과 담백한 주행 품질 등 전반적으로 소형 SUV의 공식을 그대로 유지한 선진국 엔트리 모델의 공식을 따랐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경쟁이 심한 국내 소형 SUV 시장에서는 성공하기에 부족했던 것. 준수한 엔트리 모델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미국과 호주 시장에서의 형편과는 상당히 달랐다.
직업의 특성 상 EV5를 출시 이전에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다. 초기 목업에서는 품질에 대한 걱정이 솔직히 컸었다. 평면과 직선이 중심인 실내외 디자인의 만듦새가 아쉬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프로토타입, 시생산 모델 등을 거치면서 조립 및 프레스 품질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실내 소재에서의 아쉬움은 살짝 남아있었지만 그 대신 다양한 기능과 실내 편의 사양 등으로 상품성이 높아졌다. 즉, 주행 품질을 제외한 상품성은 잘 갖추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최근 있었던 EV5 시승에서의 내 주안점은 EV5가 무난한 수준의 승차감과 조종 성능 등 주행 품질을 보여줄 수 있는가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EV5는 자동차 고관여층을 겨냥한 것이 아닌 대중형 모델, 특히 패밀리 SUV를 지향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서 볼 때 EV5의 주행 품질은 무난했다. EV3만큼의 부드러움은 없지만 결코 거칠다고 느껴지지 않는 수준의 승차감을 EV5는 갖췄다. 그 대신 훨씬 넓고 높은 본격적인 SUV를 닮은 스타일과 넓은 실내를 가졌으니 커다란 결격 사유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EV5를 스포티지나 쏘렌토와 비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EV3를 타던 커플 혹은 어린 자녀를 가진 부부가 자녀들이 성장해서 큰 차인 EV5로 업그레이드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스포티지나 쏘렌토 등의 내연 기관 모델에서 첫 전기차로 넘어올 시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는 휠 베이스가 긴 기존 전기차들에 비해서 안정감이 약간 부족한 듯했던 EV5의 조종 감각이 내연기관 모델들과 비교할 때는 전혀 부족하지 않으며 오히려 익숙한 감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즉, EV5는 내연기관 소비자들에게 사양과 용도, 공간은 물론 감각적인 부분에서도 매력적인 첫 전기차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EV5의 가격은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아랫급인 EV3 롱레인지보다 600만원 위, 고급 플랫폼인 후륜 기반 EV6 에어 롱레인지보다 역시 600만원 저렴한 균형 잡힌 포지션을 갖고 있다. EV6의 미끼 트림인 라이트 트림은 큰 의미가 없으므로 EV3-5-6의 가격 포지셔닝은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수용 EV5가 중국용 EV5에 비하여 차 자체에서도 가격 인상 요인이 2천만원 수준이나 되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결론은 충분하다고 본다. 비록 CATL 제품이지만 81.4kWh 하이니켈 배터리는 중국 EV5의 64.2kWh LFP 배터리와 용량은 물론 성능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체 구조에서도 차이가 있다.

내수용 EV5는 중국 모델의 스틸 본네트와는 달리 알루미늄 본네트를 사용한다. 그리고 사이드 실과 시트 크로스멤버 등에는 핫 스탬핑 기술로 강성을 높인 구조물이 적용된다. 즉, 경량 – 고강성 구조라는 상위 컨셉트가 내수용 EV5에는 적용되어 있는 것이다. 편의 사양에서는 시장의 특성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중국용 모델에서는 센터 콘솔의 냉온장고, 발 받침대가 적용된 1열 시트 등 편의 사양이 두드러지는 반면 내수 모델에서는 HDA2, 스마트 회생 제동과 I 페달 등에서도 더 높은 수준을 제공한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핫 스탬핑 등 경량 – 고강성 차체 구조와 더불어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와 가속 제한 보조 등 초보운전자 및 전기차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안심도를 높이기 위한 특화 기능들이 적용된다. 이 부분에서도 EV5가 전기차 시장을 넓히기 위하여 기존 내연 기관 시장으로부터 새로운 소비자들을 유입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뜻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배터리부터 시작하여 차체, 첨단 안전 사양 등으로 디테일한 면을 살펴볼 수록 내수용 EV5는 중국용과는 상당히 많은 차이를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적재함 테이블처럼 국내 법규 때문에 삭제된 기능은 아쉽지만 적재함에 마련된 기아 애드기어 레일 시스템을 활용하는 액세서리 등으로 추후 저렴하게 대체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 좀 안다는 사람들이 셀토스, 이전의 티볼리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이 모델들이 겨냥하는 시장은 자동차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높은 고관여 고객층이 아니라는 점을 잊은 것이다. 그보다는 훨씬 넓은 시장인 대중 시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난한 기본기는 똑똑한 능동 안전 대책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으므로 커다란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다양한 용도와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서의 자동차가 더 큰 매력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EV5가 좀 더 깔끔한 주행 감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선 순위는 시장이다. 그리고 셀토스가 그랬듯이 페이스리프트를 통하여 현재로서는 부족한 질적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생애주기 관리에서도 현명한 방법이다.
이렇듯 EV5는 적절한 포지션에 적절한 구성, 적절한 가격을 갖춘 대중적 코드의 ‘적정 소비 모델’이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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