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니우스에 대한 여러 상식
약 10여 년 전, 처음 플리니우스의 제품을 접했을 때, 나는 나름대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뉴질랜드산? 지금 장난하나? 아무리 외제가 좋기로서니, 뉴질랜드는 벽촌이나 다름없는데, 얼마나 대단한 제품을 만들겠어? 그럴 바에야 양질의 국산을 사는 편이 낫지. 암.
물론 오디오계에서 국적에 대한 편견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아무래도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덴마크 등 이른바 선진국에서 기라성 같은 브랜드를 다수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로지 제품의 퀄리티와 완성도만을 따진다면, 플리니우스는 여러분을 단단히 한 방 먹일 것이다. 이 부분은 자신한다. 나 또한 오랜 기간 9200SE와 101SE를 써봤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여기서 잠깐 플리니우스의 의미부터 보자. 인물로 보면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대 플리니우스와 그의 조카 소 플리니우스가 유명하다. 전자는 자연 과학자이며 저술가로 황제의 친구이기도 했다. <박물지>라는 엄청난 저작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백과사전의 시조 격인 책이다.
따라서 플리니우스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완성되다, 풍부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브랜드가 자신의 제품에 대한 얼마나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나 충분히 파악이 되지 않는가?
하우통가를 만나다.
사실 이번에 소개할 하우통가는 개인적으로 구면이다. 그간 여러 번 리뷰를 한 적이 있는데, 실은 이 제품을 통해 플리니우스를 강력하게 의식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관을 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다. 별다른 코스메틱 없이 볼륨 노브와 셀렉터 푸쉬 버튼 몇 개가 전부다. 그러나 전면과 옆면을 단단한 알루미늄으로 처리한 부분은 꽤 믿음직스럽다. 디자인에 사치를 부리지 않는 대신, 알찬 설계와 내용을 자랑하는 타입인 것이다. 무게도 꽤 나가서 무려 14Kg이나 한다. 인티 앰프치고는 상당한 중량이라 할 수 있다.
현행 플리니우스의 라인업을 보면, 프리, 파워, 소스기 그리고 인티 정도로 나뉜다. 꽤 다양한 품목을 제공하고 있는데, 최근에 보니 소스기쪽을 많이 개선했다. 일단 한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마우리 CDP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토코(Toko)라는 모델로 대치되었다.
이 토코라는 제품은, CD가 들어가 있으면 CDP로 작동하고, CD를 빼면 네트웍 플레이어가 된다. 매우 편리한 방식이다. CDP 자체는 마우리를 거의 그대로 이식한 가운데 네트웍 플레이어의 기능을 더한 포름이다. 언제고 기회가 되면 꼭 들어보고 싶다.
사실 일전에 마우리를 리뷰하면서 깜짝 놀란 것은, 뒷면에 오로지 아날로그 아웃단만 있다는 점이다. RCA와 XLR 한 조씩만 달려 있다. 그밖에 아무런 디지털 입출력 단자가 없다. 그래도 그 전신인 101SE의 경우, 디지털 동축 아웃단이 하나 있어서 일종의 트랜스포트로도 활용할 수 있었는데, 마우리는 그마저 없앴다.
당연히 SACD도 안된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와도 인연이 없다. 그냥 CD 온리다. 레드 북 CD만 들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풍부한 뉘앙스와 깊은 아날로그의 향기는 전혀 다른 부가 기능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그래, CD만 듣자. 어차피 CD 들으려고 사지 않았냐? 오히려 사용자의 목표 의식을 되묻게 만드는 제품이었다. 그런 과감한 제품 철학에 오히려 공감하고 말았다.
쓸 데 없는 부가 기능을 없애라.
이번에 다시 만난 하우통가도 마찬가지. 요즘 인티 앰프의 경향과 정말로 무관하다. 사실 요즘 트렌드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DAC의 장착. 특히, TV와 연계성이 중요시되어 디지털 입력은 필수가 되었다. 또 하나는 블루투스 내지는 와이파이의 제공. 따라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음원으로 해서 편리하게 제품을 사용하도록 만든다.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본 기에는 이런 기능이 하나도 없다. 그냥 순수한 아날로그 인티인 것이다. 요즘 시대에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발상이고, 마우리 CD와 함께 일종의 뚜렷한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오디오를 운영하다 보면, 제품의 컨셉을 확실히 하고, 그 기능을 되도록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돈카츠를 먹고 싶으면 돈카츠를 잘하는 집에 가면 되고, 물만두가 먹고 싶으면 그 전문점에 가면 된다. 같은 위치다.
