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금을 지켜라!
저는 얼마 전에 영화 한편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에 어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나는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기 전으로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말이다.
개인택시 운전사인 만섭(송강호)은 친구이자 동료인 동수의 집에서 어린 딸과 함께 월세를 내면서 단 둘이 살아갑니다. 하지만 벌이는 녹록치 않고, 월세는 점점 밀리게 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요. 그런 만섭이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통금 전까지 광주 왕복을 다녀오면 10만원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비용을 말한 외국인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었을까요. 만섭은 그 외국인 손님을 택시에 태우고 룰루랄라 신이 나서 광주행 고속도로에 오르게 됩니다. 이상하리만큼 차도 막히지 않아 콧노래도 절로 나오는데요. 그는 월세를 낼 수 있다는 기쁨에 흠뻑 취한 것 같았습니다.
한편 택시 뒷좌석에 앉은, 독일 제1공영방송 ARD 기자 피터는 여러 모로 마음이 복잡했을 거 같은데요. 그가 그의 인생을 통틀어 운명처럼 맞닥뜨릴 한 국가의 슬픔과 분노는 그들의 택시를 광주로 이끌어 갔습니다.
“광주로 가는 샛길 같은 건 없습니까?”
택시 운전사 만섭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 미션을 끝마치고 싶었던 걸까요. 밭일에 바쁜 어르신에게 길을 묻기도 합니다. 만섭은 광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검열로 인한 모든 매체가 압박을 받고 있으며, 광주로 가는 모든 길이 막혀 연락조차 거의 되지 않는 다는 건 만섭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 또한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습니다.
영화는 만섭의 시선에 따라 5.18을 바라보고 그 역사적 사실을 바라봅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용감하게 광주로 뛰어든 낯선 독일 기자 피터를 광주 시민들은 환대합니다. 또 그를 기꺼이 돕고, 정권에 희생된 시민들은 딸 걱정에 광주를 떠났던 만섭을 다시 돌아오게 만듭니다.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명치끝이 꽉 조여 오듯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유를 원하는 것이, 죽어야 할 이유로 귀결되는 것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 할 정권의 만행이었습니다. 어떻게든 택시비를 받고 싶어 기지로 검문을 뚫던 만섭과 독일 기자 피터는 허구로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이었고(김만섭의 가족 이야기는 허구다), <택시 운전사>는 5.18 민주화운동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5.18을 알리고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글을 쓰거나 노래를 만들고 드라마, 영화 등을 만들었습니다.
소설가 한강은 소설<소년이 온다>는 읽는 내내 가슴 아픈 역사를 마치 내 눈으로 직접 마주한 것처럼 진한 아픔이었습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133
작가 한강은 이 글을 “압도적 고통으로 쓴 작품”이라 했습니다. 그럼에도 더 절절하게 그들을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꾸만 자랑하고 싶은 역사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덮으려 해도 덮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우리의 지난 민주화 항쟁 5.18을 영화 <택시 운전사>는 독일기자 피터택시와 만섭, 작은 영웅들을 통해 결코 어둡게 만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나누는 유머와 그들의 사람 냄새나는 대사들은 우리가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자유를 외쳤고, 독일기자 힌츠페터는 광주의 스피커가 되었습니다. 그 일련의 사실들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세계에 알린 그 이야기가, 러닝타인 137분 내내 참 고맙고 가슴 뭉클했습니다. 힌츠페터는 2003년 제 2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용감한 한국인 택시 기사 김사복 씨와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그날의 광주와 오월의 사람들을 꼭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으니, 우리는 지금의 따뜻함에 감사하며 그들을 충분히 기리고 푸르른 하루 보내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