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의 매력이 한결같음이라면 펩시의 매력은 치열함이다”
펩시, 베지터, 박명수, 홍진호… 2인자의 삶은 언제나 바쁘다. 압도적인 1인자들은 언제나 변치 않는 견고한 멋짐을 보여준다. 반면 2인자들은 오직 살기 위해 따라도 해보고, 튀어보고, 망하기도 한다. 나는 그 여유 없는 치열함에서 또 다른 멋을 느끼게 된다.
사실 펩시에게는 미안했다. 마시즘에서는 코카콜라가 복숭아 맛을 냈다고 해서 도쿄에 다녀왔고, 투명한 코카콜라가 나왔다고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기 때문이다. 투명한 콜라는 물론 오이부터 팥까지 괴작으로 치자면 펩시만 한 녀석이 없다.
오늘은 코카콜라는 따라 할 수 없는 전설의 펩시들을 소개한다.
우린 20년 전에 투명화했다
크리스탈 펩시
2018년 일본에 ‘코카콜라 클리어’가 있다면, 1992년 유럽에서는 ‘크리스탈 펩시’가 있다(2016년 재판매). 크리스탈 펩시는 색깔만 투명한 게 아니었다. 펩시에서는 카페인과 색소까지 없음을 강조한 깨끗한 콜라임을 강조했다. 문제는 소비자들에게는 물 탄 콜라로 인식되었다는 게 함정. 고정관념을 뒤집으려다가 호되게 망한 펩시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문제없이 흥행에 성공한다. 역시 될놈될은 사이언스인가.
마이더스의 콜라
펩시 골드
크리스탈로 망했다면 이번에는 골드다. ‘펩시 골드’는 2006년 독일월드컵을 기념하여 만든 황금색 콜라다. 독일을 비롯한 중부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판매되었다. 스포츠에는 역시 청량음료인 것일까. 펩시 골드는 트로피를 연상시키는 모습에 큰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크리켓 월드컵과 다음 월드컵 때도 재출시를 할 수 있었다. 나름 잘 나간 녀석. 하지만 한국에 오면 ‘콤비 옐로 콜라’ 취급을 받을게 뻔하다.
여름에는 오이지
펩시 아이스 큐검버
일본은 맛의 임상시험 같은 국가다. 그 시작은 2007년에 나온 ‘펩시 아이스 큐검버(얼음 오이)’다. 여름을 맞아 시원한 풍미를 찾던 일본 펩시 경영진은 콜라에 오이향을 넣기로 한다. 본인들은 오이 풍미와 콜라의 자극이 절묘한 밸런스를 이뤘다고 하지만 마신 이들의 소감은 끔 투더 직. 오히려 출시가 되지 않은 해외에서도 홀대를 받은 일본 펩시는 관종의 맛을 깨닫게 된다.
러시아에 모든 것을 건다
펩시 아이스크림
러시아는 펩시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냉전시대 코카콜라는 러시아(소련)의 적이었기 때문이다(물론 펩시나 코카콜라나 이웃주민 같은 녀석들이지만). 때문에 냉전시대에 먼저 러시아 땅을 밟은 것도 코카콜라가 아닌 펩시였다. 그런 러시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펩시가 있다. 대표적으로 2005년 출시된 ‘펩시 아이스크림’, ‘펩시 카푸치노’ 등이다. 하지만 뭔가 나올수록 손해를 보는 기분인데.
모히또… 아니 몰디브에 가서
펩시 모히또
콜라의 자존심 따위는 코카콜라나 지켜라! 펩시는 현지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있다면 적극 어필한다. 태국에서는
퐁퐁처럼 생긴 펩시 그린을 냈고, 중국에서는 특유의 파란 디자인을 벗고 빨간색으로 무장했다. 2009년 이태리에 진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펩시 모히또’였다. 펩시 로고만 붙었다 뿐이지 탄산음료가 들어간 무알콜 모히또다.
하다 하다 재즈… 맛은 무엇?
재즈 펩시
그래도 앞에 녀석들은 이름에서 맛과 형태가 연상되었다. 하지만 2006년 미국에서 출시된 ‘재즈 펩시’는 다르다. 재즈… 맛이 뭐지? 싶다가도 밑에 붙어있는 다이어트란 문구와 체리&캐러멜 크림, 딸기&크림, 프랜치 바닐라라는 세부 맛까지 도대체 혼란하기 그지없다(다이어트에 왜 크림이야). 그렇군. 이것이 재즈의 맛인가?!
네가 재즈라면 나는 삼바다
펩시 삼바
재즈가 나오면 삼바가 빠질 수 없지. ‘펩시 삼바’는 2005년에 가을에 나온 펩시 최고의 단명 작품이다. 출생지부터 범상치 않다. 삼바의 고장 브라질이 아닌 바다 건너 호주에서 출시되었다. 화려한 색깔만큼 망고, 타마린드 등 열대과일이 잔뜩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잔뜩이 문제가 되었다. 선뜻 마시기 꺼려지는 화려한 구성에 빠르게 재고정리가 되었다.
