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에게 ‘쌀’은 생명과도 같다. 요즘은 쌀을 대체할 다양한 곡물이 존재한다지만 우리의 주식(主食)은 여전히 쌀밥이다. 삼겹살이나 닭갈비를 배부르게 먹은 뒤에도 꼭 밥으로 마무리해야 비로소 식사가 끝난 듯한 만족감을 느낄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 세 끼 쌀밥을 먹는 사람들 중, 과연 그 밥이 어떤 품종의 쌀로 지어진 것인지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쌀의 품종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팬데믹 시기 즈음,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던 위스키가 생각난다. 이전까지만 해도 발렌타인이나 조니워커처럼 여러 증류소의 원액을 섞어 최고의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블렌디드 위스키가 주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증류소의 원액만을 사용한 ‘싱글 몰트 위스키’가 대세가 되었다. 각 증류소가 지닌 고유한 향과 개성을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이제 우리 밥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는 여러 품종의 쌀을 섞은 혼합미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단일 품종 쌀로 밥을 지어 그 품종만의 고유한 맛과 향, 그리고 특유의 식감을 즐기려는 소비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에 본 기사에서는 국내에서 재배되는 대표 쌀 품종 일곱 가지를 선정해 감칠맛, 식감, 향, 내구성, 보존성 다섯 항목을 기준으로 평가했다. 맛과 향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영역이므로 가능한 한 개인의 취향이 개입되지 않도록 객관적 기준을 세우고자 했다. 특히 일관된 데이터 기반 비교를 위해 ChatGPT, Google Gemini, Microsoft Copilot 등 세 가지 인공지능 서비스를 활용해 쌀 품질을 다각도로 분석, 평가했다.
신동진 <개발 연도: 1999년 / 주산지 : 전라북도>

우리나라에서 재배 면적이 가장 넓은 품종, 신동진을 먼저 소개한다. 전라북도를 대표하던 신동진은 국내 주요 쌀 품종 중에서도 쌀알이 가장 크고, 단백질 함량이 약 7.6%로 높은 편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쌀의 단백질 함량은 밥의 질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을수록 찰기가 줄어들어, 같은 양의 물로 밥을 지어도 다른 품종보다 고슬고슬한 밥이 완성된다. 이 덕분에 신동진은 찰진 밥보다 탄탄한 식감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특히 사랑받는다.

▲ 임실농협 2025 햅쌀 진주닮은쌀 신동진 보통등급 20kg<59,000원>
또한 AI 분석 결과, 신동진은 ‘보존성’과 ‘내구성’ 항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는 곧 ‘식은 밥도 맛있는 쌀’이라는 뜻이다. 요즘처럼 1인 가구나 소가족이 많은 시대에는 밥을 한 번에 많이 지어 냉장, 냉동 보관 후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경우가 흔하다. 신동진은 이런 상황에서도 밥알이 쉽게 퍼지거나 흐트러지지 않아, 데워 먹어도 밥맛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 즉, 신동진은 크고 단단한 알갱이, 고슬한 질감, 뛰어난 저장 안정성을 두루 갖춘, 말 그대로 ‘한국형 밥맛의 기준점’이라 할 만한 품종이다.
종합해보면, 신동진은 밥알이 쉽게 뭉개지지 않고 형태를 단단히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고슬밥용 품종이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볶음밥, 비빔밥, 덮밥, 초밥 등 다양한 요리의 베이스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골든퀸<개발 연도 : 불명 / 주산지 : 경기도 화성 등>

국내 프리미엄 단일 품종 쌀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골든퀸이다. 이름부터 고급스러운 이 품종은 실제로 밥맛과 향, 그리고 고유한 풍미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향미(香米) 쌀’로 꾸준히 판매량을 늘리며, “향으로 기억되는 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별칭만큼이나 향에 대해서는 다른 품종을 압도할 정도다. 일단 밥을 지을 때부터 구수한 누룽지 향이 깜짝 놀랄 정도로 온 집안에 가득차게 된다. 다 지은 밥에서도 상당히 강한 누룽지 향을 느낄 수 있다.

