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대는 처음부터 질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싸운다면 역전패를 당할 확률은 낮다. 하지만 '없다'라는 말 대신 ‘낮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전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편이 예상을 웃돌 정도로 치밀한 전략을 준비해 오면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 하드디스크 시장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기의 라이벌 씨게이트와 WD의 점유율이 뒤집힌 것이다.
씨게이트, WD는 HDD 시장을 대표하는 라이벌이다. 과거에는 도시바까지 참여해 삼파전이 벌어졌지만, 현 상황에서는 다시 씨게이트, WD의 양강 구도로 돌아왔다. 원래 HDD 시장의 최강자는 씨게이트였다. 2019년 6월 이후로 점유율 50%를 넘길 때가 아주 많았다. 가끔 40%대에 진입하더라도 금방 50%대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 하드디스크 제조사별 판매량 점유율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2023년 7월까지만 해도 씨게이트 51.99%, WD 41.6%로 별다른 변화는 없었는데, 그 다음 달인 8월에 드디어 역전 드라마가 써졌다. 씨게이트가 42.08%, WD가 51.04%로 1위가 바뀐 것이다. 이후 이 결과는 2023년 10월까지 이어진다. WD가 상승세를 탔다고 볼 수 있는데, 현 상황을 보면 WD가 올 하반기를 계속 1위로 마감 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HDD의 장점은 가격 대비 용량이 저렴해 대용량 파일을 저장하기 좋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2TB 정도면 딱히 부족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량별 제품 점유율을 확인하면 심상치 않은 변동이 느껴진다. 시장의 주역이었던 2TB가 8TB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생긴 것이다.
2TB 제품은 하드디스크 용량별 판매점유율에서 최고 44% 이상 차지해 사실상 대세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래프를 보면 8TB가 이를 맹렬하게 따라붙고 있다. 8TB 제품의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8월에는 8TB 제품이 2TB 제품과 3% 미만 차이로 근접했다. 또한, 4TB 제품군도 기존 10%에 21%까지 상승했다. 하드디스크의 선호 용량이 고용량 제품군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용량별 판매량 1위 제품은 재미있게도 퐁당퐁당이다. 2TB, 8TB, 4TB, 1TB 순으로 씨게이트, WD, 씨게이트, WD가 반복된다. 이러나저러나 아직 제일 판매량이 많은 2TB 제품군은 씨게이트 BarraCuda 7200/256M (ST2000DM008, 2TB)<96,470원>이 57.28% 점유율로 1등을 차지했다. 이어 2TB의 턱 끝까지 쫓아올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8TB 제품군에서는 Western Digital WD BLUE 5640/128M (WD80EAZZ, 8TB)<171,990원>이 53.22% 점유율로 1등을 차지했다. 이어서 4TB는 도로 씨게이트 BarraCuda 5400/256M (ST4000DM004, 4TB)<124,420원>가 53.5%, 1TB는 Western Digital WD BLUE 7200/64M (WD10EZEX, 1TB)<67,570원>이 52.63%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용량대별 1위 제품은 각각 50% 이상의 점유율을 지녔다. 그래서 대표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추후 8TB 제품군과 2TB 제품군의 순위가 크로스 체인지될 수 있다.
최근 들어 하드디스크는 일자리를 많이 잃고 있다. SSD에 밀려 서서히 시장 규모가 작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HDD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용량 대비 가격이 저렴하기에 데이터 백업으로 사용하기에는 아직도 HDD 만한 것이 없다. 또한, HDD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씨게이트를 WD가 쫓아가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크로스 체인지가 일어난 후에는 다시 혼돈에 빠졌다. 씨게이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으로 보아 극심한 점유율 경쟁이 이루어질 거라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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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도형 news@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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