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 학습지 방문교사로 일하는 효진 씨는
2002년 채소 도매상을 하는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효진 씨는 자신이 시부모님을 모시겠다고 선뜻 나섰고,
함께 생활하며 남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정을 일구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 고부지간을 보며 '딸 같은 며느리',
'친정 엄마 같은 시어머니'라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4년째 간경화로 앓던 시어머니가
간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간이식을 받지 못하면 남은 시간이 6개월뿐"이라는
시한부 선고였습니다.
가족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간이식뿐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기꺼이 검사에 응했지만,
안타깝게도 삼 형제는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시아버지는 혈액형이 달라 기증할 수 없었습니다.
손위 동서 또한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술대에 오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희망이 꺼져가던 순간,
효진 씨는 실낱같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몰래 홀로 병원을 찾아가
조직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가족 중 유일하게 이식 가능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완강히 수술을 반대했습니다.
"앞으로 아이도 낳아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는
네가 나 때문에 몸을 망치면 절대로 안 된다."
자신보다 며느리의 앞날을 먼저 걱정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에 효진 씨는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러나 효진 씨는 포기하지 않고 시어머니를 끊임없이 설득했고,
친정 부모님을 찾아가 진심 어린 이해와 허락을 구했습니다.
효진 씨의 간절함과 끈질긴 설득 끝에
마침내 두 집안 어른 모두 수술을 허락했습니다.
2004년 3월.
10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효진 씨는 자신의 간 60%를 시어머니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긴 수술이 끝나고 마침내 눈을 뜬 시어머니가
효진 씨를 보며 가장 먼저 건넨 한마디는
바로 "사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효진 씨가 자필로 작성했던 '장기 기증 사유서'에는
오직 한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분을 사랑합니다."

모든 허물마저 감싸안는 위대한 사랑은
결코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존중하고 아껴줄 때,
사랑은 비로소 깊고 단단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