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귀성길 고속도로에 갇혀 본 기억이 있는가? 도로가 잠시 뚫릴 때는 부리나케 속도를 내다가도 순식간에 차량이 몰려들어 사방의 차체 모두가 거북이걸음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완전히 멈춰 있을 수 없어서, 시간당 10에서 30㎞를 오가는 느릿한 행렬이 몇 시간이고 이어진다. 평소 멀미를 잘 앓는다면 장거리 이동은 늘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차창 밖 풍경이 느릿하게 흐르는 만큼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움이 올라오며, 심하면 식은땀을 흘리거나 구토감을 느끼기도 한다. 미리 멀미약을 먹고 대비하더라도 불시에 졸음이 몰려오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이처럼 명절이나 여행 등 장거리 이동을 할 때 약 대신 음악으로 멀미를 예방할 수 있으면 어떨까? 최근 국제 학술지 《인간 신경과학 프론티어스(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에 실린 한 연구는 뇌파 분석을 통해 어떤 음악이 멀미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정량화했다. 어떤 종류의 곡이 멀미 해소에 도움을 줄까? 반대로 멀미를 심화하는 음악도 있을까?
멀미 전후의 뇌파를 수집하다
중국 시난대학교를 비롯한 중국 내 합동 연구팀은 일상에서 멀미를 자주 겪는 사람들이 차에 타기 전 미리 긴장하는 상황에 주목해 이번 연구에 착수했다. 멀미를 앓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은 신체 반응으로 이어져 멀미 증세를 더 빨리 불러오곤 한다. 연구진은 긴장을 풀어주는 음악의 기능이 멀미의 대응책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사진 2. 실험에 적용한 운전 시뮬레이션 환경. 실제 차량처럼 운전대, 기어 변속 장치,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 등이 세팅되어 있다. 머리에는 EEG 장치를 써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한다. ⓒ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
가상 운전 시뮬레이터 환경을 조성한 연구진은 초기 선별 검사 후 멀미에 대한 중간 수준의 민감성을 가진 성인 3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여섯 그룹으로 나뉜 참가자 중 다섯 그룹은 가상 운전 시뮬레이터에 앉아 시각 정보와 평형감각의 불일치를 경험하며 멀미 증세를 경험했다. 그렇게 증상이 오면 60초 동안 즐거운 음악·차분한 음악·열정적인 음악·슬픈 음악 등 네 종류의 음악을 듣거나 음악 없이 명상하며 자연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한 그룹은 멀미를 느끼기 전 운전을 마치도록 해 기준치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 뇌파 검사(EEG)와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했는데, 수집한 뇌파 데이터를 분류 알고리즘과 결합하여 멀미 인식 모델을 구축하고 각 음악이 증세를 얼마나 낮춰주는지를 측정했다.
멀미에는 차분하거나 즐거운 노래를
실험 결과, 음악은 멀미 증상을 줄이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됐다. 하지만 모든 음악이 그렇지는 않았다. 즐겁거나 차분한 음악은 증상을 크게 완화해 주었지만, 슬픈 음악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즐거운 음악은 멀미를 57.3%나 누그러뜨려 주어 효과가 가장 좋았다. 차분한 음악도 그와 비슷하게 56.7%의 감소 효과를 보였다. 열정적인 음악은 48%의 효과를 보였고, 슬픈 음악의 수치는 40%에 그쳤다. 아무 음악을 듣지 않고 자연 회복한 대조군(43.3%)보다 낮은 수치다.

사진 3. 멀미 완화 효과에 대한 참가자의 주관적 평가 점수(왼)와 EGG 신호에 기반한 객관적 평가 점수(오른쪽)를 나란히 보면 두 점수가 비슷하게 도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멀미 완화 효과는 부드러운 음악(초록색)을 들을 때 가장 높았다. ⓒ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
연구진은 일련의 결과를 뇌의 주의 전환과 정서 조절로 해석했다. EEG 분석 결과를 보면 멀미를 심하게 느낄수록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의 활동이 단순해지고, 증상이 완화되면 신호가 다시 복잡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이 멀미 예측을 위해 사용한 인공신경망 모델은 후두엽 채널에서 특히 정확도가 높았는데, 이는 멀미의 근본 원인이 시각 정보와 전정 기관 사이의 불일치에 있다는 기존 이론과 잘 들어맞는다. 실제로 차에 타면 풍경은 흔들리지만, 몸은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어 뇌의 시각 처리 체계가 교란된다. 이런 불일치가 멀미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눈으로 보는 것과 몸의 움직임이 어긋나는 상황에 음악이 전달하는 정서적인 분위기는 뇌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차분한 음악은 긴장을 풀어 자율신경계가 안정되도록 하고, 교감 신경 흥분도를 줄여 메스꺼움과 현기증 증상을 완화해 준다. 이런 종류의 음악은 후두엽의 알파파 활동을 증가시켜 뇌가 이완 상태가 되도록 했다. 즐거운 음악의 경우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감정 상태를 고양시켜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와 달리 슬픈 음악의 차분한 선율은 전전두엽의 감정 조절을 억제하는 효과를 냈다. 이는 부정적 감정을 키워 멀미의 불편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중국 서남대학교 유에 치종 박사는 음악을 활용해 멀미에 대처하는 방식이 약을 복용하는 기존 방법과 달리 비침습적이고 저렴하며, 개인에 맞춤해 적용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음악 완화법은 고속도로 위 승용차뿐 아니라 비행기 또는 배를 탔을 때 겪는 멀미 증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연구진들은 이번 연구의 가장 큰 한계로 표본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함께 짚었다. 이후의 연구는 더 많은 참가자를 대상으로 승용차 이외의 탈것에서 개인의 음악 취향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아직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매년 가을 귀경길을 멀미로 고생했다면 그에 앞서 버스에서 짧게 음악을 듣는 실험을 해 보면 어떨까? 기운이 빠지는 슬픈 발라드 대신 선율이 부드러운 포크송이나 발랄한 하이톤의 댄스 음악을 듣는다면 어지러운 뇌를 잠시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

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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