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年初)만 되면 유난히 그리운 한 남자가 있다. 1996년 1월 6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자신의 음악을 듣던 모든 이들에게 비보(悲報) 전하고만 김광석.
지금은 2021년이다. 그가 떠난 지 25년이 지났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음악은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여전히 재생되고 있다.
왜 김광석은 여전한가. 이 단순한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그의 음악을 지금 듣고 있다면, 그가 아직까지 우리 가슴 속에서 노래하는 이유, 우리 역시 그를 놓지 못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리메이크
▲ 김광석 '다시부르기 1' 음반 표지 사진
김광석이 한국가요사에 남긴 뚜렷한 여러 의의 중 하나가 '리메이크'의 대중적 시도다.
김광석은 1993년 3월 2일 '다시 부르기 1', 1995년 2월 22일 '다시 부르기 2' 2장의 리메이크 음반을 발매했다. '이등병의 편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등 원곡가수가 따로 있는 음악을 다시 자신만의 음악색과 목소리로 불러내 제2의 창작물을 탄생시켰다. 이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발표했었던 음악들에 대해 재해석한 음악들도 다수 수록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리메이크'의 개념과 가치를 대중들에게 음악적으로 각인시켰다.
후에 대한민국 음악평론가들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다시 부르기 1'을 58위, '다시 부르기 2'를 24위로 선정해 김광석의 '리메이크' 결과물을 치하했다.
저 멀리 떨어져 자칫 대중으로부터 잊힐 뻔한 음악들을 김광석은 자신의 목소리로 생명력을 '리메이크'로 다시 불어넣었고,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새로이 탄생한 김광석 '리메이크' 음악을 현재까지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통기타
▲ (사진: KMTV 김광석 슈퍼콘서트 공연 영상 캡쳐)
'김광석'이라는 세 글자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상징물이 몇 가지 있다. 김광석 특유의 주름지고 멋쩍은 웃음, 한결같이 고수했던 가르마 머리, 짧은 다리로 기어코 올라타고만 오토바이 등.
그럼에도 그가 지녔던 통기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통기타를 연주하지 않더라도, 통기타를 메지 않은 김광석 모습은 영 어색하다.
그렇다. 김광석은 통기타와 함께 해야 한다. 항상 김광석은 통기타를 몸에 메고 다녔고 거의 모든 노래를 통기타 연주로 했다. 김광석의 절친이자 '사랑했지만' 작곡가 한동준은 이렇게 회상했다. "광석이 형은요, 공연장에 통기타 하나 메고 앉아있는데 마치 거인이 앉아있는 느낌을 줘요"라고. 화려한 세션들이 거대하게 연주해 관객을 압도하는 음악이 아니더라도 김광석은 명확하고 단순한 통기타 소리만으로 공연장을 채울 줄 아는 가객(歌客)이었던 것이다.
통기타는 다른 현악기들에 비해 저렴해 접근성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보급률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통기타에 쉽게 입문한다. 그 통기타에 입문하여 초기에 바로 접할 확률이 높은 음악이 김광석의 음악이다. 이유는 물론 통기타로 연주했을 때 더욱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김광석의 음악들은 대부분 Am, C, D, Em, G 등의 운지하기 쉬운 코드들만으로 연주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통기타 입문곡을 김광석 음악으로 선택한다.
그렇게 우리가 김광석을 회상으로 만날 때도 김광석은 통기타를 메고 있고, 우리가 김광석을 음악으로 만날 때도 우리는 통기타를 메고 있다. 통기타는 우리와 김광석을 이어주는 가장 상징적인 매개다.
삶
리메이크, 통기타는 김광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명시적인 가치다. 이번엔 기준을 달리하여 김광석이 왜 여전한지를 살펴보려 한다.
김광석의 음악을 들으면 그저 '좋다' 정도의 형용이나 느낌으로 끝나는가? 그 정도의 느낌이라면 김광석은 25년이 넘게 우리 플레이리스트에 존재하지 못 했을 것이다. 좋다는 느낌 이상의 감동을 대부분의 음악에서 우리에게 선사했기 때문에 '여전한' 것이다.
김광석의 음악을 들으면 쉽게 이입이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궁금증에 김광석의 절친이었던 박학기는 "김광석의 노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길목길목 문 옆에 있다"라는 답변이자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가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경험하는 중인, 경험해야 할 삶의 감정을 김광석은 차근차근 노래해주었다.
가슴 아픈 사랑을 담담하게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순수 하디 순수한 짝사랑의 감정을 담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군 입대를 앞둔 남자라면 누구나 듣고 마음이 요동쳤을 '이등병의 편지', 청춘을 지나 앞을 바라만 봐야 하는 서른이란 나이를 노래한 '서른 즈음에', 황혼을 앞두고 슬프게만 이별을 표현하지 않았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보통사람이라면 지나올 수밖에 없는 삶을 김광석은 노래했다.
반드시 당시 시대에 저항해야만 '민중가수', '소시민 가수'가 아니다. 우리의 삶을 노래해주는 그 가수는 '민중가수'이자 '소시민 가수'가 맞다. 김광석이 2021년 현재까지 여전한 가장 확실한 이유, 우리가 이입할 수밖에 없는 삶의 노래를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가장 큰 영광, 잊히지 않는 것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름과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는 유효기간에 김광석은 2021년 현재까지 여전한 듯하다. '리메이크'로 우리에게 좋은 음악을 재탄생시켜 전달해주었기 때문에, 그 좋은 음악을 '통기타'로 아름답게 연주해주었기 때문에, 그의 모든 음악에 우리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에. 이정도면 김광석이 왜 여전한지 어느 정도의 답이 되지 않았을까.
조재형 기자/ulsu@manzlab.com
ⓒ 맨즈랩(http://www.manzlab.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맨즈랩 주요 기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