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PC방이 모두 사라진다면? PC방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산업은 급속도로 위축될 것이며, 전국 2만여 개의 세입자를 잃은 부동산 시장 역시 큰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또 인터넷전용선을 공급하는 통신사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에 경영난을 겪어야 할 것이고 컵라면, 음료수 등 식품업계도 갑작스러운 소비감소에 매출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 인프라의 근간을 뒤 흔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문화적으로도 수십 년을 후퇴하는 현상이 도래할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20,000여 개 PC방이 있고 보유 PC만 100,000여 대로 추정된다. 100,000여 개 IP의 증발은 관련 산업 모두를 위축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은 숫자일 것이다.
그만큼 PC방은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정부의 규제, 게임사와 PC방 업계의 갈등, 사회 깊숙이 있는 부정적인 인식 등 현재 PC방이 처해있는 환경은 초창기에 고급문화를 이끌었던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양적 성장만을 고집한 것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현재 많은 PC방 업주들은 지금의 상황을 ‘위기’라고 단정 짓는다.
PC방 수는 매년 줄어가고 지출 비용은 점점 늘어가면서 각종 규제들은 더욱 강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또 사회가 PC방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PC방 업주들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노력 뒤에는 국내 IT산업의 파트너 역할로서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정하는 기업들이 늘어나야한다. 정부가 PC방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PC방 업계의 가장 큰 숙제라면 업계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들의 완화와 게임사와의 파트너십 형성, 그리고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데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PC방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상해보며 앞으로 PC방이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PC방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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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모습으로 PC방이 형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1995년 당시 홍대, 대학로, 종로 등에 위치하며 PC통신 동호인들의 모임장소로 활용 되었던 ‘인터넷 카페’를 기원으로 들 수 있겠다. 당시 ‘인터넷 카페’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서울에 불과 대 여섯 개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던 고객은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으로, 주로 PC통신 동호회의 모임장소로 많이 활용됐다. 당시로서는 PC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PC를 이용해 통신문화를 즐길 수 있었던 일부 사람들만의 고급문화이기도 했다. 시간 당 PC 사용 요금도 2,000원에서 4,000원 사이로 형성되어 있었으니 14년 전으로서는 꽤 비싼 요금이었다.
이렇게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으로 대표되는 PC통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PC통신은 1980년 후반부터 1990년 중반까지 지금의 동호회 문화, 채팅 문화, 게시판 문화 등을 형성하는 모태가 됐다. 하지만 1994년 6월 한국통신이 국내 최초로 인터넷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하고, 1995년 8월 24일에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95’로 인해 PC통신 문화가 사양길로 접어들고 인터넷 문화로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또한 ‘윈도우95’를 기반으로 한 각종 PC게임들은 현재의 PC방 모습으로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인터넷 카페’의 성공이후 PC방이 생겨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시대적 환경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PC방, 그 비약적인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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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PC방의 효시가 되었던 ‘인터넷 카페’ 이후 1998년까지 각 지역에 한 두 개씩 PC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PC방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장소였다. 당시 PC방 모습은 현재의 PC방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PC 사용이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PC방’의 모습과 가장 유사한 형태로 발전한 시기였다 할 수 있다.
하지만 PC 한 대 당 가격이 최고 사양으로 맞출 경우 200만 원에 육박하던 시절이었기에 PC 댓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 PC방이 보유한 PC 댓 수는 보편적으로 20대에서 30대 사이. 그러나 시간당 PC 사용요금이 2,000원 정도이고 현재의 PC방처럼 비용지출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수익구조가 좋은 편이었다.
또 PC방 내부 모습은 매우 단순했다.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을 밀폐하지 않았었고 PC 책상과 책상 사이의 공간도 넓어서 요즘처럼 답답하지 않았다. 물론 PC방을 운영하는데 있어 필요한 관리프로그램과 같은 형태의 소프트웨어도 개발되기 전이었다. 당시 PC방을 찾은 고객들은 인터넷 검색이나 문서작성, 프린트나 스캐너 등을 이용하기 위해 주로 방문했다. 그러던 것이 1998년 4월에 출시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게임을 이용하는 형태로의 변환기를 맞이한다. 또 같은 해에 시작된 ADSL 서비스의 출현은 PC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기여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인터넷전용선 사용료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고 PC를 구입하기에도 가격이 너무 높아 PC방을 찾는 고객은 지속적으로 늘어갔다.
