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대표’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은 알파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9단은 알파고에 1국부터 3국까지 3연패를 당하며 처음 맞붙은 인공지능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그러나 최고수 바둑 기사인 이세돌 9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9단은 4국에서 헷갈리게 수순을 비틀면서 알파고가 자멸에 가까운 수를 연발하도록 유도하며 첫 승을 거머쥐었다. 하루 쉬고 열린 5국에서 이 9단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알파고와 280수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세기의 대결로 우리 사회뿐 아니라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9단과 알파고의 1국부터 5국까지를 되짚어봤다.

◆ 호기롭게 인공지능의 도전을 받아들인 이세돌 9단, 알파고에 3연패 ‘충격’
이 9단은 지난달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글 측으로부터 (알파고와의) 대국을 수락하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며 호기롭게 인공지능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는 알파고의 경기 전망에 대해 “3대 2는 아니고, 5대 0이나 4대 1 승부로 제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다”며 승리에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맞붙은 알파고는 생각보다 강했다. 알파고는 지난 9일 이 9단과의 첫 대국에서 186수 만에 불계승(기권승)을 거뒀다. 전문가들은 대국 초반 ‘초박빙’, 중반 ‘이세돌 우세’로 점쳤지만, 이 9단이 123수에서 큰 실수를 하면서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다음날 이어진 2국에서도 알파고가 이 9단에 다시 승리를 거뒀다. 이 9단은 1국과 달리 안정적으로 바둑을 두면서 경기를 풀어나갔지만, 알파고가 초읽기에 몰린 이 9단을 압박하며 막판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알파고는 경우의 수가 적어지는 종반에서 끝내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알파고는 211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이 9단은 하루 쉬고 다음날 열린 3국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나왔다. 3국 마저 지게 된다면 5번기 대국에서 패배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9단은 1국 때와 마찬가지로 흑돌을 잡고 초반부터 알파고를 거칠게 몰아붙이며 전투를 벌였다. 초반에서 승기를 잡지 않으면 경우의 수가 적어지는 후반에서는 알파고의 계산력에 밀릴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알파고는 철벽 방어로 응수했고, 이 9단의 초반 흔들기와 중반 승부수에도 전세는 역전되지 않았다. 이 9단은 176수 만에 불계패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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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2일 진행된 알파고와의 3국에서 흑을 잡고 첫 돌을 착수하고 있다. / 사진 구글 제공
◆ “이대로 질 순 없다”…이세돌 9단, 4국에서 ‘아름다운 승리’ 이끌어내
알파고는 이 9단에게 3연승을 거두며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했지만, 이 9단은 “3번의 대국에서 알파고의 약점을 파악했다”며 4국에서의 설욕을 자신했다. 4국에서 백돌을 쥔 이 9단은 초반 의외의 수를 두며 실리를 챙겼고, 중후반에 헷갈리게 수순을 비틀면서 알파고가 자멸에 가까운 수를 연발하게끔 했다. 알파고가 180수 만에 불계패를 선언하며 이 9단은 짜릿한 첫 승을 거뒀다.
이 9단은 4국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3연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까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며 “이번 1승은 이전 대회의 그 무엇과도, 앞으로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1승”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알파고는 백돌보다는 흑돌을 쥐었을 때 약하고, 상대방이 예상치도 못한 수를 던졌을 때 ‘버그’에 가까운 실수를 한다”며 알파고의 약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4국에서 백돌로 1승을 거뒀기 때문에 흑돌로 1승을 올려보겠다”며 구글 측에 “흑돌을 선택하겠다”고 제안했고,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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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5일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부인 김현진씨, 딸 혜림양의 응원을 받고 있다. / 사진 구글 제공
◆ 흑돌 쥔 이세돌 9단, 인공지능의 계산력에 도전했지만 ‘아름다운 패배’
이 9단은 15일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결인 5국에서 280수 만에 불계패(기권패)를 선언하며 다섯차례의 대결에서 1대 4로 아쉽게 패배했다. 이 9단과 알파고는 이날 5시간 넘게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흑돌을 쥐며 선을 잡은 이 9단은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초반부터 실리를 챙겨가며 알파고에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중국 규칙으로 두는 이번 대국은 백돌이 덤 7집 반을 가져가기 때문에 흑돌이 불리하다. 알파고는 이 9단의 실리 전략에 세력으로 응수했다. 이에 이 9단은 중앙에서 ‘흔들기(상대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를 시도하며 반전을 노렸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 9단이 경기 초반 확보해 놓은 집이 많아 형세는 이 9단에게 유리했다. 특히 경기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알파고가 의미없는 교환을 시도하며 잇따라 실수를 범하자 이 9단 쪽으로 승기가 기우는 듯 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경기가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끝내기에서 놀라운 계산력으로 이 9단을 압박했다. 이 9단이 초읽기 상태에서 수읽기에 몇 차례 실패하면서 알파고 쪽으로 판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앞선 대국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끝내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고, 이 9단은 280수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돌을 던지며 불계패를 선언했다.
이 9단은 알파고와 마지막 대국을 끝낸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국이 끝나서 아쉽고 또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아쉽다”며 “알파고의 실력 우위는 인정을 못하겠지만 집중력은 역시 사람이 이기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파고가 아직 완벽한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재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인효 기자 zenit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