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 바디(Woodie)’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미국 포드사의 모델 A(1929). 차체 대부분을 목재로 만들었다. (출처 St. Louis Car Museum)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나무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친숙한 재료였다. 불을 피우고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고 심지어는 악기를 만들 때도 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구이 요리를 완성하는데 빠질 수 없는 소재도 나무를 태우고 남은 '숯'이다.
그런데 요즘 과학자들은 이 나무를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고 있다. “나무로 강철만큼 단단한 물질을 만들 수 있을까?” 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가 자동차 산업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초기 자동차에서 나무는 매우 중요한 구조 재료로 쓰였다. 대부분 자동차가 지금처럼 금속 뼈대가 아니라 마차 제작 기술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차체 프레임은 참나무, 물푸레나무, 너도밤나무 같은 단단한 목재가 쓰였고 차 문짝, 대시보드, 휠, 내부 구조물도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환경에 대한 이슈가 등장하면서 자동차는 바이오 기반 소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옥수수, 사탕수수, 해조류 등에서 얻은 식물성 성분(PLA, PHA 등) 으로 만든 플라스틱, 나무나 식물 잔재를 태워 만든 탄소 소재, 버섯균사체를 이용한 가죽 대체재, 콩기름·옥수수유 등에서 만든 생분해성 폼까지 다양한 바이오 기반 소재가 자동차에 실제 사용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나무를 고온에서 태워 만든 ‘바이오차(Biochar)’라는 물질을 자세히 살펴봤다. 바이오차는 쉽게 말해 나무를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천천히 태운 뒤 남은 탄소 덩어리다.
평소에는 농업용 흙 개량제나 탄소 저장 용도로 쓰이지만 최근 BCHAX(2025)에 실린 한 논문에서는 이 바이오차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측정하고 자동차의 강철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산소를 차단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바이오차가 강도와 구조를 동시에 갖춘 친환경 탄소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오토헤럴드 DB)
소나무 바이오차의 주사전자현미경(SEM) 이미지: (a) 1000 °C에서 축 방향으로 제작된 시편,(b) 같은 조건에서 횡 방향으로 제작된 시편. (출처 BCHAX)
연구진은 단풍나무, 소나무, 대나무, 주목나무 등 7가지 나무를 600도, 800도, 1000도의 고온에서 태웠다. 그리고 나무가 타서 남은 덩어리 즉 숯과 유사한 바이오차를 세로 방향(결을 따라)과 가로 방향(결을 가로질러)으로 눌러보며 그 단단함을 비교했다.
놀랍게도 아프리칸 아이언우드라는 단단한 나무를 1000도에서 태워 만든 바이오차는 세로 방향으로 눌렀을 때 강철과 비슷한 수준의 단단함을 보였다. 과학자들이 쓰는 단위로는 2.25 기가파스칼(GPa) 정도인데 연한 철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이다. 나무를 태웠는데 강철처럼 단단한 재료가 된 셈이다.
비밀은 ‘재료’가 아니라 ‘구조’였다. 연구진은 실험을 거듭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강도가 높아진 이유는 나무가 탄소로 변해서라기보다 나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미세한 구조가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나무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관(管)과 섬유들이 수직으로 가지런히 나 있다. 덕분에 나무는 본래 물을 잘 흡수하고 위로 자랄 수 있다. 이 구조가 고온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으면 그 방향으로 힘을 줄 때 매우 강하게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옆 방향, 즉 결을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힘을 주면 그 틈이 쉽게 갈라지며 부서진다.
실험에 따르면 나무 종류에 따라 세로와 가로의 강도 차이가 최대 30배까지 났다. 전체적으로 단단하다기보다는 한쪽 방향으로만 매우 강한 특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바이오차로 만든 자동차 가상 이미지.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있지만 강철보다 가볍고 환경에 대한 지속성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오토헤럴드 DB)
그렇다면 이 소재가 강철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강철처럼 단단해졌다”는 말보다 “나무의 구조를 살리면 생각보다 훨씬 강해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점에서 당장 자동차의 어느 특정 부분을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완성차 회사들은 이 연구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차는 강철보다 훨씬 가볍고 무엇보다 나무 폐기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차체가 무거워지기 쉬운데 이런 가벼운 탄소 기반 소재는 경량화를 통해 전비(혹은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이 재료를 배터리 밑부분을 지탱하는 하우징 구조, 충격을 흡수하는 내부 프레임, 소리를 줄이거나 진동을 완화하는 패널 등에 사용한다면 실용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나무는 자연에서 자라는 재생 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환경에도 부담이 적다.
나무를 태워 얻은 탄소를 다시 소재로 쓰는 것은 탄소를 잡아두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고온 탄화 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들고 취성이 높아 충격에 약하다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다른 섬유나 수지를 섞어 복합재(複合材) 형태로 만들면 더 튼튼하고 유연한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고 환경에 부담이 적은 새로운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참고자료] BCHAX-0025-0007, “Anisotropic mechanical behavior of monolithic biochar from seven wood species”, 2025.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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