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김영우 기자] 매우 유명한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의 주요 사업 영역 중 상당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를테면 영국의 '롤스로이스'는 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유명하지만 이 회사의 주력 사업은 항공기용 엔진이다. 일본의 '소니' 역시 전자제품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회사는 금융업과 보험업을 통해 실질적인 수익을 올린다. 특정 분야에서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나머지, 그 회사의 본질이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경우다. 특히 외국계 기업 중에서 이런 사례가 많다.

국내에서 각종 전동공구 및 자동차 부품 브랜드로 잘 알려진 독일 기업인 ‘보쉬(BOSCH)’ 역시 그런 경우다. 이 회사는 1886년에 처음 설립된 이후, 자동차 부품, 차량정비, 전동공구, 주방기구, 무기, 의료기구, 통신, 마이크로 센서, 에너지, 그리고 생활가전 제품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보쉬가 보유한 정밀기계 관련 기술의 수준이 높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보쉬가 100년 넘게 사업을 영위하는 동안 일부 분야에서는 철수하기도 했고, 진출 당시와는 전개 방향이 달라진 사업 영역도 있다. 하지만 2020년 현재도 보쉬는 모빌리티 솔루션, 산업 기술, 소비재 기술, 그리고 에너지 및 빌딩 기술에 이르는 다수의 제품과 서비스를 팔고 있다. 특히 생활가전 분야의 경우 보쉬는 유럽을 대표하는 전자제품 제조그룹인 'BSH 홈 어플라이언스'에 속해 있으며, 여기에는 보쉬 외에 'GAGGENAU(가게나우)', 'SIEMENS (지멘스)' 등의 브랜드도 포함된다. 특히 가게나우는 고급형 빌트인 생활가전 제품 브랜드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가전 제조사 그룹인 'BSH 홈 어플라이언스' 산하의 브랜드들>
한국과의 인연도 의외로 깊다. 보쉬는 1985년에 서울에 처음 사무소를 설립한 이후 30여년 동안 기술 연구소 및 생산 공장을 비롯한 8개의 사업장을 세웠으며 5개의 법인을 보유하고 국내 고용 직원도 2,000여명에 이른다. 한국에선 전동공구 및 자동차 부품 브랜드로 유명하지만 2018년부터는 생활가전 제품 사업도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보쉬가 한국 시장에 선보인 생활가전 제품은 세탁기, 냉장고, 의류건조기, 식기세척기, 전기레인지(인덕션, 하이라이트), 전기오븐, 커피머신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한국 생활가전 시장은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해외 가전제품 브랜드가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제품의 디자인이나 기능이 국내 실정에 맞지 않거나 사후지원이 미흡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보쉬의 한국 법인이나 보쉬 생활가전 제품을 국내에 유통하고 있는 화인어프라이언스 역시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보쉬는 다른 생활가전 브랜드와는 살짝 다른 방향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일단은 제품 차별화다. 이를테면 작년 9월에 출시한 ‘비타프레시 플러스’ 냉장고의 경우, 과일과 채소 등의 신선식품 보관에 최적화된 특수한 제품으로, 특별 서랍 실링과 약 0℃의 낮은 온도 설정, 습도 조절 기능 등을 통해 음식물 폐기율을 낮추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작년 5월에 출시한 '지오라이트' 식기세척기의 경우는 제올라이트 광물질을 활용해 불순물 제거와 탈취, 제습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내세웠으며, 8월에 선보인 드럼 세탁기 3종은 유럽알러지연구센터에서 공식 인증한 유일한 프로그램인 '알러지 플러스' 기능을 통해 알러지 걱정을 없앴다는 점을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같은 계열사인 가게나우의 제품과 유사하게 실내 인테리어와의 조화를 강조하는 빌트인(Built-in) 형식의 제품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건설사와 협력, 이들이 건축한 고급 아파트나 주상복합, 빌라에 빌트인 제품을 공급하는 마케팅도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보쉬의 생활 가전 모델 중에는 빌트인 형태의 제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쉬 브랜드의 생활가전 제품은 국내 일반 소비자들에게 낯선 존재다. 전동공구나 자동차 부품 브랜드로서의 보쉬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브랜드의 냉장고나 세탁기 등을 사는데 어색함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다. 기존의 높은 브랜드 인지도가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는 데 오히려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한 사례도 적지는 않다. 이를테면 '캐논'은 본래 카메라 제조사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프린터 시장에도 진출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야마하' 역시 악기 제조사로 시작해 유명해졌지만 이후 모터사이클, 골프클럽, 양궁 등 악가와 거의 관계가 없을 듯한 분야에서도 성공한 바 있다.
이들은 다른 분야에서 얻은 기존의 인지도에 안주하지 않고 진지하게 제품의 품질 및 서비스로 승부했으며, 결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보쉬의 국내 생활가전시장 진출 성공 여부 역시 이러한 정공법을 얼마나 잘 구사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