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GDC 2019’에서 반가운 브랜드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에 숨어사는 뱀파이어들의 삶을 다룬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 2’다. 겉으로는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실은 피에 대한 욕구를 품고 살아가는 뱀파이어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은 발매 초기 부진한 성적을 보였지만, 버그 패치와 컴퓨터 사양의 발전으로 원활한 플레이가 보장되자 방대한 텍스트 다이얼로그와 자유도 높은 선택지가 재발견돼 두꺼운 팬 층을 만들어낸 바 있다.
그렇기에 전작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15년 세월 만에 돌아온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 2’에 관심이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과연 세계관과 스토리는 전작에서 이어지는 것일까? 후속작이 나오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이유는 무엇일까? 한동안 이 브랜드에 관심을 끊고 지냈던 게이머라면 궁금할 법한 질문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도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와, 이 게임이 속한 상위 세계관인 ‘월드 오브 다크니스’는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며 표류했으니 말이다.
이번 주에는 최근 공개된 ‘뱀파이어: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2’를 맞아, 지난 세월 과연 ‘월드 오브 다크니스’ 브랜드와 세계관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펄어비스가 확보했을 수도, ‘월드 오브 다크니스’ 7년 브랜드 표류의 역사
TRPG로 시작한 ‘월드 오브 다크니스’ 세계관의 유명세에 대해서는 많은 게이머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브랜드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몰락했고 다시 일어서게 된 과정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세계관 측면에서만 말할 때, 이 브랜드의 흥망성쇠는 모두 설정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역사 및 이슈를 고딕 호러 판타지와 조합한 독특하고 매혹적인 세계관으로 일어섰지만, 과도한 설정으로 무너진 것이다.
1980년대 말 TRPG 시장은 검과 마법이 존재하는 중세 유럽 풍 판타지를 그린 ‘소드 앤 소서리(Sword & Sorcery)’ 장르와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서브장르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최초의 TRPG ‘던전즈 앤 드래곤즈’ 부터 ‘소드 앤 소서리’ 장르였던 데다, 한 발 늦게 시작한 브랜드들도 기존 모험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탓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설정과 시스템의 게임이 늘어갈수록 소비자들은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점차 새로운 장르에 대한 요구가 대두됐다.
그렇게 TRPG시장에 나타난 대안적 장르 중 하나가 ‘어반 판타지(Urban Fantasy)’였다. 이 장르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도시 이면에 뱀파이어, 늑대인간, 요정 같은 초자연적 존재들이 숨어 살며 신비한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공상을 다뤘다. ‘월드 오브 다크니스’는 이처럼 1980년대에 쏟아지던 ‘어반 판타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월드 오브 다크니스’는 다른 ‘어반 판타지’와 차별화되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플레이어가 괴물이 된다는 점이었다.
보통 ‘어반 판타지’ 게임은 플레이어가 도시에 숨어 사는 괴물이나 비밀결사를 추적하고 문제를 해소하는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반면 ‘월드 오브 다크니스’에서 플레이어는 그 자신이 괴물이 돼 나름의 목적을 추구하며,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을 속이고 정체를 숨겨야 했다. 게임 진행 또한 단순히 던전에 들어가 괴물을 처치하고 전리품을 얻는 단순한 구성 대신, 정치적 다툼과 인간적 드라마를 주제로 한 플롯에 집중했다. ‘소설이나 연극 같은 게임’을 지향한 셈이다.
여기에 ‘월드 오브 다크니스’는 한 가지 독특한 전략을 취했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나 문화를 괴물과 연관 지어 재해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월드 오브 다크니스’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시인 오스카 와일드가 실은 죽지 않고 뱀파이어가 돼 오늘날까지 살아있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실제 역사에서 그는 풍기문란으로 감옥에 수감됐다가 추방된 후 프랑스에서 병으로 사망했지만, 이 게임에서는 사실 죽지 않고 프랑스에서 뱀파이어가 된 것으로 설정됐다.
이렇듯 실제 역사와 판타지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점은 ‘월드 오브 다크니스’를 엇비슷한 판타지와 SF 게임 세계관들 사이에서 부각시켰다. 제작업체 화이트 울프 퍼블리싱도 ‘월드 오브 다크니스’의 게임 시스템보다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이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나, 과거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월드 오브 다크니스’ 설정에 맞춰 재해석한 설정자료집을 다수 출간했다.
하지만 ‘월드 오브 다크니스’의 장점이었던 독특한 세계관과 방대한 설정들은 동시에 약점으로도 작용했다. 설정자료집이 계속 출간될수록 너무 많은 캐릭터와 사건들이 쌓였다. 어느 도시에 가도 이미 유명하고 오래된 NPC캐릭터가 있고, 그들의 비중은 너무 컸다. 이러한 설정 과포화로 인해 ‘월드 오브 다크니스’는 플레이어가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을 여지가 극히 적은 세계관이 됐다.
게임 시스템 역시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가 없었다. ‘괴물의 삶과 비극’이라는 주제를 게임으로서 풀어낼 고유한 규칙은 주먹구구식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2003년 화이트 울프 퍼블리싱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는데, 바로 ‘월드 오브 다크니스’ 세계관을 끝내고 새로운 TRPG를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불필요하게 많은 설정을 하나씩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아예 세계관을 종결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2004년 ‘월드 오브 다크니스’를 끝낸 후 화이트 울프 퍼블리싱이 새로이 제작한 브랜드는 팬들의 극심한 외면을 받았다. 신규 브랜드는 기존 ‘월드 오브 다크니스’처럼 괴물 캐릭터를 내세운 ‘어반 판타지’ 장르였으나, 이미 과거 설정에 매료되어 있던 팬은 화이트 울프 퍼블리싱의 새로운 브랜드에 반감을 드러낼 따름이었다. 이에 화이트 울프 퍼블리싱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헤맸고,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디지털 게임 시장이었다.
2000년대 초반 화이트 울프 퍼블리싱은 이미 ‘월드 오브 다크니스’ 디지털 게임 몇 개를 발매한 적이 있었다. ‘디아블로’ 스타일 RPG에 고유 세계관을 더한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리뎀션(Vampire the Masquerade: Redemption)’이나, 신비한 힘을 얻어 괴물을 사냥하게 된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핵 앤 슬래시 ‘헌터: 더 레커닝(Hunter the Reckoning)’ 등이 그러한 작품들이었다. 이 게임들은 특별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시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