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 꼭 사야 할까?”
맞벌이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집안일이 늘 전쟁 같았다. 끝없이 널브러지는 장난감에, 먹고 쌓이는 설거지, 수건이고 아이 옷이고 층층이 쌓여가는 빨래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충 집안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돌린 빨래를 하나하나 털어서 널고, 어제 돌려놓은 옷들을 하나씩 개고 나면 벌써 잠을 자야 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빨래 지옥에 살고 있구나” 했다.
못내 안쓰럽다는 남편이 건조기를 주문해줬다. “건조기, 산다고 크게 달라질까?” 했다. 어차피 빨래를 너는 과정 하나만 빠진 거니, 개고 넣는 그 모든 과정이 짜증스러운 맞벌이 여자에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동그란 다이얼을 통해, 타올과 이불 등 기본적으로 맞춰진 설정값을 이용하면 사용이 쉽다.
오른쪽에 따로 설정할 수 있는 버튼은 누를 일이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오홀, 지저스(jesus)”
건조 과정 하나만 빠졌는데, ‘오홀’ 뭔가 ‘신세계’다. 우선 집 안 곳곳에 있던 두 세 개의 빨래 건조대 축소됐다. 정신없어 보이던 거실의 건조대가 창고로 들어갔고, 아주 작은 건조대 하나만 방 한 켠에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집이 훨씬 깔끔해졌다. 또 세탁이 마감된 빨래를 바로 건조기에 투입하고 저녁 드라마 한 편 볼 즈음 되면, 건조기에서 알람 소리가 난다. 다 말랐단다. 뽀송하고 따끈한 빨래를 개는데, 10여 분. 벌써 빨래 업무가 끝났다. 저녁에 하는 드라마에 예능 하나 보는 사이, 그 많은 빨래가 한 번에 정리됐다.
<빨래가 다 된 아이들 옷 무게는 5kg>
<5kg의 빨래가 다 건조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5분>
건조기 자체 내에 옷의 무게와 수분도를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 옷감의 상태에 따라 건조 시간이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옷감이 들어간 후, 센서 감지하는데 40여초가 소요됐다.>
<도톰한 차렵이불의 경우 2시간 50여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건조기를 구매한 주변인 중 “별로”, “그냥 그래”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글쎄라는 마음으로 구매했지만, 역시 “이건 무조건 사야 하는 제품”이다. 건조기를 주문할 당시, 제품 배송 기사 아저씨에게 “건조기 인기 많죠?”라고 물으니, 가전제품 중 제일 많이 나가는 게 ‘건조기’란다. 신혼집은 물론, 아이 있는 집, 어르신이 있는 집 가릴 것 없이 다 구매한단다. 역시, 신혼도 할머니도 공감할 빨래 지옥의 답은 ‘건조기’ 다.
<아이들 옷 빨래가 모두 건조된 상태>
꺼내자마자 뜨끈하면서도 뽀송한 옷들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색상, 화이트냐, 메탈이냐”
건조기를 구매할 즈음, 남편은 “우리 집은 화이트가 제일 잘 어울릴 것”이라고 했다. 메탈이 더 나은 것 같다고 하니, “세탁기가 화이트니 건조기도 화이트여야지 않느냐”고 자꾸 되물었다. 알고 보니, 기능 차이가 없는데 메탈이 화이트보다 10만 원 가량 더 비싸다. 기능 차이가 없는데 색상 차이만으로 10만 원 차이. 남편 말대로, 유혹됐다. 하지만 우리 집은 세탁기 위에 올릴 수 없는 구조여서, 집안에 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마냥 어여쁜 메탈이다. 이사를 가고, 세탁기 위에 올린다고 해도 메탈과 화이트를 겹쳐서 놓는 게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고, 배치할 때도 안 보이는 다용도실에 놓으면 된다. 그래서 결론은 메탈이었다.
<다용도실에 둘 수 없어 거실과 안방에서 제일 먼 방 한켠에 뒀다.
