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먼저는 장가간다 이말이 맞는말입니다
즉 결혼문화에서 남자가 여자집에 장가든다 이표현이
결혼문화가 생기면서 생긴말입니다
결혼의 기본은 남자가 여자집에 장가를 가는게
기본적인 룰입니다
그래서 여자를 계집애.남자를 머슴아라고
부르는데 계집애는 제집에 산다말이
변화하면서 생긴말입니다
남자는 장가를 들어서 여자집에서 머슴처럼 일도하고
그러면서 머슴아가된것입니다
조선시대이전 결혼문화가 만들어지면서
남자는 결혼을 하면
여자집에가서 혼인식을 합니다
예전 영화에서보면 남자가 말을타고
여자집에가서 전통혼인식을 하는걸
보실수 있습니다
지금의 생각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시집온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결혼문화가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주자학이 들어오고
주자학의 질서에따라서 바뀌면서
남자가 중심이고 여자는 따라야한다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조금씩 바뀌면서 현재에 결혼문화가
내려오고있는것입니다
하지만 남자중심으로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여전히 결혼문화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중심적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서 장가를 든다에서
시집을 간다라고 변화가된것입니다
보통 결혼식하면 여자집에서 중심적으로
예식장이니 여러가지를 준비합니다
지금은 많이 안하지만 결혼장소도
여자쪽 가족분들이 사는곳에서
합니다
남자가 서울, 여자가 부산이면
부산에서 결혼식을 합니다
2000년이전까지는 이렇게 많이했습니다
이것또한 예전의 여자집에서 결혼식을 하는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그렇습니다
신혼여행갔다온후 여자집에 가서 하루를
자고 오는것도 전통혼례의 방식에서
조금 변형된것입니다
결혼을 하면1-2년정도
여자집에서 살다가 남자집으로 가는것이
조금씩 변화것입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로 이런게
일반적이였다고합니다
조선시대에 율곡이이도 그렇고
많은분들이 외가집에서 자라는이유도
부모가 결혼하고 여자집에서 남자가
살기에 이렇게 외가에서 자라는경우가
많은것입니다
조선시대와 그이전에는
남자가 여자집에 장가를 오면
여자집 근처에 집을 지어주고
그곳에서 살았다고합니다
율곡이이가 살았던 오죽현은
신사임당의 부모님의 집였던것이죠
율곡이이의 외할아버지도
자신의 집이아닌 사위로
결혼에서 살고있는집이라고합니다
즉 남자의 친가가 아닌 외가로
죽 이어지는것입니다
자꾸 친가쪽이 아닌 외가쪽에서
자라는것이 성리학을 받아들일
조선에서 어긋나게되면서
주자학에 여자가 남자를 따라야한다는
명분으로 친가쪽으로 많이 바꾸려고하면서
결혼문화가 많이변화가된것입니다
조선의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시킨
가장 큰이유가 양녕대군은 어릴적부터
민씨 외가에서 자라면서 외가쪽의영향을 너무많이
받는다는것입니다
그러니 이건 나중에 양녕대군이 왕이되면
이씨의조선이 아니라 민씨의조선이된다고
생각하면서 미리 싹을 잘라버린것입니다
결국은 나중에 외척정치로인해 망하게되지만요
성리학의 가부장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장가든다에서 시집간다고 바꾸려고한것입니다
그래서 결혼문화의 기본값은
장가를 든다가 맞는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