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는 게임 소재로 너무 많이 써먹혔다. 솔직히 말하면 제목에 '제우스'나 '아테나'가 들어가는 순간, 손가락이 먼저 스크롤을 내린다. 어차피 황금 갑옷 입고 괴물 잡는 구조 아닐까 싶어서.
그런데 얼마 전 트레일러 하나를 보다가 손이 멈췄다. 신화 세계가 '붕괴'되는 방향으로 설정을 뒤집었는데, 그게 예고편 수준이 아니라 실제 인게임 화면이라는 게 의외였다. 컴투스와 에이버튼이 개발 중인 제우스: 오만의 신 얘기다.


세계관의 출발점은 제우스의 오만이다. 신들의 왕이 저지른 교만이 세계 자체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플레이어는 그 혼돈 속에 '신의 그릇' 후보로 소환된다. 판도라의 상자, 티탄 12신, 크로노스의 귀환이 서사의 주요 축을 이룬다.

큰 틀은 익숙한 그리스 신화지만, '신이 올림포스를 지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 질서 자체가 무너지는 과정'을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이 다르다. MMORPG에서 이 '균열'이라는 설정이 대규모 전투나 필드 구성과 어떻게 연결될지가 앞으로 가장 주목할 지점이다.


언리얼 엔진5 기반에 엔비디아 최신 업스케일링 기술을 얹었다. 공개된 영상에서 인상적인 건 빛 처리와 공간감인데, 넓은 필드를 배경으로 한 장면들이 컷신인지 실제 플레이 화면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다. 출시 전 단계에서 인게임 퀄리티를 이 수준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보통 트레일러는 따로 제작된 영상이고, 실제 게임 화면은 나중에 '어 이게 달랐구나'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번 공개 방식 자체가 하나의 신호로 읽힌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투는 클래스마다 싸우는 방식이 확연히 갈린다. 공중 기동을 활용하는 스타일, 마법 이펙트 중심의 원거리, 근접 타격감 위주의 구성이 각각 다른 느낌으로 표현된다.
MMORPG 전투가 단순 반복이 아니라 '볼거리'가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문데, 이 게임은 그 기준을 초반부터 꽤 높게 잡고 있다는 인상이다.


트레일러에서 화제가 된 부분 중 하나가 NPC 판도라다. 배우 박지현의 페이셜 캡처로 구현됐는데, 단순 얼굴 스캔이 아니라 실제 감정 연기를 그대로 데이터화한 방식이다. 덕분에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표정과 무게감이 일반적인 게임 NPC랑 결이 다르다. 판도라는 스토리 전반에서 플레이어의 여정과 세계의 비밀을 잇는 핵심 인물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발사 에이버튼의 김대훤 대표는 넥슨에서 18년 재직하며 프라시아 전기와 데이브 더 다이버를 성공시킨 인물이다. 에이버튼 창립 후 첫 대형 MMORPG 프로젝트가 바로 이 게임이다. 퍼블리셔는 컴투스. 출시 목표는 2026년 3분기다.

솔직히 기대작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게임은 매년 수십 개다. 그중에 실제로 기대에 값을 치르는 게임이 몇 개나 되는지는 다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제우스: 오만의 신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건, 지금까지 꺼낸 패가 허풍처럼 보이지 않아서다. 비주얼도, 세계관 설계도, 개발진 이력도 각각은 충분하고 그게 한 게임에 묶여 있다. 이제 남은 건 실제 출시가 이 기대를 쫓아가는 일이다. 2026년 3분기, 일단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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