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D가 재팬 모빌리티쇼에서 일본 시장을 위한 경형 전기차 '라코(RACCO)'를 공개했다. 일본 자동차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경차 시장, 그것도 N-BOX와 스페이시아, 사쿠라가 지배하는 슈퍼하이트 왜건 시장에 중국 브랜드가 정면승부를 선언한 것이다. 과연 BYD는 일본 시장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BYD가 공개한 라코는 일본 경차 규격(전장 3,395mm × 전폭 1,475mm × 전고 1,800mm)에 맞춘 슈퍼하이트 왜건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양쪽 슬라이딩 도어와 4륜 디스크 브레이크다. 경차에서 4륜 디스크 브레이크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실내에는 대형 디스플레이가 장착됐고,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리튬인산철)를 탑재했다. 숏레인지와 롱레인지 두 그레이드로 구성된다. BYD는 2024년 가을 상품화 결정 이후 100대 이상의 시험차를 제작해 모든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라코 가격을 200만 엔대 중반(약 1,800만 원대)으로 예상한다. EV 보조금 활용 시 200만 엔 초반까지 가능하다. 닛산 사쿠라가 약 250만 엔, 혼다 N-ONE e:가 약 260만 엔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경쟁력이다. 또한, 발표 이후 일본 언론에서는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N-BOX나 스페이시아 같은 효자 상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BYD의 경차 EV가 국내 제조사에 '경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BYD가 공격적 가격 설정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수직 계열화다. 타이어와 유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한다. 특히 모회사가 세계 2위 배터리 제조사라는 점이 결정적이다. 자체 개발한 블레이드 배터리로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BYD가 일본 승용차 시장에 진출한 건 2023년 1월이다. 국내에도 출시된 '아토 3'를 시작으로 해치백 '돌핀(DOLPHIN)', 세단 '씰(SEAL)'을 차례로 출시했다. 그러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23년 1,446대, 2024년 2,223대로 전년 대비 54% 증가했지만, 목표 3만 대와는 큰 격차다. 2025년 1~9월은 2,899대로 월평균 약 300대 수준이다.
왜 고전하고 있을까. 첫째는 브랜드 인지도다. 일본에서 BYD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EV 버스는 7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지만, 승용차는 다른 이야기다. 둘째는 자국 브랜드 충성도다. 일본 시장에서 외산차 점유율은 10%를 밑돈다. 셋째는 일본 EV 시장 자체가 정체되어 있다. 2024년 EV 판매량은 전년 대비 33% 감소했다.
그럼에도 BYD는 포기하지 않는다. BYD는 "일본 지방에서는 경차가 그 마을의 풍경 그 자체였다"며 경차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2025년까지 판매점 100개, 연간 판매 3만 대가 목표다. 가격도 인하했다. 2025년 4월 돌핀을 363만 엔에서 286만 엔으로, 아토 3를 440만 엔대에서 418만 엔으로 낮췄다. 그 결과 20~30대 고객 방문이 늘었다고 전했다.
BYD가 경차 시장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경차는 약 40%, 연간 200만 대 가까이 팔리는 거대 시장이다. 특히 슈퍼하이트 왜건은 가장 인기 있는 카테고리다. 혼다 N-BOX는 2024년 일본 전체 신차 판매 1위였다.
그런데 이 시장에 전기차는 거의 없다. 닛산 사쿠라와 미쓰비시 eK X EV 정도가 전부다. 게다가 둘 다 해치백 스타일이고 슬라이딩 도어가 없다. 라코는 바로 이 틈새를 공략한다.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슈퍼하이트 왜건에 전기차 장점(낮은 운영비, 조용한 주행)을 결합했다.
가격도 중요하다. 일본 경차 시장은 가격 민감도가 높다. 대부분 150만~200만 엔대에 형성되어 있다. 라코가 보조금 적용 후 200만 엔 초반으로 떨어진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총 소유비용을 따지면 내연기관 경차보다 저렴해질 수 있다.
과제도 있다. 충전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에서 EV 경차를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일본 경차 소비자들이 중국 브랜드를 신뢰할지도 의문이다. 닛산 사쿠라가 초기 폭발적 인기 후 급격히 판매가 줄어든 것처럼, 초기 관심이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BYD의 도전은 일본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줄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전통 제조사가 신차 개발에 40~50개월 걸리는 데 비해, 중국 EV 제조사는 약 24개월에 실현한다"고 보도했다. BYD도 라코 개발을 2024년 9월 시작했다면 개발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
BYD의 일본 접근법은 독특하다. 단기 실적보다 장기적인 점유율 상승에 집중한다. 라코는 BYD 최초의 해외 전용 설계 모델이다. 중국 내수용을 그대로 들여온 게 아니라, 일본 규격과 취향에 맞춰 처음부터 새로 개발했다.
가격 전략도 세심하다. 초기 높은 가격으로 출시했다가 실적 부진 후 과감히 인하했다. 중국에서의 '가격 파괴' 전략을 일본에도 적용한 것이다. 2024년 BYD는 중국 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BYD 글로벌 판매의 0.05%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집착하는 이유는 상징성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3위 시장이자 토요타·닛산·혼다의 본거지다. 여기서 성공하면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올라간다. 또한 기술 검증의 장이다. 일본에서 인정받으면 다른 시장에서도 신뢰를 얻는다.
2026년 여름, 라코가 일본 도로를 달릴 때 어떤 반응이 나올까. N-BOX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길까. 한 가지 분명한 건 BYD가 일본 시장에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이 일본의 전통과 신뢰성을 넘어설 수 있을지, 그 승부의 결과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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