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함 속에 움튼 튀르키예의 역사를 따라갔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문명
튀르키예 내륙을 달리다 보면, 버려진 듯한 벌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황무지는 바로 아나톨리아(Anatolia). 튀르키예 국토 면적의 약 97%를 차지하는 이곳은 해발 800~1,200m의 높은 지대에 자리한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튀르키예의 국토 면적은 78만3,562km2로, 대한민국의 약 7배에 달한다. 아나톨리아는 이동 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외부와의 교류가 쉽지 않았다. 여름에는 심각하게 덥고 건조했으며, 겨울에는 영하 수십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환경이 예부터 사람의 정착을 막았다.
지리적·기후적 특성이 이처럼 워낙 혹독해서 생명이란 생명은 키워 내지도, 뿌리내리지도 못했을 것 같은 곳.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척박한 대지는 인류사의 수많은 문명이 피어난 터전이다. 히타이트, 로마, 오스만 제국 등 세계사를 장식한 제국들이 이곳에서 생겨났다. 세계의 수많은 고고학자가 연구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천국 그 자체다. 그래서 튀르키예는 ‘문명의 용광로, 고고학의 보고, 살아 있는 야외 박물관’이라 불린다. 버려진 땅에서도 결국 살아낸 이들의 흔적이 문명이 되었고, 지금의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유적이 됐다.
하늘과 땅속으로 파고든 삶
튀르키예 내륙을 달리다 보면, 버려진 듯한 벌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황무지는 바로 아나톨리아(Anatolia). 튀르키예 국토 면적의 약 97%를 차지하는 이곳은 해발 800~1,200m의 높은 지대에 자리한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튀르키예의 국토 면적은 78만3,562km2로, 대한민국의 약 7배에 달한다. 아나톨리아는 이동 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외부와의 교류가 쉽지 않았다. 여름에는 심각하게 덥고 건조했으며, 겨울에는 영하 수십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환경이 예부터 사람의 정착을 막았다.
지리적·기후적 특성이 이처럼 워낙 혹독해서 생명이란 생명은 키워 내지도, 뿌리내리지도 못했을 것 같은 곳.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척박한 대지는 인류사의 수많은 문명이 피어난 터전이다. 히타이트, 로마, 오스만 제국 등 세계사를 장식한 제국들이 이곳에서 생겨났다. 세계의 수많은 고고학자가 연구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천국 그 자체다. 그래서 튀르키예는 ‘문명의 용광로, 고고학의 보고, 살아 있는 야외 박물관’이라 불린다. 버려진 땅에서도 결국 살아낸 이들의 흔적이 문명이 되었고, 지금의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유적이 됐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여행자가 특히 많이 찾는 곳은 열기구 투어로 알려진 ‘카파도키아(Cappadocia)’다. 이곳에서 열기구를 띄우는 회사만 27여 개. 드넓은 하늘에 수많은 열기구가 방울방울 떠 있는 아름다운 장관을 보고 싶다면, 부지런함은 필수다. 기류가 안정적인 새벽에만 그 광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해가 떠오를 때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어두운 새벽, 커다란 등불처럼 열기구들이 하나둘 떠오르는 모습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하루의 시작을 누리게 한다. 오전 시간에 평균 160여 개의 열기구가 떠오르는데, 6개는 챠트(Cat)에서, 154개는 괴레메(Goreme)에서 떠오른다. 조금 더 고즈넉하게 풍광을 감상하고 싶다면 챠트에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열기구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싶다면 괴레메에서의 탑승을 추천한다.
카파도키아가 이처럼 열기구 투어로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지형’에 있다.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모인 괴레메처럼 기암괴석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광활하다. 척박한 대지였기에 농작물을 재배해 쉽게 배를 불릴 수 있는 땅은 아니었지만, 현대의 튀르키예인들은 이곳이 사람을 부르는 경관을 가진 땅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카파도키아를 이루고 있는 이 암석들은 그런 겉모습 외에도 숨겨진 이면을 갖고 있다. 일대를 이루는 암석의 특징이 일반적인 특징과는 달랐던 것. 이 지역은 에르지예스(Erciyes) 화산의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암석, 응회암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단해 보이는 응회암은 손으로도 쉽게 깎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지금의 튀르키예 사람들이 이 척박한 땅 위로 열기구를 띄웠듯, 과거에도 이 땅을 이용해 살아 낸 이들이 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 종교 박해를 피해 옛 사람들은 응회암 지대를 파서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숨을 수 있는 땅이 되어 준 셈이다. 카이막클리 지하 도시(Kaymakli Underground City)는 8층 깊이의 응회암 지하 도시다. 좁은 통로와 굴로 이어져 있으며, 방과 주방, 와인 저장고, 교회, 환풍구까지 갖춘 생활 공간이었다. 지상으로 도망칠 수 없던 이들은 땅속에 머물며 생존을 택했고, 척박한 땅은 오히려 그들을 품어 주었다.
