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보기> 응답하라 2000, 다나와는 어떻게 오늘의 '다나와'가 되었나
다나와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합 가격비교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첫 발을 내딛던 2000년에는 PC부품 가격비교가 주사업 모델이었다. 당시 소비자는 용산전자상가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야 PC 부품 가격을 알 수 있었던 터라 다나와의 꼼꼼한 가격 정보는 획기적이었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소비자의 발길은 크게 줄었지만 지금도 용산전자상가는 다나와의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되어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의 길을 걷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나라 PC 시장을 대표하는 집단 상가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다나와 창립 20주년을 맞아 다나와의 성장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내 최대의 전기/전자/컴퓨터 제품의 중심지 ‘용산전자상가’의 역사와 추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서울의 중심지에 위치한 용산전자상가의 탄생
<출처 : 서울특별시>
용산에 전자상가가 생기기 전 전자제품 시장을 이끈 곳은 청계천 세운상가, 대림상가였다. 이곳은 1960년대 미군부대에서 빼 내온 각종 고물을 고쳐서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전제품을 포함한 각종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상가가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8비트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세운상가는 PC를 구매하려는 이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당시 애플컴퓨터 호환 PC가 주로 유통되는 곳이기도 했다.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198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정부는 전자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1987년 청계천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우리나라 최대, 그리고 동북아 최대의 집단 전자상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 1962년 4월 용산 청과시장 전경
<출처 : 서울특별시>
한강에 인접한 용산은 오래 전부터 전국의 물자가 모이고, 또 전국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해 온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국내 물류의 중심에 있었다. 1960년대부터 1983년까지 현재의 용산전자상가 일대는 청과물 시장이었으며, 때마침 가락동에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조성됨에 따라 용산 청과물 시장은 가락동으로 이전하고 첨단 기술로 모인 전기/전자/컴퓨터 제품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4,000여개 점포가 모여 있는 최대 집단상가
▲ 용산전자상가 배치도
<출처 : 용산전자상상가(http://y-valley.org/map)>
이렇게 형성된 우리나라 전자제품의 유통지 ‘용산전자상가’는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 전자타운 등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상가가 모여 국내 최대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 다나와 서비스가 나오기 전에는 발품을 팔아가며 가게마다 가격을 물어보고 구매해야 했다.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사진과 같이 견적을 받고, 가격을 비교하고 PC를 구매하던 시절이 있었다.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인터넷 쇼핑몰의 영향으로 용산전자상가 전체가 크게 쇠퇴했지만 그래도 PC를 구매하기 위해 여전히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은 선인상가(21동,22동)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2층은 컴퓨터 부품 가게 및 PC조립 업체들이 모여 있다. 과거 게임기 및 완제품PC 업체가 있던 1층도 지금은 노트북 또는 조립PC 업체들이 자리잡고 있다.
▲ 선인상가 전경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선인상가는 건물 3개가 삼각형으로 붙어있는 독특한 형태로,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길을 잃기 쉬워 미궁으로 불리기도 한다. 농협 쪽에서 선인상가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21동 2층 ‘북간도’도 지금은 많이 쇠퇴했지만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상가 내 막다른 구석에 있어 입지가 매우 좋지 않은 곳이지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중고전문매장이 모여 있다. 몇몇 점포에는 수리 장인도 있어 정식 서비스센터에서 해결하지 못한 메인보드나 그래픽카드 수리는 물론이고, 부러진 CPU 핀도 부활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신용산역에서 선인상가로 이어지는 굴다리는 불법복제 CD 및 DVD를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이 또한 인터넷의 영향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 용산견의 생전 모습
<출처 : 나무위키>
용산전자상가하면 떠오르는 추억 중 하나는 ‘땡비’로 불리던 용산견이다. 공CD 담는 통을 밥그릇 삼아 용산 상인들이 밥을 주며 키우다시피 했다. 신용산역과 선인상가로 연결되는 굴다리 부근에서 주로 서식했다. 당시 굴다리 들어가기 전 용산견을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면 바가지를 당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18살 되던 2003년에는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주변 용산 상인들이 돈을 모아 동물병원에 입원 및 치료하였으나 안락사되었다.
▲ 나진상가 11동에서 내려다 본 용산전자상가 전경. 앞에 있는 사거리를 흔히 국민은행 사거리로 불렀다.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나진상가는 선인상가 건너편 19동과 20동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10동부터 20동까지 가리키는 매우 큰 상가이다. 10~15동은 주로 조명기기를 취급하고 있으며, 곳곳에 콘솔게임기 및 소프트, 배터리, 전기관련 자재 등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가 국민은행 건물로 알고 있는 전자월드는 14동이며, 16동은 농협이 쓰고 있다. 전자월드 지하에는 세미나실이 있어 제품 발표와 같은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용산전자상가 내에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신제품 발표, 체험 등의 행사를 위한 단골 장소로 많이 애용되었다.