물론 별도의 DAC를 구매하거나, 네트웍 플레이어를 사야 하는 등 추가 부담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로지 음질만을 추구한다고 하면, 원래의 기능에 충실한 제품이 좋다. 그게 또 오디오 파일의 자존심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 정도 클래스의 제품을 사용해보면, 문제가 하나 있다. 굳이 분리형이 탐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대형기를 운용하면 모를까, 일반적인 수준의 스피커를 운영한다고 하면, 이 정도 인티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맛볼 수 있다. 그 이상은 과욕이다.
참고로 하우통가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꽤 통용되는 성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의 김씨, 박씨, 이씨에 비교할 정도는 못되지만 꽤 발견할 수 있단다. 원래 마우리 어인 만큼 영어로 번역하면 “South Wind”가 된다.
그야말로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이라고나 할까? 뉴질랜드는 수려한 풍광이 유명하고, 온천이나 멋진 계곡이 많다. <반지의 제왕>의 무대라고 생각하면, 본 기가 갖는 이국적인 느낌 또한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뜻을 알고 나니 더욱 관심이 간다.
간단한 스펙 둘러보기
본 기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인티다. 따라서 포노단의 장착은 필수. 당연히 본 기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성능이 꽤 뛰어나다. MM은 물론 고출력 MC까지 커버한다. 요즘 LP 르네상스 시대고, 저렴하면서 성능이 좋은 턴테이블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 CD 일색이던 음반 가게들이 서둘러 LP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LP를 하지 않으면, 촌스럽다고 구박받을 정도다. 실제로 용산 전자랜드 본관에 오면 다양한 LP를 구매할 수 있다. 아날로그가 일종의 힐링 역할을 하는 요즘 상황을 보면, 본 기의 포노단은 상당히 요긴해 보인다.
하우통가는 일종의 내력을 갖고 있다. 전신을 보면, 8200과 920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출력이 조금씩 올라가서 현재는 8오옴에 200W를 낸다. 정말 양호한 출력이다. 어지간한 떼쟁이 스피커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제품을 차고 넘치도록 구동한다.
원래 플리니우스는 클래스 A 제품의 설계로 유명하고, 분리형 제품에는 그런 컨셉의 파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본 기와 같은 클래스 AB 방식에도 특유의 청량감과 고품위한 음색이 잘 살아있다. 따라서 굳이 클래스 A에 대한 동경을 품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그만큼 매력적인 음질을 갖고 있다.
전면 패널은 실버와 블랙 두 가지가 제공된다. 디자인 컨셉을 볼 때 실버가 더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나는 아직 블랙 패널을 보지는 못했다. 외지에서 사진으로만 봤는데, 좀 무뚝뚝하다고나 할까? 나보고 선택하라면 당연히 실버다.
한편 뒷면은 너무나 청아한 푸른색 마감이 되어 있다. 이 색깔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어느 평론가는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를 지적하고 있다. 즉, 여기서 만든 레이싱 카의 색깔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르노 레이싱 블루 정도로 표현해도 될 듯싶다. 아무튼 상당히 눈길을 끄는 컬러고, 감춰져 있기 때문에 더 매력이 있다.
본 기에는 무려 5개의 RCA 입력(포노단 포함)이 돋보이고, XLR도 한 조 제공된다. RCA는 WBT 사의 제품을 썼고, XLR은 뉴트릭제다. 모두 정평 있는 제조사의 단자이므로, 이 부분에서 역시 고급 제품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프리 아웃 단도 눈길을 끈다. 이를 통해 다른 파워를 연결할 수 있다는 뜻인데, 역으로 생각하면 본 기의 프리 단도 상당히 충실하게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많은 인티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프리단의 유무다. 아무리 출력이 높고, 덩치가 커도 프리단이 생략되거나 간략하게 처리되면 음질에 한계가 있다. 하긴 그래야 분리형으로 올라올 것 아닌가? 따라서 인티의 생명은 출력이 아닌 프리단에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점에서 본 기는 높은 신뢰감을 갖게 한다.
라인 아웃단도 눈여겨볼 대목. 이를 통해 레코딩 장비를 연결하거나, 해드폰 앰프를 매칭할 수도 있다. 서브 우퍼의 사용도 전제할 수 있다.
요즘 인티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스위치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라운드 리프트다. 이것은 섀시 자체를 어스 처리하는 것으로, 그라운드 루프나 험을 예방하는 데에 유리하다.
내부 배선재도 알차게 처리했다. 인풋 스테이지에는 오릭(Auric)사의 OFC 선을 사용했고, 출력단에는 오디오 퀘스트의 X2를 투입했다. 스피커 단자와 맞물리는 지역이라, 이런 고급 선재의 투입은 여러모로 음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과연 프로가 만든 제품답다.
