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V는 발전용 엔진과 전기 구동 시스템을 결합한 구조로 엔진은 바퀴를 직접 구동하지 않고 전기 생산 역할만 수행한다. (출처:현대자동차)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미래 전동화 전략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충전 인프라 부족과 주행거리 불안이다. 특히 순수 전기차의 보급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장거리 이동 시 충전 대기 시간, 충전 속도, 인프라 접근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주목하는 기술이 EREV(Extended-Range Electric Vehicle, 확장 주행거리 전기차) 시스템이다.
발전용 엔진을 탑재한 전기차EREV는 기본적으로 전기차 구동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며 바퀴를 움직이는 모든 동력은 전기 모터만이 담당한다. 배터리 잔량이 충분할 때는 순수 EV처럼 주행하고 충전이 어려운 상황에서 배터리가 소진되면 내연기관 엔진이 작동해 발전기 역할을 수행하며 전기에너지를 공급한다. 즉, 엔진은 동력 전달 장치가 아니라 발전 장치로만 활용되기 때문에 ‘발전용 엔진을 탑재한 전기차’로 표현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조는 혼다 e:HEV나 르노 e-TECH 등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존 하이브리드는 주행 조건에 따라 엔진이 직접 바퀴를 구동할 수 있으나 EREV는 구동과 발전이 완전히 분리된 시리즈형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이에 따라 주행 감각은 항상 전기차 특유의 정숙성과 즉각적인 가속 반응을 유지할 수 있다. 엔진은 진동과 소음이 적은 일정 효율 구간에서만 작동해 발전 기능을 수행한다. 도심 또는 단거리 주행에서는 순수 EV와 동일한 감각을 제공하고 장거리에서는 주유만으로 항속거리를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최대 1600km, 상용화에 성공한 중국
중국 리오토(Li Auto)가 양산 중인 EREV 플랫폼 구조. 전기차 전용 스케일 구조에 발전용 엔진이 적용돼 있으며 장거리 주행을 고려한 중국형 확장 주행 전기차 설계 방향을 보여준다.(출처:리오토)
중국은 이미 상용화된 EREV 모델을 출시했다. 대표적으로 리오토(Li Auto) L9, 샤오펑(Xpeng) X9 EREV, 동펑(Dongfeng) eπ 007 등이 있으며 모두 전기 모터 기반 구동에 내연기관을 발전기로만 활용하는 순수 시리즈형 EREV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리오토 L9은 44.5kWh 배터리와 1.5ℓ 가솔린 엔진 기반의 레인지 익스텐더를 탑재해 전기 모드로 약 210km 주행 가능하고 주유 포함 총 항속거리는 약 1300km 수준에 달한다. 중국 내에서도 대형 SUV 시장을 중심으로 높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으며, 전기차 감각과 장거리 운행 성능을 동시에 확보한 사례로 평가된다.
샤오펑 X9 EREV은 63.3kWh LFP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층 전기 주행 거리를 확대한 모델로, 중국 CLTC 기준 전기 모드 452km, 총 주행 가능 거리는 약 1600km까지 제시된다. 전기 구동 모터 출력은 최대 210kW(약 281마력), 토크 465Nm, 0→100km/h 가속은 8초대 수준이다. 패밀리밴과 SUV 사이를 아우르는 대형 모빌리티로 설계됐으며, 본격적인 전기차 기반 주행 감각을 확보한 EREV 전략 모델로 평가된다.
이처럼 중국은 이미 EREV를 양산에 적용하고 시장 반응을 검증 중인 가장 적극적인 시장으로 충전 인프라 불균형이 존재하는 지역에서 EREV 수요가 특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현대차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EREV 기술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분석된다.
현대차, 내년 출시 모델에 EREV 탑재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미래 전략을 설명하면서 전동화·자율주행 기술 전환 방향을 공유하며 아이오닉 5 기반 자율주행 차량의 북미 시장 테스트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출처:현대자동차)
현대차는 최근 투자자 설명회와 전동화 로드맵을 통해 EREV 개발을 공식화하고 2026~2027년 중 북미와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양산형 모델에 적용할 계획을 밝혔다. 적용 대상은 대형 SUV와 제네시스 브랜드 등 고급형 모델이 유력하다.
한 번 주유로 약 900km 이상 주행 가능하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고출력 전기 구동 기반의 전륜·후륜 2구동축(AWD) 구성도 검토되고 있어 주행 성능 면에서도 순수 EV에 준하는 수준을 지향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출시되는 신차에 첫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EREV는 충전 인프라 의존도가 낮고 장거리 주행 수요가 많은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다는 점이 기술 도입의 핵심 배경이다.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아 제조 및 원가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모터 기반 주행 특성으로 고급차 수준의 정숙성과 응답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회생제동 활용이 가능해 에너지 회수 효율이 높은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기술적 장점과 정책적 리스크 존재EREV는 전기차의 주행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충전 인프라 제약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 이점이 뚜렷하다. 배터리 방전 이후에도 주유만으로 주행을 지속할 수 있어 장거리 운행이나 인프라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 유리하며,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용 부담 완화 효과도 기대된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장점을 결합한 EREV 시스템 구성도. 구동은 전기 모터가 담당하고 엔진은 발전 기능만 수행하는 구조로, 현대차의 2모터 기반 독자 시스템 적용 가능성을 보여준다.(출처:현대자동차)
그러나 시스템이 복합화되면서 개발과 제어 난도가 높아지고 엔진과 배터리를 동시에 탑재해야 하는 구조상 차량 중량 증가와 함께 ‘연료 → 발전 → 전기 → 구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단계 손실 가능성이 존재한다.
주행 중 엔진 개입 시 배출가스도 발생한다. 유지 관리 역시 전기 구동 시스템과 내연기관 계통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도 따른다.
따라서 탄소 규제 강화 및 글로벌 전동화 정책 변화에 따라 EREV 기술의 위치가 불확실해질 수 있다는 점도 잠재적인 리스크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충전 인프라 보급 속도와 장거리 주행 수요 사이에서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는 전동화 기술로 평가된다. 특히 북미와 같은 장거리 이동 중심 시장에서는 전기차 전환 속도를 높이는 전략적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EREV는 전기차의 주행 감각과 내연기관의 항속거리를 결합한 기술적 절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스템 복잡성과 정책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추진하는 차세대 EREV가 성공적으로 구현될 경우 BEV 중심의 전동화 전략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파워트레인 기술로 부상할 전망이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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