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에서 당시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는 처단된 이토 히로부미 추도하는 ‘국민대추도회’ 발기인 및 위원으로 나섰다.
구한말 1896년 박승직 상점으로 시작한 두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원조 친일기업으로도 불린다.
박승진 두산 창업주는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친일단체인 조선경제회 이사, 조선실업구락부 발기인, 반일운동 배척과 일선융화를 표방하던 친일단체 동민회(同民會) 평의원 등 친일행적이 기록돼 있다.
특히 1938년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모집 등을 이끌었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의 평의원 선임은 충격적이기도 하다.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일제의 종용에 아일보 김성수, 조선일보 방응모, 이화여대 김활란 등이 결성한 전시동원 선전조직
◇박승직 두산 창업자의 발언"조선인에게 지원병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은 조선인의 의무. 내선인의 차별을 완전히 철폐하는 것"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쌍수드러 축하' 中
◇박승직 두산 창업주의 친일행적
1933년에 미쓰비시 그룹의 ‘소화기린맥주(기린 맥주 조선 지부)'의 주주로 참여
1940년 미키 쇼우쇼크(三木承稷)로 창씨개명
1941년 박승진상점을 '미키상사주식회사'로 변경 해군 국방헌금 1만원 헌납1943년 방공감시대 위문금 100원, 육군 국방헌금 200원 헌납
1946년 해방 직후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이 '두산상회'로 사명 변경
소화기린맥주는 후에 동양맥주로 발전됐고 이는 OB맥주의 기틀이 됐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단죄는 물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당시 기업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데일리팝=정단비 기자, 홍원희 디자이너)(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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