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PG 먹거리포럼 'InRoo'님의 비빔면 사진
남들은 무더위가 찾아오면 입맛을 잃어버린다지만, 예외인 경우가 있다. 시원하고 쫄깃한 면발에 매콤달콤 양념장을 비벼 먹는 한국인의 영원한 별미, 비빔면이 그것이다. 사실 비빔면이라는 음식은 한 라면 제조사가 끈덕지게 이어온 제품명이었지만, 이젠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언제나 두 개를 먹냐 한 개를 먹냐 자신과의 싸움으로 이끄는 비빔면. 2017년 먹을거리 특집 기사 세 번째는 이 비빔면이 주인공이다.
더위가 한창인 요즘 대형마트에 가면 한바탕 전쟁을 목격할 수 있다. 비빔면과 잘 어울리는 재료를 추가하고 각자 색다른 아이디어를 조합해 신제품을 앞다투어 내놓은 것. 전통의 비빔면 군주, '팔도'마저도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여 건곤일척의 승부에 가담한 상태다.
이런 비빔면 춘추전국시대에 과연 어떤 제품이 인기를 얻을까 섣불리 짐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먹을거리 특집 설문조사로 단련된 다나와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살짝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다나와 직원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남자 31명, 여자 19명으로 이루어진 설문 조사단원들에게 비빔면 제품 각 1봉씩을 분배해 2주 후 설문지를 회수하여 정리했다.
평가단 50명 중 68%는 비빔면류를 가끔 먹는다고 밝혔고, 자주 먹거나 잘 안 먹는 부류는 각각 14%, 18%이었다. 아무래도 일반 라면을 즐겨 먹는 사람이 많고 비빔면은 일종의 '별미'로 여기는 인식이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비빔면을 고르는 기준을 '맛'으로 답한 평가단이 62%였다. 의외로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없었다. 최근 마트에서 4~5개들이 멀티 팩 기준으로 할인행사를 자주 하고 일반 라면과 비슷한 가격대이기 때문에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맛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비빔면을 구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듯하다.
설문대상 라면은 모두 5종. 팔도 비빔면, 팔도 초계 비빔면, 오뚜기 함흥 비빔면, 삼양 열무 비빔면, 농심 찰 비빔면이다. 팔도 쫄 비빔면이랄지 오뚜기 메밀 비빔면도 분명 존재하지만, 면 소재의 이질감이 자칫 객관적 맛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제외했다. 그럼 각 제품별 특징과 평가단이 분석한 맛을 살펴보도록 하자.
비빔면 천하 5대장의 매력. 모두 맛있는 것은 기본!
▶ 전통의 강호, 오리지널이 주는 매력. 팔도 비빔면
먼저 1984년에 등장한 오리지널 팔도 비빔면이다. 총 내용량 130g에 사과 농축 과즙이 함유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제품이다. (사실 사과 농축 과즙은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제품은 면과 비빔스프, 단순한 구성이다. 하지만, 이 구성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해졌었던가! 오리지널이라는 강력한 무기는 우리에게 익숙함이라는 효과를 나타낸다. 조리법도 면 삶고, 찬물로 헹구고 비빔스프 넣어 비비면 끝! 정말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 팔도의 반격! 식초와 겨자로 승부한다! 팔도 초계 비빔면
두 번째 제품은 팔도 초계 비빔면이다. 비빔면만 고집하던 팔도가 올해 야심 차게 선보인 신제품이다. 포장 색상과 디자인이 일반 팔도 비빔면과 비슷하지만, 스페셜 여름 한정판, 겨자 등의 설명이 인쇄된 띠가 초계 비빔면임을 알려준다. 이름만 보고선 평안도 음식인 초계탕을 연상하기 쉬운데, 식초의 초와 겨자의 평안도 사투리인 계를 따온 이름이란다. 혼돈에 빠지지 말자.
초계 비빔면은 일반 비빔면과는 달리 건더기 스프와 겨자 향미유가 동봉되었다. (어찌 보면 비빔면계의 블랙 버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란 겨자가 아니라 겨자 맛 향미유라는 것을 잊지 말자. 마치 짜장라면에 들어있는 유성 스프나 항미유와 비슷한 모양새지만, 겨자의 톡 쏘는 맛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정말 조심해서 넣어야 하는 양념이다. 굉장히 강하다.
