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곧 기술이다. 기술은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와 같은 표현이다. 지금 중국의 모든 산업이 보여준다. 자동차산업 변화는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중심의 세상이 중국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정치 현장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트럼프와 푸틴, 시진핑에 대한 평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물론 여전히 서구식 사고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오토차이나 2026은 더 이상 그런 사고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시장의 규모와 속도는 물론이고 기술에서도 서구업체들은 중국 업체들을 벤치마킹하거나 협력하고 있다. 배경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다. 언젠가는 수업료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미국의 몰락이 그런 예상을 무색케 하고 있다. 그동안 존재감이 약해졌던 서구의 오토쇼와 달리 오토차이나는 CES를 능가하는 무대로 성장했다. 글로벌오토쇼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하고 오토차이나2026의 의미를 정리해 본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사진 /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
오토쇼를 처음 간 것은 1989년 도쿄오토쇼였다. 1991년부터는 디트로이트오토쇼와 함께 LA오토쇼를 거의 매년 갔다. 이후 제네바오토쇼와 프랑크푸르트오토쇼, 파리살롱이 추가됐다. 중국에서 개최된 오토쇼는 2008년 베이징오토쇼가 처음이었다. 2000년 200만대였던 중국의 자동차 판매대수는 2005년 564만대였던 것이 2006년에는 721만대, 2007년에는 879만대, 2008년 938만대였다. 2007년 한국시장 판매대수는 127만대였다.
2008년 베이징오토쇼 전 날 행사장을 찾았었다. 전시장에는 도저히 내일 개막할 행사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도착해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흠잡을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때 중국의 속도를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때에도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쇼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주로 독일 브랜드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연히 스포트라이트는 그쪽으로 쏠렸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현대자동차 부스 옆에 싼타페의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한 중국 업체가 있었다. 책임자에게 현대차 짝퉁이 아니냐고 질문했더니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짝퉁이 아니라는 강한 어조로 답했다.
그 이후로도 약 15년 가까이를 서구 오토쇼를 중심으로 취재했다. 그 사이 디트로이트와 프랑크푸르트 오토쇼장의 복도에 자그마한 중국 브랜드 부스들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 이외 특별이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2020년을 전후해 격년으로 개최되는 베이징오토쇼와 상하이오토쇼, 즉 오토차이나가 거대한 규모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물리적 규모로는 프랑크푸르트쇼가 가장 컸었던 그동안의 상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통상적인 관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을 전후해서였다. 2013년 연간 판매 2,000만대를 돌파한 중국 자동차시장이 배경이었다. 200만대에서 2,000만대로 성장하는데 고작 13년이 걸렸다. 당시 2030년 3,000만대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5년 앞선 2025년에 3,400만대를 넘었다. 그래도 독일과 일본, 한국차의 위세는 만만치 않았었다.
그리고 2020년을 기점으로 중국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빠른 속도로 늘려갔다. 우선은 자체 시장의 규모에서 비교의 대상이 없었다. 단일 시장으로는 2014년 미국의 1,794만대가 가장 많았었다.
다만 코로나 19로 인해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아 세간의 주목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의 자동차 굴기는 계속 추진되고 있었다. 그 사이 디트로이트오토쇼가 개최 시기를 반경하는 등 우여 곡절을 겪었고 도쿄오토쇼도 규모가 크게 축소됐다. 제네바오토쇼는 아예 개최되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는 뮌헨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토 차이나 2026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전기차와 중국에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현장이었다. 17개 전시관, 총 38만 평방미터라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1,451대의 차량이 전시됐다. 그 중 세계 최초 공개 181대와 71대의 콘셉트카가 등장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 중국 제조사들은 1만 달러 수준의 보급형 도시형 자동차부터 수십억 원대 하이퍼카, 군용차급 성능의 전기 오토바이까지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중국 토종 브랜드들의 공세는 특히 전 세그먼트에서 두드러졌다. 화웨이의 초고급 브랜드 마엑스트로는 롤스로이스와 마이바흐를 정조준한 투톤 럭셔리 세단을 선보였다. 지리는 B필러가 없는 코치 도어와 라운지형 인테리어를 갖춘 레벨 4급 자율주행 로보택시 플랫폼으로 미래 이동성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둥펑의 멍시(M-Hero) 브랜드는 군용 스타일의 고성능 오프 로드 전기 SUV를, MG는 양산형 전기 로드스터 사이버스터를 통해 내연기관의 전유물이었던 고성능 및 특수 목적 시장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로봇 청소기 전문 기업조차 스포츠카 콘셉트를 들고나올 정도로 중국 내 전기차 전환 열기는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십 수년 전 짝퉁의 이미지가 강했던 중국 업체는 더 이상 없었다.
