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I generated image @Google Gemini 2.5 Flash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반도에는 어김없이 ‘김장’이라는 특별한 계절이 찾아온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으로, 일종의 ‘국뽕 시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온 가족이 총출동하던 대규모 김장은 세대가 바뀌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김장철 판매량이 늘던 분쇄기나 다짐기 같은 주방가전은 이제 사계절 내내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소용량·다기능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고춧가루를 내거나 각종 양념을 다지는 분쇄기 시장은 지금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까? 다나와 리서치 자료를 통해 그 흐름을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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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분쇄기’의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자. 주방에서 식재료를 갈거나 다지는 가전제품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믹서기, 초고속 블렌더, 핸드 블렌더 등을 떠올린다. 이들은 식재료를 거의 액체 상태로 완전히 갈아버리는 데 특화된 제품들이다. 반면 분쇄기는 결과물이 전혀 다르다. 건고추, 견과류, 건어물 등 습식이 아닌 건식 재료를 ‘가루’ 형태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제품이다. 즉, 목적부터 용도, 구조, 결과물까지 믹서나 블렌더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가격대나 제조사 구성 역시 전혀 다른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에, 이를 명확히 구분해 인지할 필요가 있다.

분쇄기가 블렌더류와 같은 카테고리로 묶여 있어, 이들과 함께 판매량 점유율 추이를 살펴보았다. 다나와 리서치의 최근 2년간 월별 데이터에 따르면, 여전히 일반 믹서기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최근에는 약 38%에 육박하며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분쇄기의 계절적 변동이다.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11월을 전후로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하며, 일시적으로 초고속 블렌더를 제치는 경우도 나타난다. 실제로 2025년 10월 기준 데이터를 보면, 초고속 블렌더 18.4%, 분쇄기 17.15%로 두 제품군이 거의 동률 수준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즉, 평소에는 믹서·블렌더류가 주력 시장을 형성하지만, 여전히 김장철만큼은 분쇄기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부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과거 ‘대용량 김장용’이 대세였던 분쇄기 트렌드가 최근 4년 사이 소용량·상시 사용형 제품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김장용 분쇄기는 4~5ℓ 이상 대용량 제품이 주류였다. 1년치 김장을 위해 대량의 양념을 한 번에 다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시장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다. 0.5ℓ 이하의 소형 분쇄기가 4년 전에는 전체 판매량의 7.2%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49.74%로 무려 7배 이상 성장했다. 반면 4ℓ급 대형 제품은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며 예전의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이 변화는 분쇄기가 더 이상 ‘김장철 전용 가전’이 아니라, 일상 요리와 소규모 가정의 상시 조리 도구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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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량 분쇄기는 이제 채소나 고기 같은 식재료를 ‘가는’ 용도보다 ‘다지는’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된다. 이는 분쇄기가 김장을 위한 계절용 가전을 넘어, 다양한 요리를 돕는 상시 조리 도구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특히 유아용 이유식, 노인용 유동식, 볶음 요리용 재료 손질 등 일상적인 조리 과정에서 소형 분쇄기의 활용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김장 전용 분쇄기’라는 개념이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트렌드는 1인 가구의 증가와 홈쿡 인구 확산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변화로, 특히 샤크닌자를 비롯한 주요 브랜드들의 소형 분쇄기·다짐기 라인업이 시장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분쇄기의 칼날 구성 비율에서도 확인된다. 칼날은 분쇄기와 블렌더를 구분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어떤 형태의 칼날이 기본 제공되는가에 따라 제품의 용도가 달라진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은 S자형 칼날(54.3%)이다. 이 칼날은 마늘이나 생강처럼 수분이 있는 재료를 완전히 갈아 액체로 만드는 대신, 일정한 식감과 입자를 남기며 다지는 용도에 적합하다. 덕분에 양념뿐 아니라 만두속, 마파두부용 고기 다짐, 바질 페스토 등 거친 입자의 고형 식재료를 만드는 데 널리 활용된다. 반면, 일자형 칼날(29.87%)은 수분이 거의 없는 건고추, 견과류, 건어물 등을 가루 형태로 분쇄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비중으로 보면, 분쇄기를 가루 생산용보다는 식재료 다지기용으로 구매하는 소비자가 훨씬 많다는 점이 흥미롭다. 즉, 분쇄기는 이제 ‘분말 제조기’보다 식재료 손질과 요리 보조에 특화된 다용도 주방가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쇄기의 평균 가격대를 살펴보면, 약 16만 원대인 초고속 블렌더의 절반 수준으로 나타난다. 물론 5~6만 원대에 형성된 핸드 블렌더나 일반 믹서기보다는 다소 비싸지만, 초고속 블렌더에 비하면 훨씬 부담이 적어 가정용 주방가전으로 접근성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초고속 블렌더는 소음이 크고 부피가 커 보관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일반 가정에서는 쉽게 들이기 망설여지는 제품이다. 반면 소형 분쇄기는 작고 가벼우며 보관이 용이할 뿐 아니라, 최근에는 가성비까지 갖추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러한 합리적인 가격·편의성·활용성의 조합이 분쇄기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 핵심 요인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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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분쇄기는 더 이상 김장철에만 반짝 등장하는 ‘계절 한정 가전’이 아니다. 이제는 사시사철 다양한 요리를 돕는 실속형 주방가전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초고속 블렌더보다 부담 없는 가격, 뛰어난 분쇄력, 그리고 보관이 편리한 소형·경량화 디자인이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어필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먹는 즐거움’을 중시하는 우리 민족에게 김장철의 전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때 사용하던 분쇄기가 더욱 다양한 요리를 만나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제 요리가 참 편해진 시대다.
기획, 편집, 글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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