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쟁사중에 한국부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장진호 전투이다
미국이 중국과 맞붙은 첫번째 전투이고 10배나 많은 적을 상대한 전쟁에서
비교적(?) 성공한 후퇴작전을 펼친 이유같다
요즘 625와 관련된 자료를 들척이다 보니
씁쓸한 뒷 맛을 자꾸 느끼고 있다
전시작전권을 미군에 넘겼던 전쟁이라고는 하나
총알받이 역할 이었던 선봉은 늘 우리 국군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역사는 미군 위주로 쓰여 있지
한국군의 활약상은 그저 에피소드 마냥 단편적 이야기들만
양념처럼 담겨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라고
적혀 있는데 대부분 미군을 중심으로 한 내용들 이다
그러나 함경도 방면의 북진 선봉은
북한군도 치를 떨었다는 우리의 백골부대 였었다
장진호 전투의 시작일은 중공군 포로를 잡은 10월25일 봐야 한다
이 전투부터 국군은 많은 피해를 보기 시작했으며
적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었고 그것으로 대비가 가능했음에도
대비하지 않아 수세에 몰려 밀릴수 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10월25일부터 11월27일 까지의 역사는 뭍혀 버렸다
미군사령부의 과오를 덮기 위해
우리 국군의 선발 정찰대의 희생은 평가 받지 못하고 같이 덮였다
그 기간의 희생자들 대부분은 한국군이었다
이제는 거의 돌아 가셨으니 찾을 방법도 없다
역사속에 뭍히신 그 분들은 북한군이 포로로 잡으면
바로 죽였다는 백골부대 용사들의 역사가 대부분이다
북한군이 앞의 적이 백골부대라면 전투를 피하고 후퇴하라는
명령을 사전에 받았었다는 그 부대다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지나 이제는
정부도 신경을 써서 장진으로 바꾸고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 역사에는 초신이란 일본 발음로 기억되어 있다
모든 미국 관련자료를 이제부터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것 같다
또한 장진호 전투의 역사도 10월25일부터로 바로 잡고
국군들의 활약을 더 발굴 해 역사에 기록해 놓아야 한다
그 곳에서 산화한 국군 가족들에겐
아직도 한 이고 설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역사는 우리를 주인공으로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