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디 그로브 (사진 출처 : 인텔 홈페이지)
그는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으로 망명했고, 1963년 페어차일드 반도체에 입사했다. 그리고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운명처럼 훗날 인텔의 창업자인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를 만나게 된다. 1968년 그 둘이 인텔을 창업하면서 앤디 그로브는 인텔의 세 번째 멤버가 된다. 1979년부터는 인텔 사장으로, 1987년부터 인텔 CEO를 역임한다.
앤디 그로브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했던 편집광이었다. 하지만 이는 고인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펴내며 자신의 편집증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의 후계자는 스티브 잡스 정도라고 보면 된다.
앤디 그로브의 편집증은 좋은 쪽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방진복이다. 지금은 반도체나 칩셋 개발에 당연시 여기던 방진복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 바로 앤디 그로브다. 앤디 그로브는 반도체 공정에서 먼지의 유입을 최소화해서 수율을 끌어 올렸으며 10%에 불과하던 양산율을 50%까지 끌어 올렸다.
▲ 인텔은 세계 최초 방진복 개발을 상징하는 '버니맨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앤디 그로브는 또, 경영의 합리화와 평등 문화를 강조했던 경영자다. 인텔 내부에서 임원들의 특혜를 없앴고 자유로운 의사 개진이 가능한 문화를 만들었다. 그에 반해 강력한 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출퇴근 시간을 엄격히 통제했고, 직원들 책상 정리까지 관여할 정도였다. 또한, 인텔을 그만 둔 직원들이 반도체 관련 회사를 차리면 무차별 소송을 걸어 회사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으로도 악명 높았다. 그러나 그만큼 인텔이라는 회사를 사랑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의 애사심에 대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그는 1994년 전립선암이 진단되어 병원에 입원했는데, 수술대에서 자신을 체크하던 컴퓨터의 기종을 물었다고 한다. 의사의 대답은 286 계열 컴퓨터.
앤디 그로브는 "아직도 13년전 기종을 쓰고 있다니!"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다행히 암과의 싸움을 이겨낸 앤디 그로브는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인텔의 회장이 됐다. 이 기간 동안 인텔의 매출은 20억 달러에서 260억 달러로 13배 증가했다. 1995년 출시됐던 윈도우 95로 인해 PC 시장이 붐을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앤디 그로브가 실시했던 역사적인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 덕분이기도 하다.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은 역사상 가장 유명했고 오래 지속됐던 마케팅 캠페인 중에 하나다. 인텔은 CPU 이름에 단순한 숫자를 붙여 출시했었는데, 인텔 386이 출시됐을 때, 경쟁사가 Am386이라는 비슷한 이름의 CPU를 출시한다. 인텔은 소송을 걸었지만 지루한 소송전 끝에 "숫자는 저작권 보호가 안 된다."라는 판결을 받았다. 앤디 그로브는 이 판결이 있은 후에 1991년부터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을 시작한다. 인텔의 칩셋이 들어갔는지 확인하자는 이 캠페인은 많은 컴퓨터 광고 후반부에 삽입됐으며, 5음절의 로고음은 어디서나 울려 퍼졌다. 이 캠페인은 앤디 그로브가 회장에서 물러나는 2006년까지 계속된다.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은 부품 회사가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인식시킨 최초의 사례로 회자되기도 한다.
평생 병마와 싸웠던 앤디 그로브는 2000년 이후에는 파킨슨 병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그는 2,600만 달러를 파킨슨 병 연구에 기부하기도 했으나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7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텔을 만든 것은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라고 역사에 기록됐다. 그러나 상징적이던 두 사람을 대신해 인텔의 굳은 일을 도맡아 하며 인텔을 오늘날의 회사로 키운 것은 앤디 그로브의 업적임이 분명하다. 오늘 날의 실리콘밸리를 만든 초석이기도 하고, 무어의 법칙을 50년간 이끌어 왔던 선봉장이며, 전세계 IT기업 경영자 중에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그는 이제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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