집안에 둔 건조기
건조기를 집안에 들여놓으면 다소 부지런해야 한다. 매번 물통을 때마다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탁기처럼 관을 뒤로 빼놓으면 건조기에서 나온 물을 밖으로 배출하면 된다. 하지만 집 안에 두면 물통에 쌓인 물을 바로바로 빼줘야 한다. 수건을 돌리고 깜빡 잊은 상태에서 겨울 이불을 돌릴 때까지 물통을 비워두지 않았더니, 건조기에서 바로 알림 소리가 났다. 물통을 비우란다. 물론 중간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물을 비우면 된다. 하지만 중간에 기능을 멈추면 옷에 건조하던 열을 다소 빼앗겨 건조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세탁기 길이만큼 길다란 물통. 한번 세탁 후 바로 비워주는 것이 좋다.
<물통을 비울 때 화장실 벽면에 살짝 기대어 놨다.>
소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 세탁기의 경우처럼 빨랫감이 돌아가는 소리가 있기 때문에 집 안에 건조기를 둘 경우, 자는 곳과 최대한 멀리 두는 것이 좋다. 우리 집은 안방과 거실에서 제일 먼 곳에 제품을 배치했다.
<밤에 혼자 돌고 있는 건조기. 새어 나오는 불빛들.>
빨래가 줄어든다?
아끼는 옷은 되도록 울코스로 돌리는 것이 낫다. 세탁기도 표준 버전과 울코스로 돌렸을 때 보풀 여부 등 옷감의 상하는 차이는 존재한다. 건조기도 마찬가지. 표준으로 삶았을 때 기모가 섞인 의류는 미세하게 줄어든다. 뜨거운 열을 가해 뽀송하면서도 깔끔하게 건조돼 세탁기에 맡긴 것 같은 기대 이상의 세탁물이 나오지만, 옷감의 종류에 따라 수축 현상은 피하지 못한다.
단, 울코스로 돌릴 경우 표준만큼 바짝 마르지는 않는다. 건조가 되었다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소중이 다뤄야 하는 옷은(새 옷, 비싼 옷, 애착하는 옷)울코스로 돌리고 건조대에 한 번 더 올려두는 것이 좋다. 방 한 켠에 작은 건조대를 마련한 것도 이 때문. 물론, 건조대에 말릴 것 무엇 하러 건조기를 샀느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건조기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옷 먼지 제거라는 매력이 있다. 특히 먼지가 잘 붙는 블랙 색상의 옷을 보면 일반적으로 건조대에 말리는 때와 비교해 먼지가 눈에 띄게 차이 난다. 굳이 먼지제거기를 사용할 일이 없다. 기본적으로 (기모 의류 포함) 울코스로 돌리고 건조대에 살짝 올려주면 깔끔한 옷을 입을 수 있다.
<내부필터와 외부필터는 빨래 직후 수시로 털어내어 물로 헹궈주는 것이 좋다.>
<두 번의 세탁 후 걸려져 나온 먼지들>
집안에 돌아다닐 수 있었던 먼지들이 이렇게 모여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작은 먼지 뿐 아니라 머리카락까지 모두 걸러져서 나온다.>
호텔 수건 부럽지 않은 뽀송함
건조기의 가장 큰 매력은 ‘수건건조’다. 그야말로 호텔 수건이라는 느낌답게 ‘뽀송’의 극치를 보여준다. 보통 수건을 건조대에 널어 말릴 경우 섬유유연제를 사용해도 빳빳해지는 게 기본. 특히 일 년 이상 사용한 오래된 수건은 뻣뻣함을 넘어 몸에 상처를 낼 것 같은 날 선 모습이 있다. 하지만 오래된 수건도 건조기에 들어갔다 나오면 보들보들하니 세상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무딘 남동생도 우리 집 수건을 써보더니, 역시 ‘건조기’가 좋긴 좋단다.
<초록색 수건은 건조대에 하룻 동안 말렸고, 분홍색 수건은 건조기(타올 기능)를 이용했다.>
육안으로 봐도 분홍색 수건이 더 부드러워 보인다. 동일한 제조사에도 만든 두 수건은 사용시기도 모두 동일하다.
<하룻밤 집 안에서 말린 수건과 건조기에서 말린 수건의 비교 영상>
뜨거운 열에 세균도 다 잡아먹었을 것 같아 아이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도 매우 뿌듯하다. 피부관리, 특히나 신경 쓰는 어머니는 수건으로 절대 얼굴을 문지르지 말라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건이라면, 흠뻑 얼굴에 가져다 대도 뭐라 이야기할 수 없을 것 다. 보들보들한 느낌이 수건을 개는 순간마저 행복하게 만든다.
건조기는 역시 있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