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비드란?
수비드란 위 사진처럼 진공 포장된 음식을 물속에 넣고 동일한 시간으로 오랫동안 가열해 익히는 조리법입니다. 최소 30분에서 최대 72시간까지 음식을 수온으로 익혀 요리하죠. 수비드는 1799년 한 영국 과학자가 그 개념을 발견했는데 실질적으로 사용된 건 1970년대부터라고 해요. 꽤 오래된 조리법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선 이유는 이 수비드 조리법이 스타 쉐프와 연예인들을 통해 지난해부터 서야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요리를 잘 모르지만 수비드 조리법이 왜 우리나라에 늦게 소개되었는지에 대해선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먹는 시간에 비해 조리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자판기에서 커피 나오는 2분도 못 기다려 기기에 손 넣고 기다리는 한국인인데, 10분이면 다 먹을 스테이크를 12시간이나 익혀야 하는 수비드 조리법이 우리 민족에게 과연 잘 맞았을까?
그런데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명 쉐프들이 애용하고, 요즘에는 수비 드머신이라는 기기가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어 사용되는 것을 보면 분명 이 단점을 극복하는 장점이 있을 듯합니다. 수비드 전문가 및 수비드 조리를 경험해본 사람들에 따르면 수비드 요리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저온에서 오랜 시간 음식을 익혀서 고기가 굉장히 부드럽다.
2) 물로 데우기 때문에 음식이 동일한 수준으로 골고루 익는다.
3) 조리시간 내내 딴짓을 해도 음식이 타거나 실패할 일이 없다.
4) 물로 조리해서 영양소 파괴가 적다.
리뷰를 위해 굳은 머리를 굴려 수비드를 공부해봤는데 우리가 주로 섭취하는 고기에는 콜라겐을 비롯한 다양한 단백질이 있는데 이 단백질은 열을 가하면 변형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콜라겐은 고기를 부드럽고 쫄깃쫄깃하게 만들어주는데, 문제는 반갑지 않은 변형 성질을 가진 단백질도 있어서 그 단백질은 열을 받으면 고기를 질기기 만든다고 해요. 수비드 머신은 설정된 온도를 정확히 찾아내 동일하게 유지해 고기를 익히기 때문에 고기를 부드럽게만 익히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기 마니아치고 수비드를 한 번도 안 접해본 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도 이번 기회에 수비드 머신으로 수비드 세계를 경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늘 제가 체험해볼 수비드 머신은 독일제 수비드 머신인 'WMF Lono 2in1' 제품입니다.
- 한 대로 수비드와 슬로우쿡을 즐기는 'WMF Lono 2in1 수비드 머신'
우리나라 주부들에게도 유명한 독일 주방가전 명가 WMF의 수비드 머신입니다. WMF제품은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이 특징인데, 수비드 머신도 세련되게 나왔네요.
수비드를 하려면 물 온도를 설정 및 유지해 주고, 물을 순환해 주는 수비드 기기와 물을 담는 수조(물탱크)가 기본으로 필요한데요, 이 제품은 수조와 수비드 머신이 함께 있어 굳이 수조를 별도로 준비할 필요 없이 기기 자체로 수비드를 할 수 있는 올인원 제품입니다.
<WMF Lono 2in1 스펙>
온도는 최저 35에서 최고 90도까지 설정할 수 있고, 타이머도 최대 72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설정 온도와 시간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LC 디스플레이가 탑재돼 있으며, 수조 용량도 6L라 2~3인 식구가 먹기에 적당한 양의 요리를 한 번에 조리할 수 있습니다. 수조 및 찜 트레이는 환경호르몬 걱정 없는 BPA Free 소재로 제작됐으며, 소비전력은 1500W, 전압도 220v를 사용해 별도의 변압기나 돼지코 없이 국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슬로우쿡이 가능한 찜기 트레이도 함께 제공해 수비드 외에 다양한 요리 활용도 가능한 점도 특징입니다.
