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의 용량은 5년 사용 후 평균 80% 이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전기차(EV) 핵심인 배터리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일반적인 내연기관차의 경우 주행 여건, 관리 상태에 따라 수십 년, 수백만km의 누적 주행이 가능하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장 주행 기록은 1966년식 볼보 P1800S로 무려 약 500만km 이상을 주행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의 기록을 넘어서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배터리’의 수명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 전기차는 약 15~20년, 주행 거리 기준으로는 약 30만~50만km로 대다수 전문가들이 추산한다.
문제는 모든 전기차가 예상 수명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전기차 1만 대 이상의 실제 운행 데이터를 분석한 ’지오탭(Geotab)’에 따르면, 최근 EV 배터리는 평균적으로 연간 1.8% 수준의 용량 감소율로 5년이 지나면 90% 이상의 성능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부 모델은 전기차 배터리의 용량이 70%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용량이 70% 수준으로 떨어지면 충전 속도와 방전 효율 모두 악화해 일상 운행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수 천만 원대 비용을 들여 배터리를 교체하지 않는 한 전기차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중고차로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주요 모델별 배터리 성능 유지율 비교
테슬라 모델 S와 닛산 리프의 1년~5년간 배터리 용량의 추이. (지오텝)
지오탭에 따르면 EV 배터리는 출고 시 100%를 기준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5년 경과 시점에서 85~94% 수준의 SOH(State of Health)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OH(State of Health)는 전기차(EV) 배터리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로 출고 당시(신품 상태) 대비 얼마나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백분율(%)로 표현한 값이다.
지오텝의 SOH 조사 결과 아우디 e-트론의 배터리 용량은 5년 후 94%를 유지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재규어 I-PACE와 폭스바겐 ID.4가 92.5%, 테슬라 모델 3 LR과 포드 마하-E는 각각 90.5%와 91.5%로 평균 이상의 성능을 유지했다.
반면 공랭식 배터리를 사용했던 닛산 리프(2011년), 미쓰비시 i-미브(2011년) 등은 5년 뒤 74~78% 수준으로 폐기해야 할 수준의 낮은 유지율을 보였다. 70%대를 기록한 르노 조에(2013년), 스마트 EQ(2014년) 등도 같은 방식이다.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는 ‘열’과 ‘충전 방식’
DCFC(급속충전)보다는 AC 레벨의 저속 또는 완속 충전으로 배터리 용량을 20~80% 범위내에서 유지하는 것이 배터리 효율성을 가장 길게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토헤럴드 DB)
지오텝은 전기차 배터리 수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열’을 지목하고 있다. 기후별 분석에 따르면, 고온 지역에서 운행된 차량은 온화한 기후의 차량보다 최대 5% 이상 빠르게 성능이 저하됐다.
배터리는 고온에서 화학 반응이 가속되며 열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액체 냉각(Liquid Cooling) 방식이 공랭식보다 훨씬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5년식 테슬라 모델 S는 액체 냉각, 같은 연식의 닛산 리프는 공랭식을 사용하는데 5년 후 SOH 차이는 약 10%에 달했다.
또한 DC 급속충전 사용 빈도도 성능 저하에 밀접한 영향을 줬다. 월 3회 이상 DCFC(급속충전)를 사용한 차량은 그렇지 않은 차량에 비해 5년 기준 6~7% 더 낮은 SOH를 기록했다. 반면, 일반적인 AC 레벨 2 충전(가정용 또는 공공 완속충전)은 상대적으로 배터리 열화를 덜 유발했고 레벨 1(콘센트 충전)과의 성능 차이는 미미했다.
배터리 보호 기술과 운용 습관이 수명 좌우
전기차 배터리는 주행 거리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각각 2만 km, 8000km를 주행한 전기차의 배터리 의 SOH 차이는 0.25% 수준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점은 차량 사용량(주행 거리) 자체는 배터리 열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간 2만km 이상을 운행한 차량과 8000km 이하의 저사용 차량의 SOH 차이는 불과 0.25% 수준으로 오히려 일정 수준 이상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배터리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EV 배터리 시스템에는 보호 버퍼(Buffer) 기능이 적용돼 있다. 상단과 하단에 여유 용량을 둬서 충전 시 100% 또는 방전 시 0%까지 도달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으며, 이로 인해 실제 사용 가능한 SOC(State of Charge) 범위는 이론적 용량보다 좁지만, 그만큼 배터리 수명이 길어진다. 일부 모델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 버퍼를 조정하거나 사용자가 충전 한계를 설정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배터리 효율성을 최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팁
전기차는 가능한 더운 환경을 피해 주차하고 주기적으로 운행하는 한편, 완속 충전으로 20~80% 용량을 유지해야 한다.
EV 배터리를 오래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첫째, 가능한 서늘한 환경에서 보관하고 운행하는 것이 좋다. 둘째, 충전 시에는 20~80% SOC 범위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셋째, 급속충전보다는 레벨 2 충전을 중심으로 계획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차량을 주기적으로 운행해 충전 사이클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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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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