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목월의 아들 박동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정신적 멘토가
바로,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6.25 전쟁이 일어나자
아버지 박목월 시인은 먼저 남쪽으로 떠났고
그는 다섯 살짜리 여동생, 젖먹이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았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무작정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피난길에 오른 뒤 평택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됐지만
전쟁으로 인한 흉흉한 민심에 그의 가족은 쫓겨나
다시 서울로 가야 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그의 어머니는 아끼던 재봉틀을
쌀로 바꿔온 후 끈을 매어서 그의 어깨에 지웠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한참을 가고 있을 때 젊은 청년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너무 무겁지? 같이 가는 길까지
내가 좀 져 줄게.”

순진했던 그는 고맙다며 쌀자루를 맡겼지만
장성한 청년의 발걸음은 어린아이가 따라가기엔
너무 빨랐습니다.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뒤에 있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조해진 그는 쌀자루를 달라고 했지만,
청년은 이를 무시한 채 더 빠르게 걸었습니다.
결국 갈림길에서 쌀자루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도착했고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터진 그는 울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가족의 생명과 같은
쌀자루를 잃어버린 아들을 가만히 껴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어미를 잃지 않았구나.”

자신조차 스스로 바보 같다 생각됐지만
따뜻하게 보듬어 준 어머니의 한마디에
앞으로는 똑똑한 사람이 되겠노라
결심하게 됐습니다.

 

 

한 사람의 가능성은 열매를 맺기 전까진
크기와 무게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새싹과 같아서
주변에 따뜻한 말 한마디에 작은 꽃이 되기도,
큰 나무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