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I generated image @Google Gemini 2.5 Flash
솔직히, 30년 넘게 PC를 다뤄왔어도 메인보드 칩셋의 넘버링 체계는 여전히 헷갈릴 때가 많다. 하물며 PC 초보자들에게는 이 세계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질 것이다. 가뜩이나 CPU와 그래픽카드 모델명도 복잡한데, 메인보드까지 관심법으로 골라야 하니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 없다. 물론 메인보드 세계에도 비싼 게 좋은 것이라는 자본주의의 진리가 통한다.

▲ 140만 원에 육박하는 최고급형 메인보드 ASUS ROG CROSSHAIR X870E EXTREME<1,368,910원>
하지만 인강 듣고 웹서핑 정도만 하는데, 메인보드 하나에 100만 원 가까운 최고급형을 사는 건 낭비다. 뭔가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데, 다행히도 제조사들은 이런 소비자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칩셋 넘버링에 나름의 규칙을 부여해왔다. 수포자들에게는 여전히 암호 해독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매직아이를 들여다보듯 차근차근 살펴보면 어느새 메인보드의 세계가 한층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 자! 천천히 메인보드 칩셋 넘버링의 비밀을 풀어보자.
선행 학습 : 메인보드 칩셋 넘버링의 규칙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메인보드 칩셋 넘버링의 가장 큰 전제를 숙지하고 넘어가자. 메인보드 칩셋 넘버링은 [시리즈(알파벳)] + [세대/성능(숫자)] + [세부 등급(숫자)]로 이루어진다.

▲ 대전제만 이해하면 복잡한 칩셋 넘버링 암호를 '읽을' 수는 있게 된다!
예를 들어 AMD X870에서 ‘X’는 익스트림(Extreme), 즉 최상위 라인업을 의미한다. 숫자 ‘8’은 Zen 5 아키텍처, 즉 라이젠 8000 시리즈를 지원하는 세대를 가리키며, 마지막 ‘70’은 시리즈 내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임을 나타낸다. 반대로 Intel B760의 경우, ‘B’는 메인스트림(Mainstream), 즉 보급형 라인업을 뜻한다. 숫자 ‘7’은 13세대(랩터 레이크)와 14세대(랩터 레이크 리프레시) CPU를 위한 세대 번호이고, ‘60’은 그 시리즈 내에서 중간 등급의 기능을 제공함을 의미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가장 앞에 오는 알파벳은 메인보드의 등급과 포지션을 나타낸다. AMD와 인텔 모두 기본적으로 하이엔드–중급–보급형의 3단계 구조를 갖는다.
AMD 메인보드 칩셋 등급
X 시리즈: 최상위 라인업으로, 고성능 CPU와 짝을 이루는 하이엔드 보드다. 전원부, 확장성, 부가기능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사양의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B 시리즈: 메인스트림급으로, X 시리즈보다는 단가를 낮추되 대부분의 핵심 기능을 적정 수준으로 갖춘 중급형 메인보드다. 주로 일반 게이머나 중급 사용자에게 적합하다.
A 시리즈: 보급형 칩셋으로, 인강·웹서핑·오피스용 등 일반 사용자를 위한 가성비 중심의 제품군이다.
인텔 메인보드 칩셋 등급
Z 시리즈: 인텔의 하이엔드 칩셋으로, K 시리즈 CPU의 오버클럭을 완벽 지원한다. 최상급 전원부와 다양한 확장 기능을 갖춰 하이엔드 게이머 및 전문가용으로 설계되었다.
B 시리즈: 중급형 메인보드로, 합리적인 가격에 주요 기능을 제공한다. AMD의 ‘B’와 넘버링이 겹쳐 혼동될 수 있는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 AMD는 차세대 칩셋을 B8xx 시리즈로 명명해 Intel B7xx 시리즈와의 중복을 피했다. 즉, ‘B8xx’면 AMD, ‘B7xx’면 인텔이라 보면 된다.
H 시리즈: 인텔의 보급형 칩셋으로, 오버클럭 기능은 없지만 사무용·인강용·일반 게이밍용 등 가성비 중심 시스템에 적합하다.
상급 메인보드가 좋은 점 # 1 / 세밀한 오버클럭 feat. VRM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상위 등급 메인보드는 뭐가 좋아서 가격이 비싼걸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오버클럭 지원 범위와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다. 등급이 낮은 칩셋일수록 CPU나 메모리의 오버클럭 기능이 제한되며, 특히 인텔의 B·H 칩셋은 CPU 오버클럭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둔 경우가 많다.

[동작 클럭수(Clock)] = [베이스 클럭)] X [배수(Muliplier)]
CPU의 속도와 성능을 가늠하는 1차 기준인 동작 클럭(Clock Speed)은 위과 같은 방식으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CPU의 베이스 클럭이 100MHz이고, 배수(Multiplier)가 50이라면 100MHz × 50 = 5,000MHz, 즉 5.0GHz가 된다. 고급형 메인보드는 이 배수 값을 BIOS 설정이나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훨씬 세밀한 단위로 조정할 수 있다. 솔직히 오버클럭을 즐겨하지 않는 필자 입장에서도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긴 하다.

