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TV의 저녁 뉴스에서 198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의 원작 만화 작가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스쳐 지나가듯 나왔다. 정말로 30초 정도밖에 안되는 아주 짤막한 보도 분량으로 나온 것이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그 뉴스를 듣고 필자는 1982년부터 TV에서 방송됐던 애니메이션 시리즈 ‘은하철도999’의 기억이 떠올랐다. 필자처럼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소위 386 세대들에게는 은하철도999로 대표되는 일본의 TV 애니메이션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이었던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는 일본의 매체가 상대적으로 다양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TV에서 방송된 애니메이션은 거의 대부분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사실상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상당했다. 물론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일본 자동차 역시 감각적 품질과 디자인으로 미국 시장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적수가 없어 보였다.

‘은하철도999’ 이외에도 1970년대 초부터 TV에서 방영됐던 ‘마징가Z’,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짱가’ 등 이른바 철갑 거인 시리즈로 대표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일본의 철갑 거인 애니메이션에 대응하는 토종 철갑 거인으로 로보트태권V가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져 1976년에 개봉되기도 했다.

그 시기에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세대들에게는 저런 일본의 철갑 거인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인식 속에 상당히 강하게 각인 됐을 것이다. 이처럼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통해 청소년기를 전후해서 각인된 일본의 문화는 정치나 역사적인 배경의 반일 감정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추억’ 이라는 모순적 형태로 양립하면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은 동해를 사이에 둔 지리적 이유에서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얽혀 있을 수 밖에 없는 위치이다. 하지만 그 관계 대부분은 우리가 저들에게 침략당하거나 식민지배 당한 불행한 역사다. 그래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복잡하다. 아니,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역사로 점철돼 있다.

일본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들이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 따라 일본에서 ‘혐한’이 생기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침략당하고 식민지배를 당한 사람들이 침략자들에 대한 반감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요인이 바탕이 돼서, 두 나라 간에는 많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엄연한 우리 땅인 독도에 대해서 일본이 영유권을 우기는 어이없는 일을 비롯해, 동해의 표기 방법 등등 우리는 오랜 역사에 걸쳐서 당연한 일에 저들의 시각으로 억지로 우기는 여러가지 사안이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구글 지도에서는 ‘동해’ 표기를 볼 수 있고, 독도 역시 다른 명칭 이른바 ‘리앙크루 록’ 이라는 이름 대신 ‘독도’ 라고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슬램 덩크’ 라는 1990년대에 등장한 농구를 주제로 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다시 발매되자 그와 관련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밤새 줄을 서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일본의 ‘슬램 덩크’에는 열광하면서도, 일본의 위안부 문제와 같은 일에는 눈에 쌍심지를 세우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지난 3.1절에는 어떤 아파트에서 일본 국기를 내 건 일로 인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현상을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은 분명히 우리들이 일본을 대하는 자세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는 열광하면서도 일본의 역사적 만행에 대해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자동차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작년과 재작년에 ‘노 재팬’ 의식이 가장 높았던 때에는 일본제 차량의 판매가 저조했고, 일본제 차량이 법규 위반이라도 하면 그걸 찍은 영상이나 사진이 주목받으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도 광주민주화 항쟁을 다룬 영화 ‘택시’에 등장한 ‘브리사’ 승용차는 그 시기에 기아산업이 기술제휴 업체였던 일본의 마쓰다로부터 금형과 부품을 들여와 만든 ‘일본 차량 모델’ 이었음에도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예는 또 있다. 1세대 그랜저는 1986년형 미쓰비시 데보네어(Debonair)와 똑같은 모델-물론 현대자동차와 미쓰비시가 공동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임에도 1세대 그랜저는 그 시대의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추억의 모델로 사람들에게 이야기 될 뿐 최근에 회자되는 전범 기업 미쓰비시는 간데 없다.
그랜저에 그치지 않고, 현대정공이 생산하고 현대자동차가 판매했던 갤로퍼는 미쓰비시의 파제로를 거의 그대로 만든 차였다. 게다가 그 당시에 토종 고유모델 코란도를 제치고 3년 연속 판매 1위였던 때도 있었다. 갤로퍼가 나오던 시절에는 갤로퍼 엠블럼 대신 미쓰비시와 파제로의 엠블렘을 붙이고 다니는 차도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일본으로 관광 가는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이런 일들은 여기서 몇 줄의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돼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사는 논리나 객관적 사실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장면에는 복합적인 가치관과 요인, 환경 등이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따져보면 국산 자동차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 의외로 많은 일본제 부품이 들어가 있고, 그런 부품들이 조립돼서 ‘한국제 자동차’로 글로벌 시장으로 수출된다. 이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일본 제품이나 문화를 우리 것처럼 소비하고 있는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산업적으로, 혹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본에 대한 시각은 당연히 그 스펙트럼이 넓을 수밖에 없다. 또한, 개인적 친분이나 교류에 의한 관계, 국제 결혼 등으로 가족이 되는 밀접한 관계 등의 대인관계에서부터, 사업상의 이유로, 기타 직업적인 이유로 방문하거나, 심지어 전문적인 활동을 위해 일본제 카메라나 모터사이클 같이 대체 불가능한 일본제품을 불가피하게 써야하는 등등 정말로 다양한 관계나 이해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실상 그러한 다양한 관계까지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그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지나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의 주체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볼 수 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정말로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 사이여서 웃고 떠들며 농을 주고받을지라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건 대부분 나, 혹은 내 가족의 자존감과 관련 있는 것들이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그럴진대, 국가 간에는 말 할 것도 없다. 게다가 그 상대 국가와 역사적으로 곡절이 많다면, 더더욱 우리 스스로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것이다. 절대로 남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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