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분리수거하는 곳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주일중 특정 요일에 분리수거를 합니다. 예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다 이럴꺼라고 생각되네요. 단 하루만 버릴 수 있으니 엄청나게 모입니다.
몇 년전부터 동네에 수퍼빈이라고 라벨을 제거한 흰색 투명 플라스틱 음료수병이나 알루미늄 깡통을 집어넣으면 1개당 10원씩 적립해주는 기계가 생겼어요.
그리고 여기다 집어넣으려고 분리수거 하는 날 남이 내어놓은 플라스틱병이나 깡통을 가져가는 사람들도 같이 생겼죠. 분리수거는 하루동안 모았다가 그 다음날 아침 일찍 가져가니까 모으는 동안 가져가는 거죠. 그런걸 단지 사람이 하는 거 같지는 않고 아파트 주변에 낙후된 지역이 있는데 거기 계시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 가져가는 거 같더라구요.
별로 좋게 안 보였지만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관리실에서 붙인 경고문이 있네요.
내용은 '그거 가지고 가지 마라. 그리고 의류수거함에 있는 옷도 가져가는 사람있는데 그것도 가져가지 마라. 분리수거는 분리수거업체와 계약을 맺고 하는 거고 그 사람들이 수익이 안 나와서 뭐라 한다. 그건 그 사람들의 자산이다. 차후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라는 내용이더군요.
이 글을 읽으니 약간 혼란스럽네요. 그게 도적질인가? 하는 의문. 분리수거하려고 물건을 내놓은 사람들이 거기다 물건을 내놓은 순간 그 사람은 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하는 건 가? 하는 의문. 예전에 누가 컴을 버리고 의자를 버렸기에 나도 가져온 적이 있는데 그럼 나도 도적질을 한 건가? 하는 의문. 분리수거를 해 가는 사람들이 그 물건을 가져가서 수익을 내는 것까지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 관리실에서 수거해가는 비용만 받아가면 되는거 아니었나?하는 의문.
전 그걸 도적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예전에 누군가가 분리수거하는 곳에서 닌텐도 게임보이 어드밴스 줏었다고 글 쓴 거 보고 부러워했으면 부러워했었지 이걸 도적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드는 의문은 그럼 왜 나는 내가 그런걸 가져오는 걸 당연시 했으면서 남이 플라스틱 병따위를 가져가는 걸 안 좋게 봤을까? 하는 의문. 잘못됐다고 생각했으니 안 좋게 본 건데 그렇다면 내가 가져 온 컴퓨터나 의자가 고물상에 플라스틱 병보단 훨씬 더 비싸게 팔릴거 같은데...그렇다면 내가 더 비싼 걸 훔친 중죄인인데 하는 생각.
의류수거함에서 (자기 말로는 추워서 그랬다는, 진짜 추웠는 지는 모르겠지만) 옷을 꺼내 입은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행위가 도적질로 판단되서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은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그렇다면 이것도 같은 선상으로 봐야 하는 거 같기도 하고....동남아시아인들은 의류수거함을 부수고 옷을 꺼냈으니 그 행위가 더 문제가 돼서 범죄가 된 듯 하니 이건 범죄가 될 수 없을 거 같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의류수거함에서 옷가져가는 것처럼 남의 자산 부수고 가져가는 것도 아니니 도적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작 플라스틱 병 몇 개를 가져가는 아주머니들을 안 좋게 본 제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는 정도로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그래도 아직도 의문이 드네요. 그럼 내가 이제까지 나도 모르게 도적질하고 산 건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