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셀레스틱, 르망 하이퍼카, 2026년 F1 진출까지 지금 GM의 가장 공격적인 승부수는 모두 캐딜락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다. 20세기 초 “세계 표준(The Standard of the World)”를 내걸며 미국식 럭셔리의 기준을 정의했던 그 브랜드가 2025년, GM 재도약 전략의 정중앙으로 돌아왔다.
‘세계의 표준’에서 시마론 쇼크까지
캐딜락은 한때 기술력에서 절대 강자에 가까운 존재였다. 롤스로이스의 V12 팬텀보다 앞서 V16 엔진을 양산했고, 네 단 자동변속기, 에어 서스펜션, 파워 스티어링, 에어컨, 파워 시트와 파워 윈도, 중앙 잠금장치, 자동 하향 헤드램프, 크루즈 컨트롤까지 당대 최고 사양을 한 차 안에 집약했다. 이 브랜드는 미국의 성장 신화와 과시적 소비 문화를 자동차 디자인과 기술로 구현했다.
흐름이 꺾인 시점은 1970년대다. GM은 캐딜락을 더 많이 팔리는 ‘프리미엄 상품’으로 재해석하려 했고, 그 결과물이 1982년 캐딜락 시마론이었다. 복스홀 카발리어에 엠블럼과 장식을 얹은 정도의 모델이었고, 이 차가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치명적이었다. 캐딜락이 더 이상 절대적 상징이 아니라, 대중차 플랫폼 위에 올라탄 옵션 패키지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후 GM은 캐딜락을 다시 세우기 위해 여러 실험을 반복했다. 2003년에는 C6 콜벳의 하드웨어를 활용한 2인승 스포츠카 XLR을, 2004년에는 400마력 V8을 얹은 CTS-V를 내놓았다. 2세대 CTS는 쿠페와 왜건을 더해 556마력 수퍼차저 V8, 수동변속기를 갖춘 고성능 패밀리로 확장됐다. 성능과 데이터만 보면 야심 찬 시도였지만, 이 모델들은 유럽 고성능 세단에 더 가까운 성격을 가졌다. 미국식 과장과 화려함 대신 절제와 논리가 앞섰고, 소비자가 기대하는 ‘캐딜락다움’과는 간격이 있었다.
결국 지난 수십 년간의 캐딜락은 잘 만든 차는 여럿이었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시 설명해 줄 차는 드물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드, 축소된 GM, 그리고 캐딜락의 역할
2025년 현재 캐딜락은 세단·쿠페 라인보다 SUV가 훨씬 많다. 여덟 개 이름 중 대다수가 SUV고, 그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모델은 여전히 에스컬레이드다. 픽업 기반 프레임 위에 거대한 차체를 올리고 푸시로드 V8을 얹은 이 모델은 미국식 럭셔리의 과장된 실루엣을 유지하며 브랜드의 기억을 붙들고 있다.
GM의 구조 변화는 캐딜락의 중요성을 더 키우고 있다. 다만, 북미와 중국 중심의 슬림한 그룹으로 바뀌었고, 해외 시장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름은 사실상 콜벳과 캐딜락뿐이다.
이 상황에서 캐딜락은 GM이 다시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으로 나가기 위한 출구 역할을 맡는다. 독일, 한국, 호주 등 예전의 현지 브랜드 시장에도 캐딜락이 들어가고 있고, 중동과 유럽에서는 전기 SUV·크로스오버 라인업을 알리는 앵커 브랜드로 쓰이고 있다. GM이 지역별 여러 브랜드를 운영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소수의 강력한 이름에 리소스를 집중하는 전략으로 바뀌었다. 캐딜락의 무게가 과거보다 더 무거워진 이유다.
셀레스틱: 초고가 EV로 꺼내 든 ‘21세기형 표준’
GM이 이런 전략의 최전선에 세운 차가 셀레스틱(Celestiq)이다. 차체 길이는 롤스로이스 팬텀보다 조금 짧고, 높이는 낮고, 폭은 넓다. 전동화 시대에 맞는 패스트백형 해치백 실루엣을 택해 전통적인 3박스 세단과 다른 존재감을 추구한다.
파워트레인은 듀얼 모터 구성으로 655마력, 646lb-ft의 최대 토크를 낸다. 수치만 놓고 보면 유럽·중국의 하이엔드 전기 세단·쿠페와 같은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캐딜락은 이 모델을 통해 전동화 시대에도 최고급 플래그십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생산 방식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미시간 워렌의 시설에서 숙련 인력이 약 12주 동안 한 대씩 손으로 조립하고, 연간 생산량은 300대 이하로 묶는다. 가격은 약 26만 파운드, 한화 수억 원대다. 판매량보다는 존재감이 목적에 가까운 프로젝트다.
