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이 서구의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건 더는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하지만 최근 BYD가 발표한 기술은 전기차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주목하게 만들 정도였다. 바로 ‘5분 충전’이라는 꿈의 기술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인 BYD는 ‘슈퍼 e-플랫폼(Super e-Platform)’을 적용한 한 L(Han L) 세단과 탕 L(Tang L) SUV를 공개했다. 이 차량들은 5분 만에 400km(중국 기준) 주행거리를 충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식 EPA 기준으로 환산해도 약 265km, 즉 테슬라 모델 Y가 15분 충전으로 추가하는 169마일보다 3배 가까이 빠른 속도다. 더 놀라운 것은 가격까지 모델 Y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BYD의 핵심 경쟁력은 배터리 기술에 있다. ‘블레이드 배터리’로 불리는 이 배터리는 내부 저항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발열 문제를 셀과 팩 수준 모두에서 효과적으로 제어했다. 미국 UC버클리의 배터리 전문가 브라이언 맥클로스키는 “BYD가 보여준 5분 충전은 매우 인상적이며, 진정한 기술적 돌파”라고 평가했다.
물론 몇 가지 한계도 존재한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 면에서 리튬삼원계(NCM) 배터리에 비해 낮기 때문에, 총 주행거리는 300마일(약 480km)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빠른 충전’이라는 사용자 경험 개선의 대가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전기 시스템이다. BYD는 1,000V, 1,000A, 1,000kW의 전기 구조를 차량에 적용했다. 이는 단일 승용차로서는 세계 최초의 1메가와트급 충전 수용 능력이다. 테슬라 모델 Y의 250kW, 루시드 그래비티의 400kW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현재까지 대부분 EV는 400V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현대 아이오닉 5, 포르쉐 마칸 전기차, 테슬라 사이버트럭 등이 800V 아키텍처로 전환했지만, 1,000V급은 기술적, 경제적 진입장벽이 높다. 특히 자동차 부품 생태계 전반이 아직 400V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대대적인 전환이 쉽지 않다.

BYD는 차량뿐 아니라 이에 맞는 1,360kW급 충전기도 함께 공개했다. 이 초급속 충전기는 한 차량에 두 개의 케이블을 동시에 연결해 5분 충전을 가능케 하며, 중국 전역에 4,000기 설치를 예고했다. 반면, 현재 미국의 DC 급속 충전 인프라는 대부분 150~350kW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른 제조사들도 이 정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속충전 자회사는 400kW 충전기를 운영 중이며, 테슬라와 켐파워 등은 이미 1메가와트급 트럭 전용 충전기를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수요와 전력망이다. 1MW급 충전소 설치는 지역 전력망 업그레이드가 필수이며, 이는 시간과 비용이 매우 크다. BYD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로그리드’ 즉, 대형 배터리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도 병행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5분 충전’이 필요한가? 일부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메르세데스의 충전 사업 CEO는 “일반 주유소에서의 평균 체류시간은 10~12분”이라며, 꼭 5분까지 줄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BYD의 기술 발표가 미국 언론의 대서특필을 받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은 곧 마케팅이기도 하며, 미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건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기 때문이다.

BYD는 이번 기술 발표로 전기차 충전 경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차에 대한 사용자 인식을 뒤바꿀 수 있는 계기다. 물론 기술적, 인프라적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과 유럽, 한국의 자동차 업계가 이 신호를 무시하는 건 무책임하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이 ‘디폴트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게 가능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이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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