더구나 1997년 국내에 발생한 외환위기는 PC방이 늘어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시대적 배경은 아직 은퇴를 하기에는 이른 나이인 40~50대의 가장들이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을 잃었던 상황이다. 결국 직장을 잃은 40~50대의 가장들이 퇴직금을 이용해 자영업에 몰리는 현상을 보이면서 PC방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1998년 이전, 대략 3,000여 개에 불과했던 전국의 PC방의 수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 20,000여 개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와 함께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2>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인 넥슨의 <바람의 나라>,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등 국내 온라인게임들이 선을 보이면서 PC방과 게임 산업이 동시에 크게 발전하는 시기였다. 또 이때에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스타크래프트>로 인해 ‘e스포츠’, ‘프로게이머’ 등 신조어와 신종직업이 생겨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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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 아니라 PC방 프랜차이즈의 출현, PC방 관리 프로그램의 출시 등 PC방과 관련된 부가적인 산업이 발전하기도 했다. 또 PC방을 이용하는 고객이 주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데에 최적화된 환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창문을 밀폐해 햇빛을 차단하고 PC방 의자는 점점 편안함을 강조하는 고급형으로 바뀌어 갔다. PC 대수도 늘어나 대형화되어 가면서 현재의 PC방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대형화 추세를 따라가지 못했던 소규모 PC방들은 생존을 위해 시간당 PC 사용요금을 내리면서 과잉경쟁이 시작되는 양상을 보였던 시기도 이때부터였다.
2002년에는 전국의 PC방 수가 무려 27,000개까지 늘어나 조금 과장되긴 하지만 ‘한집 건너 한집이 PC방’이라할 정도였다. 결국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고 경쟁에서 도태되는 PC방은 폐업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급속히 늘어난 PC방들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는 각종 규제정책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규제들은 ‘바다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게임들이 난립하면서 더욱 강화됐다.
또 PC방과 발맞춰 성장한 온라인 게임사는 게임공급을 위해 PC방을 요긴하게 활용했던 모습을 넘어서 일방적인 요금정책을 내놓는 등 PC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상업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성장만 이룬 PC방은 2002년을 기점으로 점점 쇠퇴해 가는 모습을 보였고, 1 가구 1PC 및 초고속인터넷의 보급으로 PC방 고객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해 이러한 현상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PC방이 사회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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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PC방의 모습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 인프라를 구성하게 된 배경이 되었고 국내 게임 산업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으며, 사회와 문화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PC방이 탄생한 이래 국내 IT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스타크래프트>가 PC방을 있게 했다면, PC방은 국내 IT산업을 있게 한 것이다. 더구나 IMF를 빠른 시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데에도 PC방은 큰 역할을 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단 몇 년 사이에 몇 배로 증가한 PC방은 IMF로 인해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 시켰고, 서울 용산을 필두로 한 국내 PC 산업, 모니터 산업 등에도 큰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PC방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컵라면, 햄버거, 음료수 등의 수를 감안하면 국내 식품산업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테리어, 책상, 의자, 게임, 인터넷 전용선 등 PC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든 산업에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도왔다. 이외에도 아르바이트 등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다양한 산업에 유입된 자본은 경기가 회복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IMF로 인해 허덕였던 국내 경제에 자본 흐름의 물꼬를 텄던 PC방은 이 밖에도 정부 정책에 맞춰 인터넷 산업이 발전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한 때 27,000여 개까지 증가했던 PC방은 인터넷 전용선을 소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렇게 유입된 자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 인프라가 구성되는데 기여했다. 충분한 자금력을 갖춘 통신사는 일반 가정집에도 저렴한 가격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망을 구축하게 된다.
