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쉐가 전기차 전환 전략에서 변화를 선언했다. 한동안 “차세대 718 박스터와 카이맨은 100% 전기차로만 출시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포르쉐가 이제는 일부 상위 모델에 내연기관 버전을 남기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 보인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뎌진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스포츠카라는 특수한 시장의 본질을 고려하면, 이는 오히려 합리적인 결정에 가깝다.

스포츠카는 실용적 이유로 사는 차가 아니다. 교통 체증 속에서 효율적이고 조용하며 매끄럽게 주행할 수 있다는 장점은, 패밀리 세단이나 SUV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일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카 구매자에게는 전혀 다른 가치가 우선한다. 그것은 바로 감성적 경험이다.
포르쉐의 주 고객층은 평균 연령이 50대 초반 이상이며, 많은 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플랫식스 엔진 사운드를 꿈꿔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합리적 연비나 정숙성이 아니라, 가속 시 느껴지는 진동과 사운드, 기계와 운전자가 하나로 이어지는 감각이다.
현재 전기 스포츠카들은 여전히 그 감성적 경험을 완벽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감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전기차가 2톤이 넘는 현대차의 고성능 SUV라는 점만 보아도 상황은 분명하다. 결국 감성을 위해 전기차가 엔진 사운드를 흉내 내는 단계라면, 차라리 내연기관 스포츠카를 유지하는 편이 더 솔직한 해법일 수 있다.

SUV나 중형 세단은 필요 때문에 판매된다. 그러나 스포츠카는 철저히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구매가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수요 탄력성이 극단적으로 크다. 소비자들이 마음으로 원하지 않으면 아예 시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포르쉐의 결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누군가 수십 년간 동경해온 플랫식스 박스터를 전기차로만 강제로 전환한다면, 그 구매자는 단순히 포르쉐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 스포츠카가 첫 번째 차량인 경우는 드물며, 대체로 두 번째, 세 번째 차량으로 존재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스포츠카는 연간 주행거리가 평균적으로 매우 짧다. 한 조사에 따르면 마쓰다 MX-5 미아타의 평균 주행거리는 연간 약 8,000km 수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적게 주행되는 차종으로 꼽힌다. 코르벳 같은 대배기량 스포츠카조차도 고속도로에서는 리터당 10km 이상을 달성한다. 이런 특성을 감안하면, 스포츠카의 내연기관 존재는 환경적 부담 측면에서도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물론 이는 전기 스포츠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논리가 아니다. 언젠가는 대부분의 스포츠카가 전기차로 전환될 것이고, 그 시점을 앞당기는 브랜드가 미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임은 분명하다. 중요한 점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포르쉐는 이미 전기차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증명했다. 타이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충전 속도와 주행 성능을 입증했으며, 곧 선보일 전기 718 역시 기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내연기관 스포츠카를 병행해 고객의 감성을 존중하는 것은 전략적 유연성이다.
2027년형 카이맨을 구매한 고객이 차기 모델로 교체할 시점이 되면, 전기 스포츠카는 지금보다 훨씬 가볍고, 매혹적이며,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가 되면 전기 스포츠카는 자연스럽게 내연기관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모든 차종이 동일한 속도로 변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패밀리카와 상용차는 전기차 전환이 시급하다. 하지만 스포츠카는 운전자의 감성과 열망이 핵심 가치이기에 조금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
포르쉐의 이번 결정은 미래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고객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적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카라는 영역은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인간과 기계가 교감하는 경험의 상징이다. 그리고 이 경험이 전기차 시대에도 온전히 계승되기 위해서는, 지금 같은 과도기의 타협이 불가피하다. 결국 포르쉐의 행보는 현실적인 진보의 또 다른 모습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저작권자(c) 글로벌오토뉴스(www.global-auto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