오이의 뒤를 이은 팥맛 펩시
펩시 아즈키
펩시 얼음 오이맛을 출시하고 일본 펩시 경영진은 예상치 못한 관심에 취한 것이 분명하다. 이후 계속 펩시 관심병 에디션을 냈기 때문이다. 그중에 단연 충격적인 것은 팥맛 펩시 ‘펩시 아즈키’다. 자기들은 ‘팥의 순한 단맛과 콜라의 상쾌한 자극이 만났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이다에 비비빅을 녹인 맛. 그리고 한 일본 네티즌이 펩시 아즈키로 밥을 지어먹으면서… 펩시 괴작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된다.
겨울은 흰색이지
펩시 화이트
시원함이 장기인 콜라에게 겨울은 비수기다. 하지만 우리의 펩시는 겨울도 돌파하고 싶다. 2008년에 나온 ‘펩시 화이트’는 겨울철 차가운 콜라 민심을 잡기 위해 나온 작품이다. 본격 요구르트 맛을 내세우며 나왔지만, 향기는 밀키스 맛은 칼피스라고 한다. 하지만 나름 겨울에
마시지 않고 창가에 놔두면 운치가 있는 편(그래서 2012년에 다시 출시되었다).
관상용이라면 핑크지
펩시 핑크
이쯤 되면 펩시의 색깔들을 모두 모으고 싶다. 일본 펩시 경영진도 비슷한 생각이었을까? 2011년 ‘파티에 어울리는 모양’이라는 소개로 ‘펩시 핑크’를 출시한다. 그렇다. 이제는 대놓고 맛보다는 희귀한 색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펩시 핑크는 딸기우유 맛이다. 딸기우유와 탄산음료를 동시에 먹고 싶지는 않은데, 갖고는 싶은 마음은 무엇이지? 이것이 바로 덕후의 상술인가?
전설의 펩시 블루 넥스트
펩시 블루 하와이
2002년 야심 차게 전 세계 출시를 했지만,
워셔액이라고 욕먹었던 펩시 블루의 일본식 계승작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외면했지만 일본에서는 개그 소재로 쓰였다(말레이시아에서는 여전히 블루 펩시가 살아있다) 결국 2008년에 ‘펩시 블루 하와이’라는 한정판 펩시를 내놓게 되었다. 파인애플과 레몬이 혼합된 상큼한 맛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포장을 뜯는 순간 워…ㅅ…ㅕ
디저트의 펩시화
펩시 몽블랑
펩시는 뭐든 흡수해버리는 마인부우 같은 녀석이다. 그 목록에는 디저트도 빠질 수 없다. 2010년 프랑스의 몽블랑이라는 밤맛 디저트를 탄산화 시켜버린 ‘펩시 몽블랑’이 나왔다. 사실 몽블랑이라기보다는 그냥 밤맛. 하지만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있어 나름 사랑을 받았다. 반면 엽기적인 관심을 바랐던 일본 펩시는 시무룩.
어린왕자를 위한 펩시
펩시 바오밥
2010년 몽블랑과 함께 나온 ‘펩시 바오밥’은 대체 무슨 맛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바오밥나무는 어린왕자를 읽었다면 익히 알고 있을 거대한 나무다. 하지만 맛을 아는 사람은 없다. 어린왕자도 모를 것이다.그리고 펩시 바오밥도 모른다. 펩시 바오밥에는 바오밥나무 추출물이 없다. 맛본 이들은 사이다에 홍차를 섞어마신 후 칡덩굴을 씹는 기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엽기적인 맛으로 단련된 일본인들에게는 심심할 뿐이었다.
뜨거운 여름을 불태울
펩시 파이어
‘펩시 파이어’, 지난해 미국을 히트한 불꽃 맛 펩시다. 원래는 태국과 싱가포르에서 판매된 펩시 파이어와 펩시 아이스 중에서 파이어만 미국 진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펩시 파이어는 콜라에 계피를 섞은 것으로 화끈한 탄산 맛을 자랑한다. 한국으로 친다면 탄산화 된 수정과쯤 될까? 이 괴랄한 인기는 제법 괜찮아서 일부 세븐일레븐에서는 슬러시 형태로 판매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을 뜨겁게 불태워버린 이열치열 음료.
발버둥이 새로움이 될 때
펩시의 괴작들은 성공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은 잠깐의 이슈몰이를 하고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펩시의 실패는 새로움과 활력이라는 동력을 얻었다. 눈 감고 코카콜라와 펩시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한 이때, 둘을 가르는 것은 바로 분위기의 차이라는 것을 펩시는 알고 있다.
탄산음료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한국에서도 특별한 펩시를 만나고 싶다. 과연 무슨 펩시가 될까? 김치 맛, 파맛, 식혜… 어우 그래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