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티오피아의 한 병원,
터질 듯 부어오른 얼굴과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대정맥이 꽉 막힌 30대 여성 환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위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2주일 소모품인
카테터(혈액 투석을 위해 정맥에 삽입하는 플라스틱관)를
6개월 넘게 꽂고 지내다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현지에서 처음 시도되는 난관이었지만,
한국에서 온 한 의사는 망설임 없이
수술대 앞에 섰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살려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역사상 최초의 대정맥 스텐트
시술이었습니다.
더 안락하고 편안한 길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20년 넘게 세계의 오지를 향하는
고단한 삶을 택했습니다.
그가 처음 오지로 향한 건
2001년 전공의 수료 직후인데
의대 시절 단짝이었던 고(故) 심재학 씨와
'전문의가 되면 함께 몽골로 봉사를 가자'고
뜻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 씨는 전공의 3년 차에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 몫까지 해달라'는 친구의 유언을 품고
그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주 6일 근무를 고수하며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수술대를 지키면서
하루 평균 8건씩 메스를 잡느라
손에 건염이 생겼지만, 그는 통깁스를 한 채
손가락 끝만 내놓고 집도를 쉬지 않고
이어갔습니다.
그의 야전 이력은 재난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는데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다국적 의료팀에 합류했던 그는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산모를 만났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살려낸 베테랑이었지만,
분만 경험은 전혀 없었기에 산부인과 전문의인 아내에게
국제전화로 수술법을 물어가며 생애 첫
제왕절개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사고 치지 말라며 펄쩍 뛰었지만,
두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라 물러설 수 없어서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을 그리면서 배를 열었습니다.
독일 의사가 마취를, 미국 의사가 보조를 맡는 등
의료진이 힘을 모은 덕분에 아이가
건강하게 나왔습니다.
그에게 오지는 피해야 할 불편한 곳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생명이 숨 쉬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평생 수많은 생명을 살렸으나,
정작 자신을 위한 휴가는 단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는 7월 휴가 때에도 어김없이
아프리카 의료 봉사를 떠납니다.
멈춰 선 생명의 길 위에
다시 희망을 흐르게 하는 사람,
바로 박관태 의사입니다.
- 매일경제 신문 참조 -

전 세계 의료인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쓰이는
제네바 선언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아직도 많은 의료인은 현장에서
땀 흘리며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명감을 가지고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의료인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