▲ 14+2+1 듀얼 레일 디지털 전원부를 제공하는 MSI MAG X870E 토마호크 WIFI<488,990원>
핵심은 이 과정을 얼마나 안정적이고 편하게 진행하며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느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위 등급 메인보드일수록 VRM(Voltage Regulator Module, 전압 조정 모듈)의 품질이 높고, 전원부 페이즈(Phase) 수도 더 많다. 보통 보급형 보드는 6~8페이즈 수준이지만, 최상위급 보드는 20페이즈 이상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정교한 전력 공급 시스템을 갖춘 메인보드는 앞서 언급한 배수 오버클럭뿐만 아니라, CPU에 공급되는 전압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전압 오버클럭’까지 가능하다. 정리하자면, 초보자나 라이트 유저에게는 크게 체감되지 않지만, 이러한 하드코어한 기능의 유무가 메인보드 등급을 나누는 결정적인 기준이라 하겠다.
상급 메인보드가 좋은 점 # 2 / 고속 인터페이스 제공

▲ GIGABYTE X870E AORUS MASTER X3D ICE 제이씨현<783,650원>
더불어 확장성과 대역폭의 차이 역시 메인보드 등급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픽카드나 M.2 SSD를 연결하는 PCIe 인터페이스의 최신 버전은 5.0으로, 이전 세대인 Gen4 대비 최대 두 배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당연히 고급형 메인보드는 PCIe 5.0을 지원하지만, 보급형 제품은 여전히 4.0 이하로 제한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진 속 기가바이트 X870E 메인보드의 슬롯은 PCIe 5.0 규격을 지원한다. 다만 그래픽카드 슬롯이 여러 개인 경우, 일반적으로 맨 위 슬롯이 PCIe 5.0 x16 레인, 아래쪽 슬롯이 PCIe 5.0 x8 레인으로 작동하므로 그래픽카드는 가능한 한 최상단 슬롯에 장착하는 것이 좋다.
M.2 슬롯 역시 PCIe 5.0 x4 레인으로 작동하며, PCIe 5.0의 한 레인은 약 4GB/s의 전송 속도를 제공한다. 즉, x4 레인 구조는 이론상 최대 16GB/s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낸다는 뜻이다. 이런 고속 대역폭은 RTX 5080·5090급 그래픽카드나 초고속 M.2 SSD를 사용하는 하이엔드 유저들에게 특히 매력적인 요소지만, 일반 유저들에게는 과유불급인 요소라 오히려 메인보드 가격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자신이 맞추려는 PC의 스펙에 가장 적절한 등급의 메인보드를 찾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 ASRock X870E Nova WiFi 대원씨티에스<482,580원>
또한 I/O 포트 구성에서도 USB4 포트나 썬더볼트 3 포트를 제공하는 것은 고급형 메인보드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USB4는 썬더볼트 3 기술을 기반으로 통합된 최신 USB 규격으로, 최대 40Gbps의 대역폭을 지원한다. 이는 이전 세대인 USB 3.2 Gen 2x2(20Gbps)보다 두 배 빠른 전송 속도다. 이처럼 높은 대역폭 덕분에 USB 포트의 역할은 단순한 파일 전송을 넘어,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출력이나 고속 충전 등으로 확장된다. 특히 상위급 메인보드의 경우 USB4 포트가 3~4개까지 탑재되어 있는 경우도 많아, 다양한 주변기기와의 연결성 및 활용 범위가 크게 넓어진다. 이 역시 고급, 중급, 보급형에서 제공하는 옵션이 다르므로 자신의 용도에 맞게 잘 선택하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
상급 메인보드가 좋은 점 # 3 / 고급형 LAN, 사운드 칩셋 내장

▲ ASUS ROG STRIX Z890-E GAMING WIFI STCOM<738,050원>
마지막으로 살펴볼 부분은 멀티미디어 및 특수 기능의 차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네트워크(LAN) 기능이다. 이름 그대로 속도는 빠를수록 좋다. 물론 네트워크 속도는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의 가입 상품이나 통신 모뎀 등 인프라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만, 최종적인 체감 속도는 메인보드에 탑재된 LAN 칩셋의 성능에 따라 좌우된다. 최근에는 유선 LAN 대신 Wi-Fi 7을 내장한 메인보드가 중·고급형 제품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무선 네트워크 통합 추세는 편의성 향상과 더불어 제품 가격 상승의 주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고속 네트워크 환경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CPU나 그래픽카드뿐 아니라 메인보드의 네트워크 칩셋 사양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운드 칩셋 역시 메인보드 등급을 가르는 숨은 요소 중 하나다. 예전에는 별도의 사운드 카드를 장착해야 고음질 출력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사운드 칩셋이 메인보드에 온보드(내장) 형태로 통합되면서 그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었다. 게다가 음향에 민감한 사용자층이 한정되어 있어, 점차 마니아적인 영역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급형 메인보드에서는 여전히 이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계한다. 저가형 리얼텍(Realtek) 칩셋 대신, 최대 32비트 / 384kHz 고해상도 오디오를 지원하는 SupremeFX나 ESS Sabre(ES 계열) 칩셋을 탑재해, 게임·영화 감상·음악 재생 등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뚜렷한 사운드 차이를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추천하는 기능이지만, 리얼텍 저가형 사운드 칩셋도 어느 정도 소리를 내는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과유불급,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면 낭비!

▲ AI generated image @Google Gemini 2.5 Flash
결론적으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는 말처럼, 자신이 PC로 하는 작업이 그렇게 높은 과부하가 없음에도 무조건 비싼 것을 찾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무조건 저가형만 찾아보면 언젠간 PC 구입을 후회할 날이 오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용도에 맞게 적절하고 합리적으로 메인보드 칩셋을 잘 골라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하지 않을 터.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장착하고자 하는 그래픽 카드, M.2 SSD 등의 최대 성능을 잘 숙지하고 메인보드 칩셋의 등급을 파악해 쓸데없이 PC 견적이 올라가지 않게 신경쓰는 방법 밖에 없다. 메인보드는 PC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품이니 부디 잘 선택해 즐거운 PC 생활을 하길 바란다.
기획, 편집, 글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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