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시선은 도로를 향해 있지만 팔의 긴장은 풀린다. 운전이라는 행위가 노동이 아닌 감각적인 경험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2025년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를 통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 GM의 ‘슈퍼크루즈(Super Cruise)’가 도입 반년을 넘기며 한국 도로 위에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 GM테크니컬센터 코리아와 티맵 모빌리티가 함께 진행한 미디어 세션은 그 구체적인 성과와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슈퍼크루즈는 GM이 2017년 캐딜락 CT6에 처음 적용한 핸즈프리 주행 보조 시스템이다. 라이다(LiDAR) 기반의 고정밀 지도와 카메라, 레이더, GPS,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동한다. 현재 북미 기준 23개 차종에 적용되어 있으며, 2025년 기준 실제 사용자 수는 전년 대비 80% 증가한 62만 명에 달한다.
가장 압도적인 지표는 안전성이다. 지금까지 슈퍼크루즈가 기록한 누적 주행 거리는 약 8억 7,700만 킬로미터다. 놀라운 점은 이 방대한 거리 동안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모터트렌드가 실시한 핸즈프리 시스템 비교 평가에서 슈퍼크루즈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꼽힌 이유다. 심지어 악천후 상황에서도 슈퍼크루즈는 흔들림 없는 제어 능력을 보여주며 숫자가 가진 무게를 증명했다.
단순히 글로벌 제품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 아니다. GM테크니컬센터 코리아는 수만 킬로미터의 현지 주행 검증을 통해 한국 도로에 최적화된 제어 로직을 새롭게 심었다. 북미에는 없는 ‘버스 전용 차로’를 인식해 자동 차선 변경 구간에서 배제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다른 램프 진입 구간과 합류 지점의 차선 정보에 맞춰 제어 파라미터를 전반적으로 수정했다.
현재 국내에서 슈퍼크루즈를 지원하는 도로는 고속도로 포함 약 2만 3,000km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국가 보안상 해외 반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GM테크니컬센터 코리아가 관련 서버와 유지 관리 업무 전체를 국내에서 직접 담당한다. 사용자는 OTA(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서비스센터 방문 없이도 항상 최신 지도를 유지할 수 있다.
슈퍼크루즈와 함께 국내 GM 차량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티맵(TMAP) 내비게이션과 음성 비서 ‘누구(NUGU)’의 통합이다. 2,6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국내 최대 플랫폼을 선택한 이유는, 복잡한 골목과 교차로가 많은 한국 환경에서 티맵의 실시간 데이터와 정확도는 글로벌 플랫폼이 따라오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기술적 구현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GM 차량의 다양한 디스플레이 해상도와 55인치 대화면에 대응하기 위해 티맵은 ‘어댑티브 UX’를 최초로 개발했다. 단순한 화면 미러링이 아니라 차량의 센터 콘솔, 클러스터,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에 정보를 최적화하여 뿌려준다. 특히 슈퍼크루즈와의 연동이 핵심이다. 티맵에서 경로를 설정하면 핸즈프리 주행이 가능한 구간을 지도 위에 미리 시각화해준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상태(SOC)를 계산해 목적지 도달 가능 여부를 예측하고 충전소를 제안하는 지능형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슈퍼크루즈는 현재 레벨 2 단계다. GM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방 주시 의무가 해제되는 레벨 3, 즉 ‘아이즈오프(Eyes-off)’ 기술 상용화 시점을 2028년으로 공식화했다. 벤츠가 프로그램을 일시 중단하고 스텔란티스가 계획을 철회하는 등 레벨 3를 향한 글로벌 제조사들의 발걸음이 무거워진 가운데 나온 구체적인 목표다.
국내 경쟁 구도도 치열하다. 제네시스는 2026년 3분기 G90 부분변경 모델에 레벨 3 시스템인 HDP(하이웨이 드라이빙 파일럿) 탑재를 예고했다. 테슬라 FSD가 시장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GM은 ‘트러스트 퍼스트(Trust First)’라는 철학 아래 법규와 안전 요건을 완벽히 충족한 뒤 레벨 3의 문을 열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구글 지도의 국내 데이터 반출이 조건부 허용되면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2026년 2월을 기점으로 구글이 한국 지도 서비스를 고도화할 법적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GM의 내비게이션 전략에 변화를 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티맵이 보유한 20년 이상의 로컬 데이터와 실시간 교통 정보의 우위는 구글이 단기간에 넘어서기 힘든 장벽이다.
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다. 서비스 구간 확대는 정부의 주도권에 달려 있고, 3년 무료 기간 종료 후 구독 모델로의 전환에 대한 소비자 반응도 지켜봐야 한다.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의 시행착오가 보여주듯 첨단 기술일수록 안전에 대한 검증은 더욱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기술이 제도보다 앞서 나가는 시대다. 고속도로 정체 속에서 핸들을 놓고 잠시 숨을 돌리는 경험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GM이 이 편리함의 경계를 얼마나 안전하게 넓혀갈 수 있을지, 그 해답은 머지않아 한국의 도로 위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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