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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브랜드를 지향했던 피아트의 실패

글로벌오토뉴스
2018.04.19. 09:54:36
조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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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언제나 새 것만을 찾는 ‘얼리어덥터’들도 있지만, 옛 것을 찾는 ‘클래식 마니아’도 있다. 그 중에서 ‘레트로(Retro)’는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불편함은 덜어내고 현대적인 센스로 물품 또는 패션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장르이다. ‘Retrospect’의 준말인 ‘레트로’는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이후 패션은 물론 자동차, 모터사이클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자동차 중에서 레트로로 유명한 브랜드를 선정한다면 ‘미니’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옛 자동차인 ‘누오바 500’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피아트 500’, 옛 알피느 모델의 디자인을 재해석해 매력적인 미드십 스포츠카로 다시 태어난 ‘알피느 A110’ 등 브랜드 내 특별한 모델들까지 합하면 레트로 자동차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규어 또는 DS처럼 옛 자동차의 라인 또는 디자인 코드 일부를 신차에 녹여내는 것까지 고려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나지만, 여기까지는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앞서 이야기한 ‘미니’와 ‘피아트 500’은 모두 국내에도 진출해 있는 브랜드이다. 그리고 레트로 브랜드는 옛 것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찾는데다가 충성 고객들도 있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판매량을 보장한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의 판매량만을 놓고 보면 ‘미니’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피아트 500’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은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이번에는 상품성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크기와 가격, 브랜드의 차이


두 모델 모두 3도어 해치백으로 제일 먼저 부활했지만, 선택한 세그먼트는 각각 달랐다. 미니는 한국에서 소형차로 분류되는 B 세그먼트로 재탄생했고, 피아트는 500을 경차로 분류되는 A 세그먼트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 미니는 작은 차체 안에서도 성인이 편안하게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데 비해 피아트 500은 1열 좌석 외에는 편안하게 탑승하기 힘든 공간만이 남게 되었다.

또한 서로 진출 당시의 브랜드 이미지도 전혀 달랐다. 미니는 BMW 산하에서 다시 태어나면서 ‘높은 수익을 누리면서도 도심에서의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차’라는 이미지를 심고 프리미엄 브랜드로 다시 태어났다. 로버 그룹 시절의 미니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BMW 미니’라는 다소 억지가 있는 브랜드명을 끌고 간 적도 있지만, 이 전략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잘 먹혔고, 개성을 발휘하고자 하는 성공한 젊은이들이 먼저 찾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프리미엄 소형 브랜드로써 다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피아트는 2013년에 500으로 한국에 재진출했을 당시(과거에도 판매를 했었지만 실적 부진으로 철수했었다) 미니 브랜드의 위상을 탐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알겠지만 500은 패션카이기는 해도 고급스러움은 없는 자동차다. 또한 세그먼트도, 엔진도, 미니와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미니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펴야 했지만, 가격을 미니 3도어 모델과 거의 차이가 없도록 책정해 버렸다. 그 결과는 출시 이후 몇 달 만에 실시된 가격 인하 그리고 판매 실패로 인해 발생한 재고 모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할인이었다.

심지어는 전시장조차 차이가 났다. 국내에서 미니는 BMW와 같은 전시장을 공유하지 않으며, 절대적으로 별도의 전시장을 마련하고 전문 판매 인력이 상주하며 미니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에 비해 피아트는 기존 크라이슬러 또는 지프와 같은 전시장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별도로 칸을 나누고 공간 내 색상을 다르게 하는 등의 노력은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피아트 500의 위상을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했다.


피아트 500에 있어 아쉬운 것은 고성능 브랜드인 ‘아바스’가 국내에 진출했다면 조금은 500의 위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니의 경우 고성능 브랜드로 JCW(존 쿠퍼 웍스)를 갖고 있고, 이를 통해 ‘작으면서도 경쾌한 주행 성능을 보여주고 운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프리미엄 패션카가 될 수 없었던 피아트 500에게 아바스는 JCW 모델과 동일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었기에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소형 SUV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500X


2016년에 등장한 피아트 500X는 지금도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인 소형 SUV이다. 500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계승한 디자인과 도심의 라이프스타일을 부각시켜주는 외관을 갖고 있어 한국 시장 데뷔 당시 큰 기대를 모았다. 첫 소개 당시 미니의 소형 SUV인 컨트리맨을 직접적인 라이벌로 지목하고 ‘경쟁 모델에 비해 매력적인 가격’을 내세우며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500X는 실패했다. 출시 첫 달을 제외하면 월 20대 가량의 판매만을 기록했고, 절망적인 판매량이 계속 이어지자 피아트는 이번에도 재고 모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할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현재는 국내 도입이 중단된 상태이며, 재개될 가능성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소형 SUV 임에도 한국 판매량이 낮았던 이유 중 하나로 ‘경쟁 모델에 비해 높은 배기량’이 꼽히고 있지만, 동일한 플랫폼과 엔진 라인업을 갖춘 지프 레니게이드가 나름대로의 선전을 거두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약간 어려운 면이 있다.


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500X가 미니 컨트리맨을 경쟁자로 지목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언뜻 보면 소형 SUV와 레트로 디자인으로 인해 경쟁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둘의 위치는 전혀 다르다. 피아트는 미니만큼의 브랜드 파워가 없었고, 500X의 등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무기가 없었다. 미니는 브랜드 파워도 있지만, 로버 미니 시절에 컨트리맨이라는 별도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고, 미니 모크로 ‘4륜구동 소형 SUV’를 구현했기에 컨트리맨의 등장이 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내에서의 미니의 이미지는 단순히 로버 미니의 인기에 기댄 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영리하게 이미지를 축적했다는 것이 중요한데, 그 기간 동안 때로는 라인업을 확장시키기도 하고, 판매량이 적은 모델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현재 미니는 3도어 해치백, 5도어 해치백, 컨버터블, 컨트리맨, 클럽맨을 라인업에 갖추고 있는데 다양한 엔진과 S 모델, JCW까지 합하면 선택의 폭은 상당히 넓어진다.

아쉽게도 피아트 500은 이를 갖추지 못했다. 국내에서의 피아트 500의 라인업은 3도어 해치백, 컨버터블, 500X 단 3가지고 500X만이 두 개의 엔진을 마련했을 뿐이다. 고성능 모델은 볼 수 조차 없는 현실에 이미지를 축적할 시간도 없이 빠른 과실의 수확을 노렸던 대가가 참혹하다고 하면 억지일까.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던 매력적인 레트로 브랜드 중 하나였던 피아트 500은 그렇게 스러져 갔고, 아직까지 부활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레트로 브랜드는 충성 고객들이 존재하고, 옛 것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찾는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인지도를 축적해야 하는 다른 브랜드들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상품의 치밀함과 브랜드의 위상을 굳히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국 레트로 브랜드라고 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초라한 성적표뿐이다. 혹 앞으로 국내에 들어올 지도 모르는 레트로 브랜드라면 피아트 500의 실패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국내에서 브랜드가 하나씩 스러져 간다는 것은 자동차의 다양화, 개성화에도 안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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