셀레스틱은 20세기 캐딜락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는다. 대신 비율과 소재, 디지털 인터페이스, 실내 조형을 통해 “이 차를 타는 사람의 시간과 시선을 지배한다”는 옛 캐딜락식 논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 과장된 엔진 대신 압도적인 차체와 전동 파워트레인으로 힘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델이 이미 중동과 한국을 겨냥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공식 사이트에서는 셀레스틱을 중동·한국 페이지에서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롤스로이스·벤틀리가 흔한 서울 강남의 수요층을 분명한 타깃으로 설정하고 있다.
유럽 진출은 인증 비용과 극히 적은 물량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F1과 르망 활동을 발판으로 셀레스틱을 소량 들여와, 비스티크(Vistiq), 리릭(Lyriq), 옵틱(Optiq) 같은 전기 SUV·크로스오버 패밀리를 묶어 주는 헤일로로 활용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일부 고성능 전기 모델은 셀레스틱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한다. 상징 효과가 판매량보다 중요하다는 점이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잘 설명한다.
르망, F1, 전기 스포츠카… 입체적으로 짜는 부활 수순
캐딜락의 부활 프로젝트는 쇼룸이 아니라 서킷에서도 진행 중이다. FIA WEC에서 캐딜락은 V-Series.R 하이퍼카로 르망 24시 예선 프런트 로우를 차지했다. 대배기량 V8 사운드는 과거 캐딜락 대형 세단의 이미지를 레이싱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되살린다.
2026년에는 F1에도 진출한다. 앤드레티와의 합작 팀으로 그리드에 서는 계획이다. F1은 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에게 가장 강력한 글로벌 노출 무대다. 메르세데스-AMG, 페라리, 애스턴 마틴이 누리는 효과를 GM도 캐딜락을 통해 노리려 한다. 서킷에서 쌓인 노출과 이미지를 셀레스틱, 리릭, 향후 전기 스포츠카로 이어 주는 것이 큰 그림이다.
여기에 C9 전기 콜벳 아키텍처를 활용한 캐딜락 2인승 전기 스포츠카 구상도 더해진다. 디자인 모티브는 이미 V-Series.R 하이퍼카에 담겨 있다. 미국 소비자 다수가 전기 콜벳에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 GM은 전기 스포츠카를 캐딜락 이름으로 먼저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C9 플랫폼을 캐딜락에 우선 적용하면 낮은 생산량과 높은 가격 설정이 가능해 수익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이 모델의 핵심 시장은 유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인프라와 수요가 충분하고, F1·WEC 활동으로 캐딜락의 노출이 크게 늘어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XLR이 시도했던 ‘콜벳 하드웨어+캐딜락 디자인’ 조합이 전동화 시대에 다시 등장하는 셈이다. 다만 이번에는 GM이 여러 지역 브랜드를 분산 운영하지 않고, 캐딜락과 콜벳이라는 두 축에 집중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더 크다.
지금, 왜 캐딜락인가
지난 50년 동안 캐딜락은 수차례 방향을 틀었다. 시마론 시기에는 잘못된 대중화 전략이 문제였고, 이후에는 유럽 고성능 세단을 닮은 모델들이 브랜드의 뿌리를 약하게 만들었다. 에스컬레이드는 미국 내수에서 여전히 강력한 플래그십이지만, 이것만으로 글로벌 프리미엄 전략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2025년의 GM은 셀레스틱을 통해 최상위 럭셔리를, 리릭·옵틱 등 전기 SUV로 볼륨 전동화를, V-Series.R과 F1 프로젝트로 모터스포츠 이미지를, 전기 스포츠카 구상으로 미래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묶으려 한다. 이 모든 축의 중심에는 캐딜락이라는 이름이 있다.
캐딜락은 지금 GM의 유일한 럭셔리 브랜드다. 북미와 중국 밖에서 GM이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이름도 사실상 캐딜락과 콜벳뿐이다. 그래서 캐딜락의 성패는 그룹 전체의 글로벌 전략과 직결된다. 셀레스틱과 모터스포츠 프로그램, 전기 SUV·스포츠카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확보한다면, 캐딜락은 에스컬레이드 브랜드를 넘어 다시 한 번 ‘세계의 표준’을 지향하는 럭셔리 브랜드에 가까운 위치로 이동할 수 있다.
앞으로 몇 년은 캐딜락과 GM 모두에게 결정적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동화, 모터스포츠, 초고가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카가 하나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부활 시도는 과거와 결이 다르다.
지금 GM에게 캐딜락은 부담이 아니라 필수 전략 자산이다. 그래서 캐딜락은 다시 중요해졌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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