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더 이상 봄이 두렵지 않아.
"왜 두려웠었고, 왜 두렵지 않은 거야. 지금은?"
전에는 말이야. 겨울 동안 한없이 작아지고 움츠렸던 내가 버거웠어.
봄을 맞이하기가, 행복해지기가 힘들고 버거웠어.
"왜 버거웠던 거야?"
준비가 덜 됐던 것 같았어.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난 행복해도 되는 걸까?라는 물음이 자꾸만 들었어.
새소년의 난춘이라는 곡 아니? 원래 난춘은 '따뜻한 봄'이라 는 뜻으로 쓰는데,
새소년의 난춘은 ‘어지러운 봄'으로 표현했어.
힘든 날들을 겪었다고 꼭 행복한 날이 찾아올까.
결국 어지러운 겨울의 연장선이 아닐까 봄도 그랬던 것 같아.
봄이라고 얻어낸 기운은 그저 힘든 느낌을
더 느낄 수 있는 에너지만 가져다줄 뿐이었어.
"지금은?"
확실한 건 준비가 됐어. 행복할 준비. 행복해질 준비.
"준비가 됐다는 건?"
보통 마음의 준비라고 하잖아.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했다거나,
자본의 여유가 생겼다거나. 근데, 난 그냥 행복해질 준비가 된 것 같아.
행복이 찾아온다면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혹시 너도 봄이 두려웠던 적이 있니?
- 효일 저, <나 사랑하는 것과 (흘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