이렇듯 PC방은 여느 업종보다 사회에 기여한 부분이 크다. 새로운 문화 창출과 정보화 시대의 일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IT산업은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온라인 인프라로 인해 사회적 문제점이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다. 방대한 양의 무분별한 정보, 악플러, 불법 콘텐츠, 사행성 게임, 게임 중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자원이 부족한 국가의 입장에서 세계 IT산업을 선도하면서, 그 기술력을 강력한 수출무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세계는 PC방과 같은 국내 온라인 인프라를 주목하고 있다. PC방도 세계에 국내 IT산업을 수출하는 기반을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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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PC방 업주들은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10년 후에도 자신이 PC방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빠른 시일에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지 모른다. PC방 업주들이 10년 후를 바라보며 PC방을 운영한다면 PC방 산업은 지금보다 더욱 발전된 형태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현재 PC방에 가장 큰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게임사와의 갈등, 사회적인 PC방 이미지의 개선으로 정부의 규제를 해쳐나가는데 있다. PC방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한다면 정부나 게임사들과의 갈등을 풀고 파트너십을 발휘해 산업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PC방 업주 뿐 아니라 정부나 게임사들의 이해와 노력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 PC방이 100대 이상 수준의 PC 대수를 보유하는 등 점차 대형화되고 기업화되고 있는 추세에서 나아가 글로벌화를 준비해야할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대형 PC방의 증가에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소규모 PC방을 보호하는데도 글로벌화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탄생 배경이 투자방식의 기업형 PC방이라면 해외로 눈을 돌려 시장을 개척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PC방 프랜차이즈 역시 해외로 눈을 돌려 PC방 산업의 글로벌화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해외의 온라인 인프라는 아직 국내시장 만큼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PC방이 생겨난 것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해외에 성공적으로 PC방 산업을 개척한다면 그에 따르는 IT산업의 기술 수출 또한 급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전망된다. 특히 온라인게임의 경우 글로벌 서비스의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사업 또한 국내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뻗어나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저변 확대는 정부도 권장하고 장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은 현재 모든 산업이 정체기에 있어 무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 개척의 한계점이 보이기 시작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IT산업은 미개척 산업이다. 그러기에 비전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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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당시 국내 PC 산업도 부흥기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 PC 산업의 모습은 환률 폭탄에 허덕이며, 줄도산의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용산으로 대표되는 국내 컴퓨터 산업이 이렇게까지 온데에는 양적성장에 만족하고 기술적인 성장과 해외 시장 개척에 소홀했던 이유가 크다. 한때 마음만 먹으면 인공위성을 만들 수 있다던 용산 상가는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다. PC방 역시 정점에 위치에 있었던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이상의 발전을 꾀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도 풀이된다. 국내 PC 산업의 실패를 본보기로 앞으로 국내 PC방 산업은 지속적인 글로벌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사회에 보여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치며…
세계 최초가 된 우리나라의 PC방. 그로인해 우리 사회는 다양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규제일환의 정부 정책들과 게임사와의 갈등,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 속에 놓여있는 것이 현재 국내 PC방이 처해있는 현실이다. 그러기에 바로 지금이 PC방 업계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며, 10년 후에 더 나은 PC방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업주들 스스로가 새로운 마인드로 무장하고 노력해 나가야할 시기다. 정부 역시 해외 시장에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PC방 산업에 깊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인식 또한 PC방이 단지 국내용 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글로벌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게임사도 마찬가지다. 해외 서비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 상황과 비교해 해외 국가들은 온라인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상황에 있다. PC방 산업의 해외 진출은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PC방의 양적 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질적 성장을 이루는 초석을 다지는데 힘써야 한다. 10년 후 세계는 우리나라 PC방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제 2의 PC방 부흥기는 국내 PC방 인프라의 내실을 다지고 해외시장 개척에서 승부수를 걸어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오늘 PC방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세계 어디에도 전례가 없는 새로운 역사의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더욱 밝은 미래를 꿈꿔야할 것이다.
아이러브PC방 이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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