독일 주방가전 명가에서 만든 제품답게 온도 정확도가 높고 제어도 정교해 해외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하네요. 아마존에서는 주방가전 카테고리에서 19위에 랭크됐으며 평점도 4.5점으로 우수한 편입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아서 해외 직구를 통해서만 살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가격이 비쌉니다. 다나와에서 최저가 구매대행을 해도 253,610원이네요.
하지만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구성품 및 디테일&조작법
> 구성품
제품 구성입니다. 온도 제어가 가능한 본체와 수조, 수조 뚜껑, 찜기, 야채와 육류를 안정적으로 고정해 주는 홀더, 사용 설명서와 간단한 수비드 레시피로 되어 있습니다.
설명서와 수비드 레시피는 외.국.어입니다. 저는 0개국어 능력자라 냄비 받침대로 쓸 것 같습니다. 해외 직구 제품이다 보니 설명서에 한국어 해설이 없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사용법이 직관적이고 간단해 적응이 어렵진 않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사용법을 한번 설명해드리면 쉽게 쓸 수 있을 듯합니다.
> 디테일 - 기기 본체
수비드를 제어할 수 있는 본체입니다. 단독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수조와 함께 사용해야 합니다. 올인원 제품이라 당연히 다른 수조와는 호환되지 않고요, 이 기기 전용 수조만 사용 가능합니다. 외부는 WMF 독자 소재인 크로마간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깔끔하고 고급스럽습니다.
상단 전원 버튼을 누르면 디스플레이에 설정 온도와 타이머가 뜨는데요, 이는 오른쪽 조그를 돌려서 세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설정 온도는 현재 수온이 아닌 하려는 요리의 목표 온도를 말합니다. 두 번째 버튼은 온도, 시간 설정 후 작동과 멈춤 버튼, 마지막 세 번째 버튼은 설정 버튼인데 한 번 누르면 수비드와 슬로우쿡 설정을, 3초간 누르면 섭씨/화씨 전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리뷰를 하면서 세 번째 버튼은 거의 사용할 일이 없더라고요.
조작법을 gif로 찍어봤습니다. 전원 버튼을 눌러 작동시킨 뒤 조그를 돌려 목표 온도를 설정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조그를 꾹 누르면 됩니다. 그러면 희망 시간을 설정할 수 있어요. 온도와 시간을 설정했으면 두 번째 작동 버튼을 눌러 제품을 동작 시킵니다. 중간에 멈추고 싶으면 두 번째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됩니다.
버튼을 누르면 물을 가열하는데, 이때는 타이머가 변하지 않습니다. 물이 끓고, 목표 온도에 도달하면 '삐' 알람이 울리며 그때부터 타이머가 시작됩니다.
본체 상단입니다. 여기에 수조를 올려서 사용하면 되는데요, 무작정 올려놓으면 안 되고 상단에 있는 물 순환 펌프와 증기배출구 홀에 맞춰서 도킹해야 합니다.
6L 수조와 결합한 모습입니다. 가로 32.5cm, 세로 15.5cm, 높이 39.5cm이며 케이블 길이는 1.2m입니다. 제품 무게는 스펙상 2.59kg이었는데 실제 측정했을 때는 3.2kg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 체중계가 전자식이라 실제 용량과는 차이가 날 수 있으니 '아주 가볍게 들고 다닐 무게는 아니다' 정도로 참고해 주세요.
> 디테일 - 수조 (소재와 용량)
WMF 수비드 머신 전용 수조입니다. 소재는 트라이탄 플라스틱입니다. 트라이탄은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인 BPA가 전혀 검출되지 않는 안심 소재입니다. 아기들이 사용하는 젖병도 이 소재로 제작되어요. 트라이탄은 유리보다 가볍도 내구성도 뛰어나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에 사용해도 깨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이론적인 내용이고 제가 직접 해본 건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분들 계시면 보충 설명 부탁드립니다 ^^;;
수비드를 하는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수조 용량을 체크해보겠습니다. 앞서 설명해드렸다시피 이 제품은 수조가 함께 있는 일체형입니다. 그래서 별도로 수비드 할 용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지만, 용량이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죠. 이 제품 수조는 6L 용량으로 2~3인분 요리를 하기 적당한 수준입니다.