▶ 갓뚜기입니다. 그냥 믿고 먹는겁니다. 오뚜기 함흥 비빔면
세 번째 제품은 요새 잦은 선행이 밝혀져 소위 '갓뚜기'로 칭송받는 오뚜기사의 제품이다. 이름하여 함흥 비빔면. 평안도의 콘셉트를 따온 초계 비빔면의 대항마로 느껴진다. 제품 출시일도 초계 비빔면과 3일 차이로 먼저 나온 제품. 강렬한 붉은색 봉투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함흥 비빔면은 역시 초계 비빔면의 화려한(?) 구성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액체 스프와 더불어 건더기 스프, 유성 스프가 함께 동봉된 것. 이 유성스프에도 겨자와 참기름이 섞여 있지만, 초계 비빔면만큼 톡 쏘진 않는다. 건조면 역시 함흥냉면의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려 1mm 세면이다. 여러모로 차별화를 두려는 오뚜기의 노력이 엿보인다.
▶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삼양 열무 비빔면
솔직히 이번 설문조사를 위해 입수하려 했던 비빔면 중 가장 구하기 힘든 열무 비빔면이다. 그만큼 시중에 판매되는 양이 적어서인지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 맛이 기억이 나질 않는 그런 스타일이다. 조사를 해보니 1991년부터 시판되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나름 장수 제품이지만, 2005년 MSG 파동으로 인기가 급감하여 고정팬층이 많이 줄었다고. 그 여파로 판매처에서 찾아보기가 살짝 어렵게 된듯하다.
삼양 열무 비빔면의 구성은 팔도 비빔면과 다르지 않다. 다만, 면이 굉장히 노란빛을 띠는데 이는 파프리카 추출 색소를 첨가해서 그렇단다. 그냥 삶고 찬물에 헹구고 액상스프 넣어 비비면 끝! 1세대 비빔면의 페르소나라고나 할까?
▶ 농심의 자존심, 찰지게 빛낼까? 농심 찰비빔면
앞서 살펴본 열무 비빔면이 살짝 휘청거리기 시작할 2005년 농심이 과감히 출시한 그 제품, 찰비빔면이다. 라면 계의 제왕 노릇을 하고 있는 농심은 유독 비빔면류에서 고배를 마시곤 했는데 기존 팔도 비빔면을 잡아보고자 내놓은 일종의 히든카드라 할 수 있다.
구성도 역시 팔도 비빔면, 열무 비빔면과 다르지 않다. 다만 봉투 겉면에 참기름 함량이 2배라고 크게 인쇄한 것으로 보아 고소한 향이 주무기가 아닌가 싶다. 워낙에 농심답지 않은 마이너한 브랜드라 별다른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 게 특징이다.
본격적으로 각 제품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그렇다면 언제나 논쟁거리였던 '중량'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보통의 비빔면류는 130g 정도의 무게. 하지만 팔도 초계 비빔면은 145g이다. 제품 전체의 무게니 면만 다시 재보자. 유통 과정상 부스러기가 발생하였으나 세밀히 모아 같이 저울로 쟀다.
역시나 전체 중량은 초계 비빔면이 1위였으나 실제 면의 중량은 97g에 그쳤다. 반면 팔도 비빔면은 면의 중량이 103g. 비록 6g 차이지만 항상 1개를 먹냐 2개를 먹냐 논란이었던 소비자들에겐 민감하게 다가올 요소다. 6g이라도 더 포만감을 느끼려면 오리지널 팔도 비빔면이나 농심 찰비빔면을 먹자.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나트륨 함량. 얼마 전 비빔면의 나트륨 함량이 하루 권장량의 70%를 웃돈다는 기사가 나온 후 비빔면 마니아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번엔 비빔면 5종이라니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가장 나트륨 함량이 적은 것은 1,060㎎인 찰비빔면, 그다음이 1,090㎎인 팔도 비빔면, 1,220㎎인 열무 비빔면, 1,250㎎인 함흥 비빔면, 그리고 무려 1,460㎎인 초계 비빔면이 최하위였다. 하루 권장 나트륨 섭취량은 2,000㎎ 정도. 초계 비빔면만 보면 기사가 나올 만 하다. 적절히 조절하며 먹는 미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평가단이 분석한 맛은 어땠을까? 면발, 매운맛, 단맛, 신맛, 짠맛 다섯 가지 분류로 점수를 매겨 평균을 계산했다. 눈에 띄는 것은 초계 비빔면의 그래프다. 초계 비빔면은 매운맛, 신맛, 짠맛 부분에서 다른 제품들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만큼 맛이 강하다는 뜻이다. 평가단 대부분은 초계 비빔면의 겨자 맛이 너무 강해 먹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조리 시 겨자 향미유를 적절히 조절하는 요령이 필요하겠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팔도 비빔면의 면발과 단맛. 면발이야 조리 단계에서 결정할 수 있어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단맛 같은 경우 다른 제품보다 월등히 앞선 모습이다. 이는 다른 제품들이 팔도 비빔면과의 차별화를 위해 매운맛을 강조한 것이 원인이라 생각된다.
