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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브랜드의 실패와 성공

글로벌오토뉴스
2022.01.14. 16: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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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에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메이커가 미국 시장에 고급 승용차를 내놓겠다고 발표하자 처음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컸다고 한다. 염가의 소형차를 만드는 일본 메이커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1989년 1월에 토요타가 무려 7년간 개발한 렉서스 LS세단이 디트로이트 오토쇼를 통해 발표됐고, 그 해 9월부터 시판되면서 일본제 고급승용차가 미국에 등장한 것이다.





이때 렉서스는 토요타와 별도의 딜러 망을 미국에 구축하면서 LS 세단 한 가지 모델만으로 딜러를 운영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중형 세단 ES250을 추가해 두 차종으로 판매를 시작한다. 그런데 ES250은 사실 토요타의 전륜 구동 중형 세단 캠리(Camry)에 렉서스 엠블렘을 붙이고 LS 세단의 알루미늄 휠을 그대로 끼워서 무늬만 렉서스로 구색을 맞춘 차였다.


이때 LS400은 최초로 3차원 개념의 수퍼 비전 클러스터를 달고 나왔다. 지금은 수퍼 비전 클러스터가 신기한 장치가 아니지만, 지금부터 33년 전이었던 그 당시에는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입체 효과로 켜지는 경고등과 화려한 조명 그래픽의 클러스터를 단 LS 세단의 운전석에 앉아서 깜짝 놀란 미국 소비자들이 정말로 많았다고 한다.





이런 감각적 요소로 무장한 LS400은 미국 소비자들의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냈고, 이런 고품질 대비 싼 가격으로, 그 당시에 벤츠 세단 한 대 가격에 LS와 ES 세단을 모두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일본제 고급승용차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여론은 일시에 수그러든다.


이후 LS는 1994년에 2세대, 2000년에는 3세대 LS430, 2006년에 4세대 LS460과 2007년에는 4세대 모델의 하이브리드 차량 LS600h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10만불, 즉 1억원이 넘는 가격의 일본제 고급차로 나온다. 그리고 2013년에 페이스 리프트 된 4.5세대는 2017년까지 판매되었고, 2017년 12월에 현재의 5세대 LS500모델이 나온다.





한편 렉서스의 등장과 거의 동시에 일본의 닛산도 인피니티(Infiniti) 라는 고급 브랜드를 1989년에 미국에서 출범 시킨다. 인피니티는 대형 후륜 구동 세단 Q45 한 모델로 시작했는데, 디자인에서 왜색(倭色)을 강하게 내세웠다.





이것은 렉서스 브랜드가 일본의 색채를 철저히 지웠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는데, 렉서스는 브랜드 심벌이나 홍보 자료의 차량 색상을 메탈릭 베이지(metallic beige), 이른바 금색을 주로 써서 흡사 서양의 금발 백인 같은 이미지를 은연중에 강조했다.





게다가 렉서스 브랜드는 초기에는 미국 시장에서만 운영하고 일본 내수시장에서는 LS 세단을 토요타 브랜드에서 셀시오(Celsior)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는데, 이 역시 렉서스에서 일본의 인상을 감추려는 전략이었던 걸로 보인다. 물론 지금의 렉서스는 오히려 일본의 색채를 강조하면서, 실버나 그레이를 주로 써서 초기와는 달라진 느낌이다.





한편 인피니티는 대표 모델 Q45의 전면에 고급승용차의 상징인 라디에이터 그릴 대신에 일본의 전통적 금속공예기법으로 만든 인피니티 엠블렘을 붙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리고 실내에도 일본의 가구 장인이 만든 전통 기법의 우드 그레인 패널을 넣는 등 일본의 특징을 강조했다.





인피니티는 심지어 차량 판매 딜러의 인테리어도 젠 스타일(Zen Style) 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꾸몄다. 그렇지만 인피니티는 렉서스와 같은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물론 그 원인은 여러가지이겠지만, 디자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생경함 과 일본의 성향을 강조한 것도 이유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서구인들은 오히려 국적성을 지워버린 무난한 차체 디자인의 렉서스를 부담 없이 선택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피니티 Q45도 1993년형 페이스 리프트 모델에서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단 디자인으로 바꾸지만 균형이나 완성도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에게 일본의 승용차는 벤치마킹의 대상인 동시에, 따라잡아야 하는 목표와도 같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일본의 차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의 우리나라 고급 브랜드의 미국에서의 약진은 놀랍다. 일본의 모든 고급 브랜드가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기에 더 그렇다. 렉서스를 제외하면 인피니티, 어큐라(Acura) 같은 브랜드는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존재감이 크지 않다. 게다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렉서스도 유럽에서는 입지가 좁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본의 차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브랜드는 무엇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까?





초기의 렉서스는 창의적이기보다는 무난한 차체 디자인이면서 정교한 마무리와 감각적 신기술, 그리고 가격경쟁력으로 미국시장의 소비자를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반면에 개성적 디자인을 강조했던 인피니티는 시장에서 초기의 기선 제압에 실패했다. 어쩌면 이건 그 시기에 미국의 고급차 소비자들이 원했던 가치를 반영한 현상 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이 공감하는 가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지만, 한편으로 거의 변하지 않는 건 가격에 대한 기대 품질일 것이다. 즉, 고급이란, 비싼 가격에 맞는 정직한 고품질이 있어야 한다. 거금을 주고 산 고급차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녹슨 머플러를 보게 된다면 그 차의 오너는 당연히 저질 물건을 바가지 쓴 걸로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그 책임을 따지러 간 서비스센터에서 푸대접 받는다면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물론 이건 미국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든 양산 메이커의 당면한 과제는 원가절감이다. 원가절감의 교과서적 의미는 설계와 생산과정에서의 불합리한 점을 개선해 최적의 비용으로 제품을 만드는 품질관리 기법이지, 보이지 않는 곳에 싸구려 재료를 넣는 속임수를 쓰거나 공정을 생략해 대충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일본제 차들을 분해해 보면 저런 속임수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기업의 개발 담당자들은 이점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필자는 일본 차가 좋다는 게 아니라, 고급 제품의 진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고급차를 구매한 소비자가 만약 차량 품질에서 배신감을 경험한다면 그는 그 브랜드는 쳐다보기조차도 하지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고급 브랜드는 차량을 정직하게 제대로 만드는 게 전시장을 호화롭게 꾸미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화려한 쇼룸에 비싼 가격표를 단다고 일시에 고급 브랜드가 되는 게 아니다. 정직한 품질의 진실성을 보고 소비자가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 성공한 고급 브랜드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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