집에서 많이 먹는 김으로 용량을 가늠해봤을 땐 12개 김이 들어갈 크기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밀봉팩을 꽉 채워서 수비드를 하는 분은 없을 테니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로 20cm, 세로 25cm 지퍼백을 걸쳐보았습니다. 만약 지퍼백에 음식을 가득 채웠을 경우 4~5봉지 정도 넣을 수 있는 용량으로 추정됩니다.
보통 100g 정도로 음식을 소분해 수비드를 하는 분들이 많다 하여 유사한 무게의 사과즙으로 용량을 체크해보았습니다.
후술하겠지만 WMF 수비드 머신은 진공팩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홀더를 제공하는데 홀더 칸이 딱 5개입니다. 6L 수조에서는 5개 식자재를 조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가 봅니다. 사과즙 5팩을 넣었더니 수조가 적당히 찬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디테일 - 홀더&찜기(슬로우쿡 트레이)
WMF 수비드머신은 야채와 고기 밀봉팩을 고정해주는 홀더와 찜기도 옵션으로 제공합니다.
홀더입니다. 전날 괴수 영화를 보고 잤더니 몹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비주얼 같네요. 수비드를 하다 보면 밀봉팩이 떠오르거나 제멋대로 물속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 홀더를 통해 밀봉팩을 안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습니다.
사진처럼 상단 고정대를 분리한 뒤 밀봉팩을 각 철대에 하나씩 올려두고, 다시 고정대를 조립하면 됩니다.
슬로우쿡을 할 수 있는 찜기입니다. 화상 방지를 위해 트레이 끝에는 열을 차단하는 손잡이가 부착돼 있습니다. 이 역시 WMF 독자 소재인 크로마간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습니다. 참고로 이 소재는 크롬 함유량이 많아서 부식이 없고 장기간 사용해도 광택과 형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역시 식기세척기에서 사용할 수 있으나 전자레인지에서는 사용 안 됩니다.
수조에 넣으면 적당한 위치에 맞춰 알아서 고정됩니다. 찜기 사용 시 음식물 높이에 맞춰 물을 채워 넣어 요리하면 됩니다. 이 찜기를 사용해 만든 계란찜도 리뷰 뒷부분에서 공개되니 계속 읽어주세요 ^^
- 기본 성능 테스트(가열시간/수온 유지/물 순환 범위/소음)
> 설정온도 도달 시간 측정
WMF 수비드 머신은 35~90도까지 온도 설정이 가능합니다. 만약 내가 60도 온도에서 닭고기를 3시간 조리 하고 싶다면 조그를 돌려 60도, 3h로 수비드 설정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60도로 설정한다고 물이 곧바로 '짜잔' 60도가 되는 게 아니라 가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전기포트로 물 끓일 때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요.
이 수비드 머신은 1500W라는 높은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설정 온도까지 도달이 빠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 걸리나 측정해보았습니다. 온도는 35도에서 시작해 10도 단위로 측정해보았고, 정확한 시간 측정을 위해 매 온도마다 물을 새롭게 교체했습니다.
*최고 온도가 90도인 관계로 마지막 테스트는 15도 높은 90도로 실험함
6L에 달하는 물을 6번이나 교체했더니 팔이 후들거리네요 ㅠㅠ 테스트 후, 당연한 결과지만 설정 온도가 낮을 때는 가열 시간이 5~6분 내외로 짧은 반면 설정 온도가 높으면 그만큼 가열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55도부터는 가열시간이 이전 대비 두 배 이상 길어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네요.