같은 시기, 기독교인들은 괴레메의 암벽 안을 파서 교회를 만들었다. 외부의 시선을 피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 안에는 비잔틴 미술을 알 수 있는 성화도 그려 넣었다. 그렇게 생겨난 바위 교회는 카파도키아에 1,000여 개에 달한다. 어둡고 차가운 바위굴 속이 그들에게 신의 품이자, 안식처가 되어 줬다. 1985년, 괴레메는 그 놀라운 모습과 종교에 대한 집념 덕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붉은 흙이 만든 튀르키예의 얼굴
아나톨리아 고원을 대표하는 산이 에르지예스 화산이라면, 강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긴 강 ‘크즐으르막(Kizlirmak)’이다. 붉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여, ‘붉은 강’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강 유역의 흙이 붉은빛을 띠어 물도 그렇게 보이는 것. 예전부터 이곳에서는 점토를 쉽게 채취할 수 있었고, 아바노스(Avanos)와 같은 강 주변 도시는 이 붉은 흙을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어 왔다. 식기로도 널리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지역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러한 점토를 구워 지붕 기와를 만들었기에, 대부분의 튀르키예 전통 가옥의 지붕이 붉은빛을 띤다. 붉은 강이 흐르고, 그 강에서 난 흙으로 식기를 만들며, 집 위로 붉은 지붕을 얹었으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튀르키예는 붉디붉다.
특히 해가 뜨고 질 때 온 세상이 붉게 물드는 튀르키예의 절경은 특히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에 자리한 수도 ‘앙카라(Ankara)’에서 한눈에 담기 좋다. 앙카라 시내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는 앙카라 성(Ankara Castle)과 아느트카비르(Anitkabir)가 대표적이다. 두 곳 모두 앙카라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할 장소이기도 하다. 앙카라 성은 시계탑이 있는 성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가는 길 또한 붉은 풍경이 이어진다. 전통 가옥 형태의 상점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 튀르키예식 커피와 음식을 파는 가게는 물론, 나자르본주(Nazar Boncuğu)* 등 현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기념품도 가득하다.
*푸른 유리로 만든 눈 모양 장식품으로 악마의 눈이라고도 불린다. 튀르키예에서 재앙을 물리치는 부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아느트카비르는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운 인물이자 튀르키예 국민이 아버지로 존경하는 초대 지도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여기서 아타튀르크는 본명이 아니라, 그가 초대 대통령이 된 후 국회에서 특별히 부여한 이름이다. 튀르키예어로 ‘아타(Ata)’는 ‘아버지’, ‘튀르크(Türk)’는 ‘튀르키예’를 뜻하므로, ‘튀르키예 국민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가 얼마나 추앙받는지는 아느트카비르 방문객 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국내외 방문객이 한 달 평균 20만 명이 넘는다(2025년 기준). 또한 튀르키예를 여행할 때 가장 많이 만나는 얼굴이기도 하다. 가정집에서부터 거리와 공항까지 그의 사진이 걸리지 않은 곳이 없다.
아느트카비르는 아타튀르크의 무덤이 있는 명예의 전당, 그의 생애를 소개하는 박물관과 영상관, 그리고 명예의 전당 맞은편에 자리한 2대 대통령 이스메트 이뇌뉘(ismet inonu)의 무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방문객이 예를 갖추고 천천히 걸어 들어올 수 있도록, 정문에서 기념비로 이어지는 길의 타일은 각각 5cm 간격으로 띄엄띄엄 놓여 있다. 앙카라 시내의 전경은 이스메트 이뇌뉘 무덤 뒤편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이 부지는 아느트카비르가 세워지기 전까지 앙카라의 중앙 고지대, 즉 ‘전망 언덕(Rasattepe)’으로 불리며, 전망대로 유명했다고 한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잡은 제국
앙카라에서 마지막으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면,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탄생한 문명들을 한번에 만날 수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Anadolu Medeniyetleri Muzesi)’이다. 이곳은 아느트카비르에 잠든 튀르키예 공화국의 건국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881년 화재로 버려진 건물을 복원해 박물관으로 만든 곳이다. 1943년 개관 이후, 아나톨리아 각지에서 발굴된 수많은 문명 유물과 특히 ‘히타이트(Hittites)’의 유물을 가장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다.
히타이트는 세계사를 수강했다면 한 번쯤 들어 봤을 이름이다. 철과 구리를 사용한 인류 최초의 민족 중 하나이자, 기록상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을 맺은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히타이트 제국의 전성기는 기원전 12세기부터 5세기까지, 청동기 시대 후반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기였다. 그들은 현재 초룸 주 보아즈칼레 인근의 하투샤(Hattusha)를 수도로 삼았다. 농사에 불리한 척박한 환경, 겨울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이들은 그 땅에 정착했고, 수천년에 걸쳐 문명을 쌓아 올렸다.
당시 왕은 권력을 드러내기 위해 20km 떨어진 곳에서 대리석을 운반해 성벽을 세웠다. 도시의 경계에는 세계 최초의 아치형 성문을 만들고, 당시의 기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사자 조각상을 세워 두기도 했다. 또한 30여 개의 신전과 창고, 지하 터널을 건설했으며, 제의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과 건축물의 터가 지금도 하투샤의 들판에 남아 있다.
히타이트의 흔적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초룸 보아즈칼레 박물관(Bogazkoy Muzesi)으로 향하길 권한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와 주요 사건, 발굴 과정이 한눈에 펼쳐진다. 보아즈칼레 박물관은 히타이트 문명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히타이트의 쐐기문자 점토판, 신들을 새긴 부조와 토기, 그리고 실제 발굴 당시의 사진과 모형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특히 히타이트의 신들과 왕이 새겨진 부조는 당시 사회의 종교적 세계관과 정치 구조를 동시에 보여 준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하투샤 유적의 석조 문양을 재현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가 맞닿은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아나톨리아 고원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 곳이 아니라, 자연과 타협하며 살아낸 땅이다.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돌에 교회를 세우고, 도시를 만들며, 붉은 흙으로 지붕을 올린 사람들. 튀르키예의 땅은 그들에게 생존 방법을 가르쳤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사진 남현솔 기자 취재협조 터키항공(Turkish Airlines), 튀르키예문화관광부(Turkish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Go Türkiy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