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강형석 기자]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Robotics) 기술이 우리나라 산업 지형을 바꿨다. 미국 국제무역청이 2024년 공개한 자료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1012대 로봇이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 평균 대비 6배 이상 높은 수치다. 로봇 혁신 및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는 2030년까지 공공 및 민간부문에 22억 4000만 달러(약 3조 1451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제4차 지능형 로봇 기본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술 전환의 시대에 서울시와 서울경제진흥원(이하 SBA)은 ‘로봇 친화 도시’ 도약을 목표로 힘을 모았다. 2025년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코엑스에서 ‘2025 서울AI로봇쇼’를 개최한 것이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의 로봇산업 육성 정책과 산업 생태계를 알리는 첫 번째 무대가 될 전망이다.

‘당신의 곁에, 당신의 삶 속에(On my side, ROBOT)’라는 주제로 열린 2025 서울AI로봇쇼는 로봇이 공장, 연구실이 아닌 일상 공간으로 진입하는 현실을 담는 데 힘썼다. 로봇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간과 기계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함이다. 이 외에 국내 기업과 인재들이 로봇 기술력을 선보이고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김현우 SBA 대표이사는 “서울AI로봇쇼는 단순한 전시가 아닌 시민 경험, 산업, 투자 연계 등을 아우르는 ‘로봇 친화 도시 서울’로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라며 “산업과 시민, 정책이 만나 서울이 글로벌 로봇산업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로봇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프로그램 마련
2025 서울AI로봇쇼는 기술 전시 외에도 웨어러블 로봇 챌린지, 로봇팔 체험, 로봇 초상화 서비스, 바둑 대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즐거움을 제공한다.
먼저 웨어러블 로봇 챌린지는 근력 보조 로봇을 착용하고 무거운 박스를 들어올리는 미션이다. 초대손님으로 피트니스 유튜버 '말왕'이 참가해 시민과 근력 대결을 펼쳤다. 희극인 이승윤도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정밀 로봇팔로 체험 가능한 바늘귀 꿰기도 눈에 띈다. 로봇팔로 바늘귀를 꿰는 데 성공하면 바느질 키트를 선물로 받는다. 인공지능 바둑 로봇과 오목 대결도 진행된다. 사족 보행 로봇 경주는 클로봇, 케이알엠, 오픈패스로보틱스, 영인로보틱스, 딥로보틱스 등 기업이 참가해 장애물 코스를 질주한다. 시민은 미니 레이스에 참여 가능하다.
아티스트 로봇 초상화 서비스는 로봇이 직접 방문객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인공지능 고민 상담, 인생네컷 서비스도 2025 서울AI로봇쇼의 즐길 거리다.
휴머노이드 로봇 스포츠 대회도 열린다. 국제로봇스포츠연맹(FIRA)과 협력해 개최되는 이 대회에는 총 22개 팀이 참가해 양궁, 단거리 달리기, 역도, 한국 전통 놀이인 비석치기 등 4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룬다. 각 종목은 로봇의 기술적 과제를 제시한다. 양궁은 정밀한 제어와 안정성, 단거리 달리기는 균형 감각과 속도, 역도는 구동력과 제어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참가팀들은 로봇의 종합적인 성능을 세계 무대에서 입증하게 된다.

극한로봇 경진대회는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함께 준비했다. 행사에 참여한 10개 팀은 험지 주행, 장애물 통과, 화재 진압, 인명 구조 등 실제 재난 상황을 가정한 4개 코스에서 실전 임무를 수행하며 기술력을 경쟁한다. 현장에 가까운 환경을 구현해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평가받는다.
로봇 전문가 포럼, 비즈니스-투자자 밋업 등 업계 대상 행사도 진행된다. 로봇 전문가 포럼은 로봇 기술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다. ▲데니스 홍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 ▲김상배 MIT 기계공학과 교수 ▲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김익재 KIST 인공지능ㆍ로봇연구소 소장 ▲최리군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 상무 등이 강연에 나선다.
비즈니스-투자자 밋업은 25개 로봇 기업과 11개 투자사를 연결해주는 투자 상담 행사다. 로봇 기업들은 다음 성장을 위한 기회이자 투자자에게는 유망 로봇 기업을 조기 발굴할 기회가 될 전망이다.
국내외 로봇 기술을 한 눈에
2025 서울AI로봇쇼에서 주목할 곳은 '극한로봇(Extreme Robots)' 전시관이다. 재난 현장, 심해, 우주 등 예측 불가능하고 혹독한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지능형 로봇 기술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극한 환경에서 활약하는 로봇 기술을 한 눈에 파악 가능하다.

무인탐사연구소는 달 탐사 장비 로버, 포스텍은 심해 탐사 로봇 사이클롭스와 히어로-블루 등을 전시했다. 현대 로템은 소방청과 함께 개발한 무인 소방로봇을 공개했다. 다목적 무인차량 HR-셰르파를 바탕으로 화재 진압 장비를 탑재했다. 2024년에 시제품을 제작해 성능 시연을 진행했고 2025년 중 소방로봇 4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이 외에 디든로보틱스는 조선소, 철강 교량, 정유 공장 등 철 구조물 환경에서 사용하는 로봇인 디든(Diden)30을 공개했다.