> 수온 유지 시간
수비드는 동일한 온도에서 장시간 음식을 가열하기 때문에 수온을 얼마나 정확하게, 동일하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WMF 수비드 머신은 정교한 온도 설정과 유지로 수비드가 잘 되는 기계라는 후기가 많지만, 내 눈으로 보는 게 아닌 이상 100% 신뢰하긴 어렵죠. 그래서 탐침 온도계를 사용해 수온을 함께 측정해보았습니다. 물론 제가 사용하는 탐침 온도계는 전문가용이 아니라 수비드 머신에 내장된 온도계보다 덜 정확할 수 있으니, 0.5~1도 정도 오차는 관대히 봐주시길 바랍니다 ^^;
우선 앞에서 진행한 온도 도달 시간 테스트에서 탐침 온도계를 함께 사용했는데, 기기의 온도와 탐침 온도계에 표시된 온도 차는 0.5~1도 정도로 크지 않았습니다. 목표 온도에 도달하면 기기에서 '삐' 알람이 울리며 타이머가 시작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55도로 설정하고 탐침 온도계를 주시했더니 55도로 온도가 바뀌고 30초 내로 알람이 울리며 타이머가 작동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 온도가 장시간 동일하게 유지되는지도 확인해봐야겠죠? 90도에서 수비드머신을 3시간 동안 작동시킨 뒤 약 1시간 단위로 온도가 변화하는지, 유지되는지 여부를 체크해보았습니다.
4시부터 측정을 시작했습니다. 기기에 표시된 온도는 90도인데 탐침 온도계는 91도이네요. 그 후 3시간 동안 온도 변화를 관찰했는데 2시간 뒤 0.1도 상승, 3시간 뒤 0.1도 하락된 걸 빼고는 변화가 없습니다. 동일 온도 유지 성능에는 걱정이 없겠네요.
> 물 순환 범위
수비드 머신은 수조 내 모든 물이 동일 온도를 유지하도록 물을 고루 순환시키는 성능도 중요합니다. WMF 수비드 머신은 수조 좌측에 공기 순환 펌프가 장착돼 있는데요, 이미지를 자세히 보면 저기서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수조 내 물이 전체적으로 순환돼 온도가 상하좌우 고루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앞서 진행한 테스트를 통해 WMF 수비드머신의 온도 유지 성능은 입증된 듯하나,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이 기기의 물 순환 성능은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해보려 합니다. 테스트는 잘게 자른 색종이를 수조에 넣은 뒤 물의 흐름에 맞춰 색종이가 어느 정도 분산되며 움직이는지를 관찰할 것입니다.
목표 온도를 65도로 설정한 뒤 수비드 머신을 작동시켰습니다. 물 순환 펌프가 열일하며 공기 방울이 생성되고 색종이들도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공기방울이 주변 물을 수조 끝으로 밀어내며 색종이들이 수조 벽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혹시 목표 온도에 도달한 뒤 가열을 멈추고 수온을 유지하는 단계에서 물 순환 파워에 변화가 있을까 싶어서 계속 관찰해보았는데, 별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물 순환 기능은 가열이든, 수온 유지 단계든 동일한 파워를 내는 것 같네요. 가열 시간에는 음식을 익히지 않으니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물 순환 성능이 약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어쩌면 가열 과정에도 수조의 고른 온도 전달을 위해 물 순환 기능이 계속 같은 파워로 작동한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 소음 테스트
수비드 머신은 작동 시 약간의 소음이 발생합니다. 아마 에어펌프 소리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다고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고 초음파 가습기와 유사한 수준의 소음입니다. 소음 측정 앱으로 측정해보니 26~28 데시벨 소음이 측정되었는데 이는 모깃소리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깃소리는 살인을 부르는 소리 아닌가요?;; 아무튼 매우 조용하기 때문에 침실에 놓고 기기를 밤새 돌려도 거슬리지 않습니다.
- 전통 조리법 vs 수비드 : 닭가슴살
이제 리뷰의 하이라이트인 수비드 요리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퍽퍽함의 대명사인 닭가슴살 요리입니다. 실험은 비슷한 질량과 크기의 닭가슴살 두 덩이를 준비해 하나는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하고, 하나는 전통적인 구이 방식으로 조리해 식감과 맛 등을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참고로 닭가슴살을 생으로 조리하면 맛이 떨어질 듯하여 둘 다 같은 조미료로 양념했습니다.