지금은 글로벌 전통 강자들이 중국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벤츠는 가격 전쟁의 대안으로 이노베이션과 현지화를 제시했다. 특히 중국 시장의 빠른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연구개발 역량을 중국에 집중하고 있다. 아우디는 중국 전용 PPE 플랫폼 기반의 E5 스포트백을 공개했고, 폭스바겐은 저가 브랜드 제타를 오프로드 스타일의 전기 SUV로 전환하며 생존 전략을 수정했다. 전기차 전환에 신중했던 토요타도 bZ5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장의 흐름에 동참했다. 반면 테슬라는 이번 쇼에 참가하지 않았다. 3년 연속 불참을 선택한 테슬라의 빈 자리는 샤오펑의 신형 플래그십 GX와 BYD의 드롭탑 하이퍼카 등 현지 경쟁자들의 화려한 신차들로 채워졌다.
중국 전기차 지배력의 근간인 배터리 기술의 약진도 압도적이었다. CATL은 1,500제곱미터 규모의 에너지 체험 구역을 통해 단 6분 만에 충전이 가능한 3세대 초 급속 충전 배터리를 선보였다. CALB와 EVE 에너지 등도 제조사 부스에 버금가는 대형 공간에서 최신 기술력을 자랑했다.
지금은 보호무역주의 뒤에 숨은 서구 제조사들이 시간을 벌고 있을 뿐, 공급망과 인프라를 장악한 중국이 산업 전체를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베이징 현장의 열기는 단순히 자동차를 파는 수준이 아니라 에너지 생태계 전체를 삼키려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테슬라가 3년 연속 불참했음에도 그 빈자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중국 토종 브랜드들의 기술적 성숙도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것이 주목을 끌었다.
다시 말해 2026 오토차이나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위계질서가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무대였다. 한때 중국에 기술을 전수하던 서구 완성차 브랜드들이 이제는 중국 스타트업 전기차 기업들의 부스를 찾아 기술을 경청하는 합작 투자 이후 시대가 본격화됐다. 오토쇼의 핵심은 제품과 기술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개막 첫날 폭스바겐의 올리버 블루메 회장이 샤오펑 부스를 방문해 허샤오펑 CEO의 설명을 경청하는 모습이 크게 주목을 끌었다. 1984년 중국 최초의 합작 법인을 세우며 중국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했던 폭스바겐은 이제 샤오펑의 지분 5%를 보유한 파트너로서 기술 전수를 받는다. 폭스바겐의 최신 전기차 ID.UNYX 08에는 샤오펑이 개발한 AI 반도체 튜링이 탑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 구현된 엔드 투 엔드 자율주행 기술은 폭스바겐의 주행 보조 성능을 중국 현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샤오미와 BYD는 기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 확장을 공식화했다. 레이쥔 샤오미 CEO는 2027년 독일 수출 계획을 발표하며 뮌헨 연구개발 센터의 역량이 집결된 신형 SUV YU7 GT를 전면에 내세웠다. 스마트폰에서 다진 생태계 구축 능력을 자동차에 이식해 유럽 시장의 틈새를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BYD는 영하 30도 극한 환경에서도 단 12분 만에 97% 충전이 가능한 2세대 블레이드 배터리 시연을 통해 북유럽과 북미 등 추운 지역 소비자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상온에서는 단 9분 만에 충전이 완료되는 이 기술은 주유와 다를 바 없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중국 내에서의 위상을 넘어 이제는 세계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높은 관세 장벽으로 막혀있던 북미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캐나다는 올해 초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6.1%로 인하하고 연간 4만 9,000대의 수입 쿼터를 도입했다.
캐나다와 미국의 자동차 안전 기준이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 기업들은 캐나다를 테스트 베드이자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한 전략적 디딤돌로 활용할 전망이다. 실제 BYD와 샤오펑 등은 이미 캐나다 시장 진출을 위한 물밑 작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지금까지 최후의 보루였으나 중국 기업들이 북미 안전 기준에 맞춘 차량을 캐나다에 공급하기 시작하면 미국 시장 진입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혼다와 닛산이 그렇듯이 존재감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제품의 혁신도 과거와 다르다.
반면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인공지능과 초고속 충전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중국의 주요 국영 기업들은 이미 외국 자본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음을 선언하며 자국 기술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만 AI를 활용한 운전자 보조 기능 등 고기능 전기차의 해외 수출 과정에서 데이터 수집 및 보안 규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중국 기업들이 현지 정부 및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이러한 법적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향후 글로벌 지배력을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이런 상상을 초월한 성장을 거듭한 중국의 자동차산업이 과연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고 세계 시장을 장악해 나갈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배터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세계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중국의 속도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여전히 유효하다.
서구 오토쇼가 인터넷의 발전으로 존재감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제품과 기술의 혁신이 없어서였다. 오토차이나는 제품과 기술 혁신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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