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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거 아니?]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어 낸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포드(Ford)'

2020.08.12. 13: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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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자동차란 소수의 부유층만을 위한 사치품에 불과했다. 부유층은 단조로움을 싫어했으며, 자신을 돋보이거나 재력을 과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성능과 디자인을 선택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러한 자동차의 프리미엄화는 1908년, 한 자동차 브랜드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우리는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습니다. 개인이 운전과 정비를 손쉽게 할 수 있고, 현대 기술을 총동원해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고의 성능과 재질을 겸비한 자동차를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격은, 어지간한 봉급생활자라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할 것입니다"

1908년, 자동차 브랜드 '포드(Ford)'가 새로운 모델인 'T형'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며 내세운 광고의 일부다. 해당 광고와 함께 앞으로 포드 사에서는 똑같은 모양, 똑같은 성능을 지닌 T형 모델 하나만을 생산할 것이라 선언키도 했다. 부유층과 경쟁업계의 눈총 속에서도 포드는기존의 관행을 타파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포드의 창립자 헨리 포드(Henry Ford)가 일명 '자동차의 왕'이라는 애칭을 지니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브랜드, 포드(Ford) (사진=포드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헨리 포드는 1863년, 미시건 주의 시골 마을 디어번에서 태어났다. 당시 디어번의 주민들은 모두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개발 역시 전혀 진행되지 않아 척박했다. 헨리 포드의 아버지 역시 자신이 농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헨리 포드에게도 농사일을 착실하게 배우라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헨리 포드는 농사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가 흥미를 가진 것은 공학과 발명이었다. 헨리 포드는 자명종과 같은 기계류를 보면 분해하기에 바빴으며, 이 덕분에 헨리 포드는 어릴 적부터 농사일과 사람보다는 기계와 가깝게 지내게 됐다. 어려서부터 호기심과 기계적인 재능, 그리고 집념을 보인 헨리 포드가 15세가 되었을 때는 동네 사람들의 시계를 고쳐주는 수리공으로 이름을 얻기도 했다.

청소년 시기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강요는 점차 심해졌다. 이에 헨리 포드는 디어번을 떠나 급성장하던 도시인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는 디트로이트의 작은 공장에 취직하게 됐으나, 공장의 업무 과정을 단순하게 고쳐 작업 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획안을 대뜸 제출하며 공장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에 불신을 갖게 된 헨리 포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 회사인 '에디슨 일루미네이팅 컴퍼니(Edison Illuminating Company)' 사에서 일하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입사 2년 만에 수석엔지니어로 승진한 그는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엔지니어는 중산층으로 충분한 돈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나, 그는 남는 시간과 돈을 공학 실험에 투자했다. 

헨리 포드의 첫 번째 자동차, '쿼드리사이클' (사진=포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아울러 그는 이곳에서 번 돈으로 내연기관과 자동차 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으며, 결국 1893년 12월 24일 자신의 집에서 단기통 엔진을 처음 완성했다. 이후 그가 34살이 되던 해, 그가 고안해 낸 엔진을 본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의 격려도 받게 된다.

자신이 평생 존경해 온 인물의 인정을 받은 그는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아울러 에디슨 일루미네이팅 컴퍼니에서의 경력은 훗날 자동차 개방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작업실을 마련하고 2년 여 기간 동안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1896년 6월에 첫 차를 완성했다. 이 차의 이름은 '쿼드리사이클(Quadricycle)' 즉, 네 바퀴 자전거다. 쿼드리사이클은 자전거를 동력화하는 개념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제로 사용되는 부품의 다수를 자전거에서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명실상부 엔진이 달린 자동차였으며, 2기통 엔진을 얹어 최고속도 32㎞/h로 달릴 수도 있었다.

헨리 포드의 모습 (사진=포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1899년에는 첫 번째 창업을, 이어 그해 8월에는 자동차 생산에 나섰지만 결과물은 참담했으며 결국 설립 2년 만에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두 번째 창업 역시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헨리 포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레이싱 자전거 선수였던 탐 쿠퍼(Tom Cooper)와 팀을 이룬 포드는 '999' 모델을 개발했고, 999 모델이 1902년 10월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이에 용기를 얻은 포드는 디트로이트 지역의 석탄 딜러인 알렉산더 말콤슨(Alexander Malcomson)의 지원을 얻어 '포드&말콤슨' 사를 창업했다. 포드의 3번째 도전이었다. 

이후 1903년에는 '포드 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고 중산층도 장만할 수 있는 대중적인 자동차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08년 10월에는 'T1' 모델을 공개했다. 간단한 조작과 수리하는 법 역시 쉬웠으며,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았다. 이 자동차의 가격은 825달러. 현재 가치로는 대략 2만 1000달러(한화 약 2500만 원) 정도다. 

해당 모델은 당시 생산되던 자동차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반면 가격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자동차 가격은 일반 노동자나 서민들이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해야 한다"는 포드의 철학 덕분이다. 저렴한 가격 덕분에 얼마 후에는 지구상의 자동차 100대 중 68대가 포드의 T형 모델이 될 정도로 높은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으며, 이에 1927년까지 생산되며 18년 동안 1500만 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더불어 포드는 T1을 농가에도 공급해 이 차들이 시골길을 질주하게 했다. 농부도 자동차를 몰고 이를 농사에 활용하는 '기계의 시대'를 연 것이다. 

모델 티자동차 대중화의 문을 연 포드의 모델 T (사진=포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이렇듯 그가 대량생산을 통해 적절한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은 '포드 모델T'는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헨리 포드가 단순히 저렴한 자동차의 출시로 '자동차의 왕'이 된 것은 아니다. 

그는 해당 모델을 생산하며 통합 생산라인을 구축해 1대당 12시간 가까이 걸리던 제조 사간을 1.5시간으로 줄이는 혁신을 이루어냈다. 효율 증대와 비용의 감축이 곧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헨리 포드는 1913년, 이동 조립벨트인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생산 라인을 도입했다. 이는 단숨에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냈다. 

당시의 컨베이어 벨트는 백화점 진열장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던 것이었으나, 포드는 이를 활용해 끊임없이 돌아가는 벨트의 부품에 노동자들이 일렬로 서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라인 생산 시스템을 창출해냈다.

이로써 작업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져, 1908년에는 노동자 한 사람이 연간 자동차 3대를 생산하는 꼴이었으나 1914년에는 19대를 생산할 수 있었다. 1908년에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자동차가 만들어졌는데, 1914년에는 24초당 1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T형 모델의 가격 역시 저렴해졌다. 1908년에 900달러에 달했던 T형은 1914년에는 400달러가 됐다. 

생산 비용이 줄어든 만큼 종업원의 임금도 후해졌다. 포드 사의 노동자들은 일당 5달러를 받았는데, 동종업계에 비해 두 배에 이르는 고임금이었다. 아울러 1914년에는 최저 임금 일급 5달러, 1일 8시간 노동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노동 정책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


이지원/dailypop@dailypo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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