▲ 햇살드리 2025 햅쌀 수향미 상등급 10kg<38,254원>
AI 기반 분석에서도 골든퀸은 감칠맛과 향 부문에서 최고점을 기록했다. 씹을수록 단맛이 살아나며, 반찬이 없어도 밥 자체의 풍미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밥알이 자연스럽게 뭉치며 숟가락질할 때 흐트러지지 않아 식감이 좋고, 갓 지은 밥의 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찰기가 높은 만큼 냉장·냉동 보관 시 밥알이 다소 퍼질 수 있어, 장기간 보관보다는 갓 지어 먹는 밥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결국 골든퀸은 밥 한 숟갈로 향과 감칠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감성형 프리미엄 쌀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신동진이 일상 밥상의 표준이자 실용성을 대표한다면, 골든퀸은 밥 자체로도 ‘요리’가 되는 품종이라는 것이다. “향으로 기억되는 쌀”, 그것이 바로 골든퀸이다.
새청무<개발 연도 : 2015년 / 주산지 : 전라남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쌀 품종 중 하나가 바로 새청무다. 이름 그대로 ‘새롭고 푸르다’는 뜻을 가진 이 품종은, 기존 대표 품종이었던 신동진의 뒤를 잇는 차세대 주력 쌀로 개발되었다. 단단함과 밸런스를 자랑하던 신동진의 장점을 계승하면서도, 병해충 저항성과 재배 안정성, 그리고 밥맛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 새청무의 핵심이다.

▲ 함평농협 2025 햅쌀 우렁색시미 20kg<63,910원>
외관적으로는 쌀알의 크기와 형태가 신동진과 유사하지만, 질감 면에서는 약간 더 부드럽다. 신동진이 단단하고 고슬한 식감을 가진 반면, 새청무는 조금 더 찰기 있고 매끄러운 식감을 지녔다. 이는 단백질 함량이 신동진보다 낮고, 아밀로스 함량이 적절하게 조정된 덕분이다. 밥을 지었을 때 입안에 감기는 촉촉함과 윤기 있는 밥결이 인상적이며, 씹을수록 고소한 단맛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AI 기반 품질 평가에서도 새청무는 ‘감칠맛’과 ‘식감’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밸런스형 품종으로 나타났다. 밥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 반찬의 맛을 잘 살려주는 조화형 밥으로 평가된다. 반면 향의 개성은 골든퀸보다는 약하지만, 대신 깔끔하고 정갈한 밥향이 특징이다. ‘개성이 강한 쌀’보다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삼광<개발 연도 : 2003년 / 주산지 : 전국 고르게 생산>

삼광은 국내 쌀 품종의 중 가장 밸런스가 잘 잡힌 품종이다. 골든퀸처럼 화려한 개성으로 미식가의 눈길을 사로잡기보다는, 매일 먹는 밥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려 한국 밥상의 품격을 조용히 지켜온 쌀이다. 마치 고가의 와인의 파워풀한 향기보다는 데일리 와인, 반주용으로 먹는 중저가형 와인의 균형잡인 향과 맛이라
고나 할까? 그런 밸런스를 삼광은 2003년 이래 계속 지켜오고 있다.

▲ 강화군농협 2025 햅쌀 강화섬 삼광 10kg<35,610원>
삼광의 미질은 5.7% 수준의 단백질 함량에서 잘 표현된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단백질 함량으로 고슬밥과 진밥의 딱 중간,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식감을 자랑한다. 또한, 신동진 못지않은 보존성과 내구성을 바탕으로 식은 상태로도 충분히 맛을 지켜내며 다양한 메뉴에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특별히 튀는 개성 없이 '모든 요리에 잘 어울리는 쌀'이라는 삼광의 범용성은 소비자에게 구입 후 실패가 없는 평균적인 품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모자름이 없다. 매일매일 밥상에 올리는 밥의 재료로서의 목적을 가장 안정적으로 달성해주는 쌀 품종이다.
백진주<개발 연도 : 불명 / 주산지 : 경북 안동>

아마 이번 기사에서 소개할 품종 중 백진주만큼 뚜렷한 개성을 지닌 쌀은 드물 것이다. 이름처럼 쌀알이 맑고 뽀얀 진주알을 닮았으며, 외형만큼이나 밥맛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일반 멥쌀과는 다른, 극단적인 찰기와 풍미에서 백진주의 진가가 빛난다.
백진주의 핵심은 바로 아밀로스 함량이다. 쌀 전분의 주요 구성 성분 중 하나인 아밀로스는 함량이 낮을수록 찰기가 강해지고, 높을수록 고슬한 밥이 된다. 백진주의 아밀로스 함량은 약 9.1%로, 일반 멥쌀의 평균치(약 18%)의 절반 수준이다. 덕분에 밥을 지었을 때 밥알끼리 자연스럽게 달라붙으며, 마치 찹쌀을 섞은 듯한 쫀득쫀득한 식감을 자랑한다. 이러한 점성이 강한 밥에서는 자연스럽게 단맛과 감칠맛이 살아나 독특한 풍미를 완성한다.