더불어 함흥냉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1mm 세면을 사용한 오뚜기 함흥 비빔면이 면발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고, 농심 찰비빔면이 각 부분에서 고르게 점수를 받아 맛의 밸런스가 가장 잘 맞는 제품이라 판단된다. 각자 내세우는 개성별로 맛이 다르게 평가된 것 같다.
자! 오늘의 하이라이트. 비빔면의 진짜 선호도 순위다. 맛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밸런스가 잘 맞고 소비자의 입맛을 가장 사로잡은 제품은 무엇일까? 역시 오리지널의 힘, 팔도 비빔면이 8.1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오뚜기 함흥비빔면, 3, 4, 5위는 근소한 차이로 초계 비빔면, 찰비빔면, 열무 비빔면 순. 거의 팔도 비빔면과 오뚜기 함흥 비빔면의 2파전이라 여겨도 무방할 형국이다.
아무리 신제품이 쏟아져 나와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나 보다. 워낙에 팔도 비빔면이 부동의 1위 자리를 굳게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함흥 비빔면을 제외한 3종은 그저 그런 평가를 받았다. 새콤달콤한 팔도 비빔면 원래의 그 맛과 쫄깃한 면발이 평가단의 뇌리에 단단히 새겨진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매운맛에 대한 불호가 존재하여 다른 경쟁 제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으로 판단된다.
게다가 후발주자인 오뚜기 함흥 비빔면의 선전도 눈에 띄는 요소다. 제품 콘셉트나 그 콘셉트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돋보여 평가단에게 점수를 많이 받은듯하다. 비빔면과 냉면의 콘셉트를 합쳐 면발과 맛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오뚜기의 과감한 시도가 적중한 모습이다.
반면 팔도가 야심 차게 내놓은 초계 비빔면은 그 맛이 너무도 강해 점수를 많이 잃었고 1세대 제품이라 할 수 있는 열무, 찰비빔면도 경쟁력을 차츰 잃어가는 느낌이다.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한시바삐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거나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덤으로 비빔면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도 질문해보았다. 소위 먹방이 최절정으로 유행인 지금 다양한 식재료를 함께 비빔면을 조리해 먹는 레시피가 많아졌다. 이에 걸맞게 다나와 평가단도 흔히 잘 알고 있는 골뱅이를 제일 먼저 손꼽았다. 이미 술안주, 일품요리로 많이 공개된 골뱅이는 새콤달콤한 초장 베이스의 음식에 잘 어울리는 식재료다. 그다음은 의외로 삼겹살이었다. 갈비에 냉면은 들어봤어도 비빔면에 삼겹살은 아직 생소한 조합이다. 유튜브의 모 크레이터가 최초로 공개해 화제가 된 이 조합은 다나와 평가단도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 아니었을까?
개성만점 비빔면! 끝까지 살아남아라!
치열한 비빔면 전쟁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제품은 무엇일까? 일단 다나와 평가단 50인이 손을 들어준 것은 팔도 비빔면이다. 워낙 오래 우리 곁을 지킨 제품이기도 하며 맛의 밸런스도 잘 맞은 제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뚜기 함흥 비빔면의 추격이 무섭다. 그리고 설문 조사에 동원되지 않았지만, 팔도 쫄비빔면, 메밀 비빔면, 그리고 불닭 비빔면 등 신제품들이 호시탐탐 팔도 비빔면의 왕좌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을 터. 소비자 입장에서는 맛있는 것만 골라 먹으면 되니 즐거울 따름이지만, 제조사들의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올여름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 더욱 다양해진 비빔면과 함께 극복해보는 건 어떨까?
글, 사진 / 다나와 정도일 (doil@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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