<진공포장기 없이 진공 포장하는 방법>
수비드 요리를 하려면 식자재를 진공포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전용 진공포장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없는 사람들도 많죠. 그렇다고 일부러 구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퍼백에 식자재를 넣고 입구를 3cm 정도 남긴 뒤 빨대를 꽂아 공기를 빨아들이고 밀봉하거나, 찬물에 봉지를 넣어 수압으로 봉지 속 공기를 밀어내 밀봉하는 방법이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빨대보다는 찬물에 지퍼백을 넣어 수압으로 공기를 밀어내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일단 빨대는 위생적이지 못하고요, 30대 중후반 남성분들은 이거 하다 뒷골이 심하게 당길 수 있습니다. 한 10번 정도 공기를 빨아들이다 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현타가 오기도 하고요...
자, 진공포장기 없이 수작업(?)으로 훌륭한 밀봉팩이 완성됐습니다. 왼쪽이 빨대 밀봉, 오른쪽이 찬물 밀봉입니다. 이 밀봉팩을 홀더에 끼운 뒤 수조에 넣고 온도와 시간을 설정합니다. 수비드 레시피를 참고해 이상적인 닭가슴살 조리 온도인 63.5도를 설정하고 타이머를 2시간 30분으로 맞췄습니다.
가열 동안에도 닭가슴살 표면이 익어 하얗게 변했네요. 2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첫 번째 수비드 요리가 완성됐습니다. 고기 온도도 제가 설정한 63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온도입니다.
수비드 닭가슴살을 잘라보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그 퍽퍽한 닭가슴살이 맞나요? 이가 나간 저질 칼날의 칼질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부드럽게 커팅 됩니다.
수비드 닭가슴살 단면입니다. 전체적으로 뽀얗게 잘 익었네요. 모르고 보면 생선살 같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조리 방식을 사용한 구이 닭가슴살입니다. 온도는 68도로 측정되었네요. 커팅 시 느낌은 굉장히 뻑뻑했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고기의 질김이 느껴지죠?
겉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졌고 속살은 뽀얗습니다. 하지만 수비드 닭가슴살과 비교하면 살의 결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을 보아 굉장히 뻑뻑하고 질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직접 시식 후 평가입니다. 우선 닭가슴살 조리만 봤을 때 제 점수는요... 수비드 닭가슴살의 부드러움은 인정 + 인정하지만 맛은 전통 구이 방식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질긴 식감에 큰 거부감이 없을 뿐더러 강한 양념 맛과 마이야르 반응이 있는 겉바속촉을 좋아하기 때문에, 수비드 닭가슴살의 밍밍한 맛과 지나친 부드러움은 제 취향과 거리가 멀더라고요. 그래서 수비드 후 팬 시스닝으로 아쉬움을 더해주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 전통 조리법 vs 수비드 : 가니쉬(채소)
이번에는 각종 채소를 수비드와 전통 조리방식으로 익혀 비교해보겠습니다. 닭가슴살 실험에서의 아쉬움을 채소를 곁들이면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채소는 가니쉬시 콘셉트로 조리하였습니다.
채소는 85도 온도에서 30분간 수비드 하였습니다. 참고로 채소는 고기보다 가볍다 보니 자꾸 홀더가 물 위로 떠서 그릇으로 눌러주었습니다.
30분 뒤 수비드로 익힌 채소입니다. 우리가 사우나 하고 나오면 이런 비주얼일까요? 물로 조리해서 그런지 굉장히 촉촉하고 표면도 물렁물렁 부드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브로콜리의 경우 본연의 싱그러운 초록색 대신 식욕을 잃게 하는 칙칙한 녹색으로 변해버렸네요.
전통적인 조리방식인 구이로 채소를 익혀보았습니다. 컬러와 비주얼은 확실히 이쪽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네요.
수비드 채소와 비교하니 식욕을 돋우는 화사한 비주얼이 돋보입니다. 기름이 주는 광택도 한몫했네요.
