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고추보다 매웠던 것

흙 마당 낡은 멍석 위에
고추 무더기와 엄마가 마주 보고 앉았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고추씨가 달그락거리도록 잘 마른 것,
껍질이 눅눅하여 덜 마른 것,
병들고 벌레 먹어 희끗희끗한 희나리,
세 가지로 분류하며 고추를 고른다
붉은 무더기 고추가 작은 동산 셋으로 높아져도
손이 아리다거나 맵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 제비 먹이 달라고 서로 주등이 내밀듯
여덟 남매가 아침이면 돈 달라고 손을 내미는 날들이
간난한 살림 꾸려갈 앞날이 고추보다 매웠을 것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지만
이태에 한 번꼴로 애경사를 치러가며
못 먹어 입이 비틀어지도록 지난한 삶에도
굴하지 않던 엄마
가끔씩,
구름 속에 들어가 눈물 닦고 나온 달이
맑은 가을빛이다
-구정혜 시, <가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