▲ PC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전자랜드 내 랜드시네마 입구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이후에는 전자랜드 내 랜드시네마(현재는 롯데시네마)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 터미널 전자상가 전경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 용산역과 터미널 상가를 이어주던 구름다리
지금은 호텔이 들어선 터미널상가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용산역에서 용산전자상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구름다리’로 부르는 고가다리를 건너야 했으며, 구름다리 끝이 터미널 상가이다 보니 용산전자상가 중에서 가장 사람이 붐비는 길목이었다.
▲ 터미널상가 내 3층 전철 개찰구 앞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실제로 터미널 상가 3층에는 용산 전철역 개찰구가 있었다. 사실 이곳은 처음부터 전자상가는 아니었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용산관광버스터미널로, 관광버스를 이용하기 위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개장 초기에는 1층에 버스승강장이 있었으며, 5층에는 관광회사 사무실, 2층에는 관광안내센터 등이 운영되었다. 하지만 버스터미널로 제 역할을 못하게 되자 빈 자리에는 전자제품 및 컴퓨터 관련 상점이 입주하기 시작했으며, 4층과 5층에는 유명 IT기업의 용산사무소 또는 서비스센터 등이 자리 잡았다. 용산역과 이어지는 황금 상권을 형성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했지만 일부 악덕 상인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손님, 맞을래요’ 사건이 이곳에서 터지면서 소비자는 이곳에서 물건 구매하는 것을 꺼려했다. 2013년에 영업을 중단, 2014년에 건물은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6성급 호텔이 영업 중이다. 용산역에서 이어지는 구름다리는 여전이 남아 있다.
▲ 13동 두꺼비상가 입구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이 밖에 콘솔게임기와 게임 타이틀, PC 소프트웨어 등을 파는 두꺼비상가 및 도깨비상가가 있다. 나진상가 17동 뒤쪽 한신전자타운은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임대료가 저렴했으며, 그 때문인지 다나와 최저가보다 더 싼 물건도 가끔 나오기도 했다. 용산전자상가에 자주 가봤다는 이들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원효상가(4~9동)은 노래방 기기와 같은 업소용 기기를 주로 취급한다.
중고시장, 벼룩시장의 활성화
PC부품만큼 제품 사이클이 빨리 바뀌는 제품도 드물다. 업그레이드를 하고 나면 쉽게 버려지는 부품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재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기도 하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용산전자상가에는 자연스럽게 중고물품을 취급하는 중고시장 혹은 벼룩시장이 형상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산한 용산전자상가 분위기를 반영하듯 중고 부품시장도 없어지거나 크게 축소되었지만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 나진상가 19동과 20동 사이에 열리던 벼룩시장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용산전자상가 내 대표적인 벼룩시장은 나진상가 19동과 20동 사이에 위치한 ‘벼룩시장 광장’이다. 방문객이 많은 주말인 토요일에 큰 규모로 열렸으며, 평일에는 인근 상가에서 내놓은 제품들이 주로 거래가 되었다. 한 물 간 중고부품은 물론이고, 일부 신상품 등 워낙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부담없이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앞서 설명한 선인상가 북간도도 평일 중고부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높았다.
▲ 토요일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던 선인상가 앞 벼룩시장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주말 용산에서 뜨거운 활기를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선인상가 앞 벼룩시장.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인상가에 입장하기 전에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주목을 받았다.
용산전자상가의 부흥과 쇠퇴
동북아 최고의 전자제품 유통 메카로 불리던 용산전자상가. PC 한 대에 200~300만원에 이르고, PC 시장이 급성장할 무렵인 1990년대를 시작으로 용산전자상가는 최고의 황금기를 맞았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과 같은 환경 변화로 인해 지금은 상권이 침체된 분위기이다. 용산전자상가의 매장수는 총 4000여개에 이르지만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에는 공실률이 약 2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1300만명이 방문한 곳이지만 지금은 주말에도 과거의 활발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1990년대 연간 10조원에 이르던 매출 규모도 지금은 절반 정도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슬러 보면 IMF 구제금융 이후 용산전자상가는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컴퓨터 및 전자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일단 용산에 가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한 것. 1998년 프라임산업이 강변역 인근에 테크노마트를 세우면서 서울 동부권 및 경기 지역의 소비자는 더 이상 용산까지 먼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용산과 가격 차이도 크지 않고, 나진상가나 선인상가와 비교하면 마치 백화점처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으며, 극장 등 문화공간과 다양한 식당까지 함께 갖춰졌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마트와 전자랜드와 같은 전자제품 전문 양판점이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생기면서 용산으로 집중되었던 전자제품 상권은 광역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서서히 용산전자상가의 쇠퇴는 시작했다.