채소 시식 결과 색감을 잃은 비주얼은 아쉬웠지만 수비드 조리 방식의 승이었습니다. 채소의 경우 호불호가 클 것 같은데요, 저처럼 채소의 딱딱한 식감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물렁물렁 부드러운 수비드 채소가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식감이 부드럽고 양파나 파프리카의 경우 자극적인 매운맛도 덜해 먹기가 매우 수월했습니다. 전 그래서 구이로 조리한 닭가슴살과 수비드 채소 조합으로 먹게 되더라고요. 단 채소 특유의 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수비드 채소가 불호가 될 듯합니다.
- 전통 조리법 vs 수비드 : 수육
요즘 김장김치가 적당히 익어서 수육과 싸먹기 참 좋죠? 그래서 세 번째 요리 테스트는 수육으로 진행해봅니다. 수육 테스트 역시 전통적인 조리방식인 찜과 수비드 두 가지로 비교 진행했습니다.
고기 두께가 있다 보니 수육은 85도 온도에서 12시간 조리로 설정해두었습니다. 자기 전에 작동시켜놓으니 좋더라고요.
다음날 눈을 뜨니 수육이 끔찍한 비주얼로 익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샌 줄 알고 놀랐는데 기름과 육즙이 고기 밖으로 나온 거더라고요.
역시 부드럽게 커팅 됩니다. 심지어 집게로 집어 들어 올리기만 해도 고기가 스스로 부서질 정도더라고요.
마치 돼지고기 결이 하나하나 섬세하게 익은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기존 방식대로 조리한 수육도 꽤 소프트한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수비드로 조리한 수육을 보니 '이게 진정 소프트 푸드구나' 감탄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수육 온도는 84.2도로 제가 설정한 85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조리한 수육입니다. 수비드 수육과 비교하면 탄력적이죠? 고기도 인정사정 없이 흔들어도 수비드처럼 힘없게 찢어지지 않습니다.
형태가 무너지지 않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수육 비주얼 그대로입니다. 수비드 수육이 섬세한 여성이라면 전통방식의 수육은 상남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우선 고기만 먹어봤을 땐 수비드 수육 쪽이 더 맛있었습니다. 육질 자체가 닭가슴살보다 덜 뻑뻑해서 양념이 잘 스며든 것인지 수비드였지만 간이 밍밍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습니다. 수비드 닭가슴살이 물컹거리는 생선살 같은 느낌이라면 수비드 수육은 푸딩 같은 식감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고기만 먹어선 2% 아쉬우니 곁들일 채소도 조리를 시작합니다. 수육이니 김치도 함께 수비드로 익혀보았습니다.
왼쪽은 수비드로 익힌 김치와 수육, 오른쪽은 전통 방식으로 익힌 수육과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신김치입니다.
시식 결과 수육은 수비드 승이었지만 김치는 역시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신김치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우선 수비드 김치는 김치찌개에서 건져낸 익은 김치의 맛, 식감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부드러운 수육에 김치마저 부드러워지니 오히려 매력이 반감되더라고요. 수육은 역시 '고부김아(고기는 부드럽고 김치는 아삭)'가 정답인 듯합니다.
- 슬로우쿡 : 계란찜
이번에는 찜기를 사용한 슬로우쿡 '계란찜'에 도전해봅니다.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WMF 수비드 머신은 찜기를 사용한 슬로우쿡도 가능한 기기입니다. 3번째 버튼을 누르면 슬로우쿡 조리가 가능한데, 테스트 결과 수비드 제어와 큰 차이가 없어서 저는 수비드 조작법으로 계란찜을 조리했습니다.
찜기가 크다 보니 계란 6개를 풀어야 했습니다. 설정은 90도에서 2시간 타이머로 세팅했습니다.
두 시간 후 계란찜 표면이 노릇노릇하게 익었습니다. 온도 측정 결과 설정 온도보다 9도 가까이 낮은 81.5도네요. 수비드만큼 물을 수조에 가득 채우지 않아서일까요?