▲ 안동농협 2025 햅쌀 밥이 다르다 백진주쌀 20kg<84,400원>
또한 찰기가 높은 쌀의 장점인 보존성도 우수하다. 밥을 짓고 시간이 지나도 전분의 노화(노화에 따른 딱딱함)가 느리게 진행되어 부드러움이 오래 유지된다. 물론 고슬한 밥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식감일 수 있으나, 바로 그 극단적인 개성이 백진주만의 매력이다. 이 독특한 풍미 덕분에 오늘날 백진주는 경상북도 안동을 대표하는 특산미이자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프리미엄 쌀로 자리 잡고 있다. 단, 내구성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쌀알이 잘 부서지는 경향이 있어 구입시 참고하자.
오대쌀<개발 연도 : 1982년 / 주산지 : 강원도 평창, 정선, 철원 등 고랭지>

오대쌀은 쌀 시장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1982년부터 한결같은 개성을 지켜온 장수 품종이다. 특히 강원도 철원평야의 맑은 물과 큰 일교차라는 천혜의 환경에서 자라, 밥맛의 깊이와 조직의 치밀함이라는 북방계 쌀 특유의 단단한 성질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참고로 철원평야는 후삼국 시대 궁예가 도읍으로 삼았을 만큼 비옥한 토양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 동송농협 2025 햅쌀 철원 오대쌀 상등급 20kg<73,240원>
오대쌀은 밥을 지었을 때 신동진처럼 고슬고슬하지는 않지만, 일반 쌀 대비 밥알이 단단하고 찰기가 지나치지 않은 식감을 선사한다. 이 단단함은 밥맛을 진하고 구수하게 만들어주며, 잘 부서지지 않아 대부분의 오대쌀 등급이 높은 특징에 기인한다. 보존성도 신동진 못지않게 뛰어나 밥이 식었을 때 수분 손실이 적고 전분 노화가 느리다. 하여 갓지은 밥도 좋지만, 전기 밥솥으로 밥을 많이 해놓은 다음 냉장, 냉동 보관을 해도 괜찮은 쌀이다.
오대쌀은 신동진과 삼광이 가진 여러 균형잡힌 특징을 연평균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서 재배되도록 개발된 품종이므로 밥맛이 더 진하고 구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품종인만큼 그동안 꾸준히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아 재배면적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포인트다.
고시히카리<개발 연도 : 외래품종 / 주산지 : 전국 각지(경기도 이천, 김포)>

고시히카리는 일본에서 개발되어 현재는 한국의 경기 이천과 김포 등지에서도 성공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품종으로, 국제적으로 ‘밥맛의 기준’으로 통용된다. 화려하게 튀는 개성보다는 모든 요소에서 균형 잡힌 완성도를 보여주는 ‘황금 밸런스형 쌀’로, 미식가들의 꾸준한 찬사를 받아온 스테디셀러다.

▲ 평택안중농협 2025 햅쌀 슈퍼오닝 고시히카리 특등급 10kg<40,440원>
고시히카리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외관의 우수성이다. 쌀알이 맑고 투명하며, 도정 후에도 광택이 뛰어나 밥을 지었을 때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밥알이 균일하고 깨끗해 밥상에 올렸을 때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이는 고시히카리의 단백질 함량이 약 6.0% 내외로 낮게 유지되어, 쌀 내부 조직이 촘촘하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낮은 단백질 함량은 밥의 부드러움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 씹을수록 매끈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고시히카리는 은은한 단맛 속에 감칠맛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입안에 깊이 퍼지는 풍미를 선사한다. 이런 특성 덕분에 초밥이나 덮밥처럼 밥알의 상태와 맛이 요리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일식 요리에서 가장 선호되는 품종으로 꼽힌다.
주식(主食)에서 미식(美食)으로 승화된 쌀밥

▲ AI generated image @Google Gemini 2.5 Flash
쌀밥은 이제 단순한 주식(主食)이 아니라, 미식(美食)의 시작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치 위스키나 와인처럼, 재료인 쌀의 품종과 그 고유한 개성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혼합미가 시장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단일 품종 쌀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홍보와 경험의 기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각 품종이 지닌 독보적인 맛과 향, 식감은 이미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한식의 근간이자 세계인이 즐기는 K-푸드의 핵심 재료로 성장할 잠재력이 크다.
나아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법(Scotch Whisky Act), 이탈리아의 D.O.C.G, 프랑스의 AOC/AOP처럼 단일 품종 쌀의 생산과 유통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한국 쌀은 한층 높은 신뢰와 브랜드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각 지역의 기후와 토양, 수질을 반영한 특산 품종을 육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와이너리의 ‘떼루아(Terroir)’처럼 구획화된 지역 원산지 체계를 구축한다면, 쌀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또 하나의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 다룬 품종 외에도 해들, 진상, 알찬미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쌀들이 존재한다. 다음 번 쌀을 구입할 때는 잠시 멈춰, ‘단일 품종’이라는 이름표를 가진 쌀을 선택해보자. 오늘 저녁은 흰쌀밥에 고깃국이다.
기획, 편집, 글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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