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성실한 소방관이자, 존경받는 남편,
그리고 누구보다 좋은 삼 남매의 아빠였습니다.
김길영 씨는 소방관이었던 부친을 보며
자신은 그렇게 힘든 삶을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결국 소방관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의로운 삶을 살까?' 고민한 끝에
애써 피하던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몸은 고되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일도 보람되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삼 남매와 함께 희망찬 내일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3년간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으로서
성실히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3월에는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밤낮없이 사고 현장을 누비느라 지칠 만도 한데,
집에 오면 삼 남매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최선을 다해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애썼던
좋은 아빠였습니다.
이러한 아빠를 존경하는 삼 남매는
모두 앞다투어 소방관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김길영 씨는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2022년 4월, 의사와 소방관들은
코로나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김길영 씨도 코로나 감염 후유증으로 힘겨워하고 있었지만,
변변히 쉬지도 못하고 구급 환자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코로나 집단 감염으로 응급환자가 많아지면서
주간 및 야간 3교대로 근무하면서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3개월 전 아내는 말렸습니다.
이러다 병이 날까 봐 걱정된다며 휴직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데
자신까지 쉴 순 없다고 버텼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방서에 가면 나만 힘든 게 아니야.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해."
하지만, 응급 상황에 출동하던 어느 날
뇌출혈이 발생했고, 뇌가 부어오르는 뇌부종이 겹치면서
뇌는 65% 이상 기능을 잃었습니다.
좌뇌는 거의 기능이 멈췄고,
오른쪽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오른쪽 눈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히 오른쪽 다리는 재활하여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뇌출혈로 인한 마비 때문에 다리가 짧아졌고,
강직이 심해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던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착했던 남편이 쓰러지고 난 뒤
가족들은 모두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특목고에 다닐 만큼 공부를 잘했던 큰아들은
충격으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아빠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거잖아요.
더 이상 힘들게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아르바이트든 일을 해서
엄마를 돕고 싶어요."
다행히 최근에는 마음을 다잡고
대학을 가보겠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를 향하는 큰아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볼 때면 아내의 마음은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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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주기적으로 남편 치료를 위해서
병원에 방문하는데 남편은 치료를 받는 중에도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더듬더듬
이렇게 말합니다.
"아파요. 도와줘야 해요.
병원 가요. 나 소방관이에요."
여전히 자신이 소방관임을 잊지 않는
남편을 볼 때마다 아내는 오열합니다.
지금까지 치료비로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치료를 받아야 할지
기약이 없습니다.
사고가 난 지 약 1년 6개월이 지난 작년 11월,
어렵게 공무상 재해보상(이하 공상) 승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언어치료나 보행 치료 등 재활 비용의
대부분은 비급여로 분류되어 전액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내는 기적적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 준 남편이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대로 가족 모두 함께 죽자'라는
나약한 마음을 이를 악물며 버티면서
아내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밤에 부업도 하면서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을 간병합니다.
11월 9일은 '소방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