슬로우쿡으로 완성한 계란찜도 부드럽습니다. 커스터드 푸딩처럼 말랑말랑하면서 쫄깃쫄깃 탄성은 유지하고 있는 점이 꽤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슬로우쿡으로 계란찜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듯합니다. 일단 설거지가 힘들어요. 5시간 이상 애벌을 하였는데도 음식 잔여물이 잘 닦지 않아서 철 수세미로 얼마나 문질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식감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2시간이나 기다려서 먹을 만큼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소비전력 측정
이번 리뷰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걱정했던 전기 요금을 측정해보기로 했습니다. WMF 수비드 머신은 가열 시 최대 1500W 전력을 소모하는 기기입니다. 전력 소모가 크기로 유명한 드라이어가 보통 1000~1500W를 사용하니 이 수비드 머신도 결코 적은 전력을 소모한다고 말할 수 없죠. 특히 수비드 머신은 장시간 조리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전력이 소모될까 궁금했습니다.
우선 목표 온도별 소비 전력과 온도 유지 전력을 측정한 결과, 가열까지는 평균적으로 1430~1460W를 소모하며, 온도를 유지하는 데는 6W 전력을 소모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고로 목표 온도별 가열 시간 측정 테스트에서 각 온도별로 가열 시간이 최저 5분에서 최고 27분이 걸린다는 것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를 반영하여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한 달간 수비드 머신을 사용하면 전기 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계산해보았습니다.
<수비드머신(월 10회, 9시간 조리 기준) 월평균 전기요금은?>
*다음 전기요금 산출은 한국 전력공사 '사용제품 요금계산기'를 참고하였음을 알려드리며 실제 사용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총평
이렇게 나흘에 걸친 WMF 수비드 머신 체험이 끝났습니다. 100년 이상 된 독일 주방가전 명가에서 만든 제품답게 WMF 수비드머신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 높습니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좁은 주방에서도 사용하기 적당한 크기의 사이즈, LC 화면을 통한 직관적인 컨디션 체크와 손쉬운 사용법, 무엇보다 수조와 수비드 머신 일체형이라는 매리트가 사용 편의성과 요리 간편성을 크게 높여주었습니다. 슬로우쿡이 가능한 찜기 제공도 매력적이었고요.
특히 수비드는 물속에서 장시간 음식을 가열하는 조리방식이다 보니 용기 소재에서 환경 호르몬이 나오는 건 아닐까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BPA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소재를 사용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만족스러웠습니다. 여기에 고급스러운 스테인리스 소재 외관은 요즘 젊은 부부들이 선호하는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릴 듯합니다. 성능과 디자인 모두 사로잡은 백 점 만점의 수비드 머신이라 할 수 있는 셈이죠. 가격이 좀 비싼 점이 흠이긴 하지만 수비드 요리를 즐기는 진정한 미식가들에게는 결코 아깝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국내에 정식 수입되면 프리미엄급 기기로 수비드 마니아들 사이에 빠르게 자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비드라는 조리법 자체가 저 같은 요알못에게는 썩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죠. 부드러운 식감은 확실히 인정합니다만, 식감이라는 것 자체가 개인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데다 10분이면 끝날 조리를 2~10시간 이상 투자하는 요리법이 저같이 성질 급하고 인스턴트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ㅠㅠ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조리 때마다 일회용 진공팩을 사용해야 하는 점도 저와는 맞지 않고요. 물론 이는 수비드 전용 조리 용기를 사용하면 해결됩니다.
수비드 머신이라는 제품이 저에겐 매우 레벨이 높은 기기였기에, 이번 리뷰가 쉽진 않았습니다. 만약 요리를 좋아하는 분이었다면 다른 리뷰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최대한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평을 내려보자면 WMF 수비드 머신은 분명 비싼 값을 하는 올인원 제품이라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올인원 제품이 주는 한계(수조의 크기 등)상 간편히 빠르게 수비드 요리를 하려는 분들이나, 1~2인 가구 정도로 수비드 요리를 주식만큼 자주 즐겨먹는 분들에게 만족도가 더 높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번에도 긴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사용 후기는 다나와로부터 원고료를 제공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