시청평
사실 엄청난 기능과 신기술로 무장한 요즘 인티 앰프에 비하면, 정말 본 기 하우통가는 단촐하기 짝이 없다. 단품 요리를 잘하는 맛집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꾸준하게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음질. 그렇다. 결국 소리로 말한다. 잡다한 기능을 다 치워버리고 오로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함으로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제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스피커는 바워스 & 윌킨스의 802 D3, 소스기는 린의 클라이맥스 DS를 각각 동원했다.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반 클라이번(피아노)
- 드보르작〈교향곡 9번 2악장〉이반 피셔(지휘)
- 아트 페퍼〈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 다비치〈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van cliburn -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첫 트랙 라흐마니노프. 전작 9200SE와 비교하면, 출력면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실제로 스피커를 구동하는 능력이나 전체적인 질감이 상당히 좋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인티로 802 D3를 제대로 장악하기는 쉽지 않다. 파워도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퀄러티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확실히 양호한 재생이 나온다. 그렇다고 너무 매끈하거나, 지나치게 인위적이지 않다. 각 악기의 음색이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투명하고, 말끔한 느낌이다. 또 해상도와 다이내믹 레인지가 출중해서, 상당한 클래스의 분리형을 접하는 기분이다. 브라스의 두께, 저역의 에너지, 널찍한 사운드 스테이지 등 여러모로 만족스런 재생이 이뤄지고 있다.
Ivan Fischer - 2. Largo
Dvorak: Symphonies Nos. 8 & 9
두 번째 트랙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악장이다. 우수에 찬 분위기로 진행되며, 민속 음악의 테마를 차용한 점도 특기할 부분. 부다페스트 관현악단은 차분하면서 섬세하게 악상을 풀어 가는데, 상당히 내용이 좋다. 바이올린군의 위태로운 트레몰로나 우아하게 출몰하는 각종 혼 악기들의 울림 그리고 저 멀리 백업하는 첼로와 베이스의 리드미컬한 저역 등, 여러 요소들이 멋진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Art Pepper -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Art Pepper Meets The Rhythm Section
이어서 재즈로 가본다. 단연 활기가 넘친다. 왼쪽을 점한 페퍼와 오른쪽을 점한 리듬 섹션. 정말로 열기가 충만한 재생이다. 때론 맞서 싸우고, 때론 화합한다. 절로 발 장단이 나온다. 4비트의 미디엄 템포. 테마를 쉽게 풀어서 술술 불어대는 페퍼의 능숙한 테크닉은 절로 탄성이 나오며, 더블 베이스의 존재감도 각별하다. 마치 별도의 채널을 준 듯한 생동감과 어택이 나온다. 이런 음을 듣고 있으면, 언젠가는 본 기를 손에 넣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Davichi -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Love Delight
마지막으로 다비치의 노래. 이런 시스템으로 다비치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워낙 좋아하는 듀엣이라, 역시 듣는 맛이 있다. 특히, 헬신이라 불리는 이 해리의 당찬 보컬은 여기서도 명료하게 감지된다. 고역에서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결코 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면서 자연스럽다. 전자 악기의 홍수로 인한 부담이 좀 있지만, 그마저도 아날로그 사운드로 듣는 듯 멋진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음악이던 마치 LP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연출한다. 상당한 내공이며, 제품을 만들 때마다 더욱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결론
요즘 인티 앰프 시장이 다기능으로 무장해서 많은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제품의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기능이 필요한 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나 오로지 음질 위주, 퀄러티 위주로 생각한다면 본 기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한동안 분리형에 대한 욕망을 지워버릴 만큼 높은 레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종학(Johnny Lee)
Specification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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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 200 watts RMS per channel into 8 ohms. 280 watts RMS per channel into 4 ohms. Both channels driven from 20Hz to 20kHz at less than 0.2% total harmonic distortion |
Frequency response | 20Hz to 20kHz ±0.2dB -3dB at 5Hz and -3dB at 70kHz |
Distortion | Typically <0.05% THD at rated power 0.2% THD and IM worst case prior to clipping |
Current output | 40A short duration peak per channel Fuse protected |
Slew rate | 50V/µs |
Hum & Noise | 90dB below rated output 20Hz to 20kHz unweighted |
Input impedence | 47k ohms all inputs Phono adjustable to 47k ohms, 470 ohms, 100 ohms,47 ohms, 22 ohms |
Rated pre out level | 1.5V RMS into 47k ohms or higher |
Pre out source impedence | Typically 1.5k ohms |
Pre out minimum recommended load | 47k ohms |
Line out level | 190mV at 200 ohms |
Gain | Line inputs to speaker out: 40dB Phono Input To Pre-Out: 66dB on high gain, 60dB on low gain |
Power/current consumption | 600W 0.4A (92W) Class AB Idle 0.14A (32W) Standby |
Dimensions | Height: 120mm (4 3/4") Width: 450mm (17 3/4") Depth: 400mm (15 3/4") Weight: 14kg (30l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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