우리나라 로봇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전시 공간도 마련됐다. 전시는 반응형 미디어 아트, 시대별 로봇 전시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된다. 반응형 미디어 아트는 관람객이 화면에 다가가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개발된 휴머노이드들이 순서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시대별 로봇 전시 공간은 국내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미와 제니보부터 최근 개발된 에이미 등 다양한 로봇으로 꾸며졌다. 연구기관 중심으로 개발된 로봇이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준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도 제공된다. 소피아에게 질문을 던지면 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2025 서울AI로봇쇼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구글, 엔젤로보틱스, 영인로보틱스 등 국내외 로봇 관련 기업들이 대거 참가했다. 휴머노이드, 사족보행 로봇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참여 기업 중에는 실생활에 유용한 로봇 기술을 선보인 곳도 많았다. 2025 서울AI로봇쇼에 참가한 로봇 스타트업 중에서 흥미로운 기술을 선보인 곳을 소개한다.
로봇이 고기를 이븐하게 구워준다 – 비욘드허니컴 ‘그릴 X(Grill X)’
2025 서울AI로봇쇼에 참가한 비욘드허니컴(Beyond Honeycomb)은 인공지능 기반 그릴링 로봇 '그릴X(Grill X)'를 공개했다. 그릴X는 인간의 주관적인 감각과 경험에 의존하던 그릴(구이) 요리를 혁신하는 장비다. 이소정 비욘드허니컴 매니저는 “그릴 X는 전문 셰프들의 조리 데이터 50만 건을 학습한 인공지능 모델이 탑재되어, 고기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최적의 굽기를 자동으로 수행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릴 X는 불 감지 센서와 식재료 감지 센서를 탑재해 고기 표면의 마이야르 반응, 탄화 정도, 익힘 상태 등을 정밀하게 측정한다. 불꽃이 갑자기 치솟거나 기름이 튀는 상황이 발생하면 로봇팔이 즉각 높이를 조절해 안전하게 조리를 진행한다. 불 감지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화재 위험을 예방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주목할 부분은 지능형 조리 분석 시스템이다. 기존 조리 기기들이 시간과 온도만으로 작동한다면 그릴 X는 실제 상황을 인식하고 대응한다. 고기 두께와 종류에 따라 구이 방법을 다르게 적용하는 능력을 갖췄다. 비욘드허니컴은 측정 센서부터 인공지능 모델, 로봇 제어 시스템 등 모든 핵심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그릴 X의 장점은 육즙 손실과 지방 분포를 최적화해 고기 맛을 유지하고 일정한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대중적인 육류 외에 생선, 장어, 양갈비 등 다루기 까다로운 식재료까지 폭넓게 조리 가능하다. 이 때문에 그릴 X는 국내 70개 브랜드 매장의 러브콜을 받았다. 초기엔 렌탈 모델로만 운영했으나, 1년간 시장 피드백을 받아 36개월 장기 대여와 구매 옵션을 추가했다.

생산성도 뛰어나다. 이소정 매니저는 “조리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삼겹살 같은 고기는 시간당 80인분 조리가 가능합니다. 주방 운영 효율성 개선 외에도 서비스 품질 향상, 메뉴 개발 등 부가가치가 높은 활동에 집중하도록 도와줍니다”라고 말했다. 비욘드허니컴은 서울AI로봇쇼 전시를 통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산업 현장 근로자의 업무 효율을 혁신하다 – 에프알티로보틱스 ‘스텝업 네오’
2025 서울AI로봇쇼에 참가한 에프알티로보틱스(FRT Robotics)는 산업현장에 최적화된 웨어러블 로봇 ‘스텝업 네오(StepUp Neo)’를 공개했다. 스텝업 네오는 허리 근력 보조 웨어러블 로봇으로 배터리나 모터 없이 순수 기계 구조로 작동한다. 권혁진 에프알티로보틱스 영업팀 과장은 “스텝업 네오의 핵심 기술은 고탄성 스프링입니다. 사용자가 허리를 숙여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스프링의 복원력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면서 허리 부담을 최대 45%까지 줄여줍니다”라고 말했다.
스텝업 네오의 작용 원리는 헬스장 운동기구와 유사하다는 게 권혁진 과장의 설명이다.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무게를 움직이게 해 운동 효과를 내는 것이다.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약한 허리 근육이 받는 부하를 튼튼한 다리 근육으로 분산시키는 구조다.

스텝업 네오는 물건을 들 때 허리로 집중되는 무게를 다리로 전달해 부상 위험이 높은 허리를 보호하고 강한 다리 근육을 활용하도록 돕는다. 어깨 보조 방식은 어깨 부담을 엉덩이로 분산시켜 마치 옆에서 누군가 팔을 받쳐주는 듯한 효과를 낸다.
스텝업 네오의 무게는 2.7kg으로 이전 세대 제품의 4.5kg 대비 40% 가벼워졌다. 무게는 줄었지만 사용자 체형에 맞춰 착용이 가능한 가변형 설계로 편의성은 개선됐다.
에프알티로보틱스는 산림청, 발전소, 군부대 등 현장에서 쓰는 특수 장비나 작업복에 맞춘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로 건설 현장용 장비는 안전 고리, 하네스 등을 통합 설계해 현장 투입이 즉시 가능하도록 제작한다.

에프알티로보틱스는 보행 보조 분야에도 진출했다. 보행 보조 로봇은 모터, 배터리, 자세 측정 센서 등을 탑재해 사용자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필요시 동력을 제공한다. 평지에서는 자연스러운 보행을 유지하다가 오르막길에 오르면 센서가 행동을 인식하고 자동으로 허벅지를 밀어준다. 권혁진 과장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사용자 자세와 보행 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보조력을 제공합니다. 필요할 때만 작동하는 에너지 효율적 설계를 채택해 1시간 충전으로 8시간 이상 사용 가능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에프알티로보틱스는 서울AI로봇쇼를 통해 웨어러블 로봇을 적극 알릴 예정이다. 행사에 방문한 바이어들과의 만남을 통해 맞춤형 설루션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