2000년대 전자상거래 시장이 열리면서 이제는 회복하기 힘든 침체기를 맞았다.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으로 소비자는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손쉽게 싼 가격에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나와와 같은 가격비교 사이트를 통해 쉽게 제품과 가격을 비교하고,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던 전자상가의 모습은 사라졌다.
감추고 싶은 추억… ‘호갱’과 ‘용팔이’
전자제품의 폭발적 성장과 PC의 대중화로 1990년대 이후 용산전자상가에 입점한 상가는 대부분 탄탄대로의 길을 걸으며 매출을 키웠다. 하지만 경쟁이 심해지고, 인터넷 쇼핑몰로 인해 매출이 점차 감소하면서 어두운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부 상가 직원의 불친절은 도를 넘어 사기 판매 행위까지 나타난 것이다. 진열품이나 중고를 새 상품으로 속이는가 하면 당연히 포함된 부속품을 별매품으로 둔갑시켜 돈을 더 받아내는 행위가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다. 용산의 악덕 상인을 칭하는 ‘용팔이’라는 말도 이 때 나오게 되었으며, 소비자와 상인 사이 신뢰에 금이 가면서 급기야 2007년, 2008년에는 KBS와 MBC에서 각각 이와 관련된 일이 보도가 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 ‘손님, 맞을래요’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KBS 취재 화면
<출처 : KBS 방송 캡쳐>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강매, 그리고 협박도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고객을 상대로 바가지 상술을 넘어서 폭언까지 일삼아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신뢰는 급추락했다. 한 상점을 방문해 제품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던 고객이 망설이자 가격이 고무줄처럼 내려가는가 하면,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니 피해 운운하며 협박까지 일삼았다. 그 유명한 “손님, 맞을래요?”라는 말도 KBS 취재에 의해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되었다. 이와 같은 사건은 당연히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안좋은 인식으로 이어졌고, 이후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쇼핑을 더욱 선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옛 활기 찾기 위해 다시금 꿈틀거리는 용산전자상가
이처럼 쇼핑에 대한 행태와 인식이 바뀌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과거의 활기찬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되었다. 과거에는 해가 지고 나면 퇴근하는 상가 직원들이 인근 술집에 모여 한 잔씩 걸치며 그날의 노고를 위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의 도시재생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국공유지를 대상으로 도시재생 시범 사업지로 선정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상 28~29층 규모의 건물 2동에 창업지원시설을 세워 기존 용산전자상가의 부족한 부분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기존상가 및 산업 활성화, 신산업 육성 및 창업 지원, 상생거버넌스 구축 및 운영 등 3개 분야로, 그간 주민협의체 구성, 청년 창업플랫폼 용산전자 상상가 조성 및 도심활력증진사업 추진,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실행전략 수립, 컴퓨터박물관 기획 전시시설 조성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2017년 2월 서울형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된 후 ‘디지털 메이커 시티 용산 Y-Valley’라는 주제로 2022년까지 5년 간 총사업비 200억 원을 투입, 도시재생사업을 추진 중이다.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 화려했던 용산전자상가의 옛 분위기를 당장 되살릴 수는 없겠지만 변화한 시대 흐름에 맞춰 용산전자상가도 조금씩 변화를 보여준다면 과거 30년 IT 역사를 이어 앞으로도 국내 IT 산업 및 유통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은 다나와 창립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용산 90년대/2000년대 용산 사진 이벤트 응모작이다.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추억을 함께 되살리기 위해 본문에 소개된 작품 외에 나머지 사진을 공유하고자 한다.
▲ 캐논 파워샷 A60으로 2004년 1월 15일 촬영
▲ 사진 하단 날짜 캡션으로 미루어 보아 1999년 12월 14일 촬영한 것으로 추정
▲ 1998년 5월 26일 후지필름 SLP1000SE로 촬영
▲ 1998년 5월 26일 후지필름 SLP1000SE로 촬영
▲ 1세대 레이싱모델로 유명했던 이가나, 임지혜씨
니콘 CoolPix L5V로 2010년 10월 15일 촬영
▲ 소니 알파 100 기종으로 2006년 10월 28일 촬영
▲ 코닥 DC210 Zoom 기종으로 1997년 1월 1일 촬영
▲ 코닥 DC210 Zoom 기종으로 1999년 11월 26일 촬영
제이씨현 고객센터 모습으로 모니터가 CRT다.
▲ 소니 알파 100 기종으로 2006년 10월 28일 촬영
▲ 소니 사이버샷으로 2000년 11월 13일 촬영
▲ 소니 사이버샷으로 2000년 11월 13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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